강점 보강보다 약점 보완에 힘쓰라

by 노을 강변에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전쟁의 영웅 아킬레우스의 어머니는 바다의 요정 테티스였다.

제우스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취해 결혼하려 했으나, 미래를 보는 프로메테우스는 그녀가 낳은 아들이 아버지를 능가할 것이라 예언했다. 자식보다 못한 아버지가 되기 싫었던 제우스는 테티스와의 결혼을 포기하고, 테티스를 인간인 펠레우스와 결혼시켰다.


767KnfJDfJO.jfif 테티스가 아킬레우스를 스틱스 강물에 담그는 장면


테티스는 펠레우스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킬레우스를 불사신으로 만들기 위해 아들의 발목을 잡고 거꾸로 들어 저승을 흐르는 불사(不死)의 스틱스강물에 담갔으나, 자신이 잡고 있었던 발목 부분에는 강물이 묻지 않아 아킬레우스의 유일한 약점이 되었고, 후일 트로이 전쟁에서 아킬레우스는 트로이 왕자 파리스의 화살에 발뒤꿈치를 맞아 죽게 된다. ‘아킬레스건’이라는 말이 생겨난 유래이다.




강점을 잘 살리면 성공에 유리하지만, 약점이 드러나면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점에서 강점 보강은 성공을 위한 선택적 사항이나, 약점 보완은 생존을 위한 필수적 사항이다. 아킬레우스가 단 하나의 약점 때문에 죽음을 맞이한 것처럼 말이다.


선거전략 중 가장 효과적인 것은 ‘네거티브(negative)전략’이라고 한다. 자신의 장점을 알리는 것보다 상대방의 약점을 부각하는 것이 표를 얻는 것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였던 게리 하트 상원의원은 단 한 장의 사진에서 비롯된 네거티브 전략에 걸려들어 다 잡은 대권을 눈앞에서 날려버렸다.


198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콜로라도주 게리 하트 상원의원은 역대 대통령 후보 중 가장 영민한 인물로 평가받으며 유력한 차기 대통령감으로 급부상하고 있었다.


여론조사에서도 공화당 후보인 조지 H.W.부시를 넉넉하게 앞섰고, 별다른 이슈가 없는 한 압도적 당선이 예측되는 상황에서 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플로리다의 유력지 「마이애미 헤럴드」 신문이 유부남인 게리 하트가 미모의 모델 도나 라이스와 뜨거운 밤을 보냈다는 사실을 보도하면서 두 사람이 포옹하고 있는 한 장의 사진을 공개한 것이다.


다운로드.jfif <마이에미 헤럴드>가 보도한 게리 하트 상원의원의 불륜 의혹 사진

공화당은 게리 하트의 불륜과 부정직을 집중적으로 부각하며 총공세에 나섰고, 민주당 선거운동 본부는 일대 혼란에 빠졌다. 게리 하트는 오해받을 짓은 했으나, 부정한 일은 절대 없었다며 즉각 해명에 나섰고, 그의 아내 또한 남편이 말한 것을 의심 없이 믿는다고 했음에도 그의 지지율은 일주일 만에 거의 절반으로 떨어졌다.


게리 하트가 선거유세 때마다 개인의 정직을 정치인의 최고 미덕이라고 역설한 것이 더욱 그를 위선자로 몰아갔고, 결국 대선 출마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동부의 명문 예일대 법과대학원 출신으로 매력적인 외모와 뛰어난 두뇌로 일찍이 대통령감이라는 기대 속에 구름 같은 지지자를 몰고 다녔던 그였지만, 사진 한 장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탓에 그간의 참신하고 깨끗했던 이미지는 단번에 무너져내리고, 그의 정치생명은 완전히 끝나버리고 말았다.




『손자병법(孫子兵法)』에 ‘지피지기 백전불태, 부지피지기 일승일부, 부지피부지기 매전필태(知彼知己 百戰不殆, 不知彼知己 一勝一負, 不知彼不知己 每戰必殆)’라는 말이 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고, 적을 모르고 나를 알면 한번 이기고 한번 지며, 적을 모르고 나도 모르면 싸울 때마다 반드시 위태롭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알고 모르는 것’의 대상은 ‘강점과 약점’이고, 그중 위태로움과 연결되는 것은 당연히 ‘약점’이다.


태평양전쟁 초기 적에게 작전계획이 고스란히 노출되는 ‘지피(知彼)’를 당하여 항공모함을 포함한 주력 전함 대부분을 잃고, 태평양의 제해권을 빼앗긴 일본 전쟁사 최악의 전투가 하와이 북서쪽 바다에서 벌어졌다. ‘미드웨이 해전’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4월 18일 미 항공모함에서 출격한 두리틀 중령이 이끄는 일단의 폭격기가 일본 동경을 공습했다. 신으로 떠받드는 일왕 히로히토가 거주하는 동경 한 복판에 난생처음 폭탄이 떨어지는 것을 목격한 일본 국민은 군부를 향해 비난을 쏟아냈고, 일본 군부 역시 크게 당황했다.


다운로드 (1).jfif 동경 폭격


머리를 짜내던 일본군 수뇌부는 미 해군 기지가 있는 하와이 북서쪽의 미드웨이섬을 점령하기로 의견을 모았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주요 목적이 있었다.

첫째, 미군 전폭기의 출격 거점을 제거하여 일본 본토를 폭격의 사정권에서 벗어나도록 하자는 것

둘째, 미드웨이섬에 일본 해군 기지를 건설하여 그해 10월로 예정된 하와이 공격의 교두보로 삼자는 것

셋째, 일단 전투가 벌어지면 남태평양에 주둔 중인 미군 기동부대가 지원을 올 것이고, 이때 이들을 포위 섬멸하여 최종적으로 태평양 제해권을 장악하자는 것


한편 미 태평양함대 사령관 니미츠 제독이 이끄는 미 해군은 1942년 4월 말부터 꾸준히 일본군의 암호 해독에 공을 들였는데, 어렴풋이 일본군이 태평양 해역에서 대규모 공세 작전을 전개할 것이라는 징후를 포착했다. 그런데 일본군 암호에 자주 등장하는 공격목표인 ‘AF’가 도대체 어디를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워싱턴의 미 합참본부는 ‘하와이’로 추측했고, 미 육군 항공대는 ‘알래스카나 미국 서해안’으로 추측했으며, 니미츠 제독은 ‘미드웨이섬’이라고 추측했다.


미군은 ‘AF’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그해 5월 미 첩보대 장교 야스퍼 홈스의 제안으로 역정보를 흘리기로 하고, 사전 각본에 따라 미드웨이섬의 해수 정화장치가 고장 나서 식수가 바닥나고 있다는 위장 정보를 무선 평문으로 타전했다.


그러자 일본군 통신부대가 이 전문을 감청하여 본국으로 보고했는데, “미드웨이섬에 식수가 떨어지고 있다”라는 내용의 무선보고에서 미드웨이섬을 ‘AF’로 지칭했고, 이 무선보고 내용을 미 해군 통신 정보대가 다시 감청하면서 ‘AF’가 미드웨이섬의 별칭임을 알 수 있었다.

암호는 이후 더 해독되어 미드웨이섬 공격부대의 병력・지휘관・예정 항로・공격 시기 등 구체적 정보까지 입수되었다.


6월 5일 일본 해군은 야마모토 해군 대장이 지휘하는 항공모함 8척, 전함 11척, 순양함 18척 등 연합함대 주력과 나구모 중장이 지휘하는 기동부대 등 무려 350척의 대함선을 동원하여 미드웨이섬을 향해 출격했다.


CMkcJHksvhP.jfif 미드웨이로 출격하는 일본 함대


전투에 참여한 일본군 병력은 미군의 세 배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였지만, 작전계획이 노출된 전투가 성공할 리 없었다. 대기 중이던 미 해군 급강하 폭격기의 급습을 받아 일본 항공모함 4척이 침몰하고, 항공기 300대가 격추되면서 일본군은 개전 이후 최악의 패전을 맛보았다.


진주만 공습 이후 내내 미군을 압도했던 일본 해군이 이렇게 괴멸되면서 태평양전쟁의 주도권은 미국으로 넘어가고, 이 전투에서 주력 함대와 정예조종사 대부분을 잃은 일본은 서서히 패망의 길로 접어들었다.




생존을 위해 약점을 감추거나 보완하려는 시도는 동물의 세계에서도 행해지고 있다. 포식자에게 얕보이지 않으려고 의도적으로 통증을 참는 고양이의 습성이 그렇고, 체구가 작은 동물이 자신보다 큰 상대를 만나면 몸을 과도하게 부풀리는 것이 그렇다.


심지어 식물들조차 약점 보완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데, 그늘에 있는 식물들이 부족한 햇볕을 보충하기 위해 잎의 표면적을 넓혀가거나 줄기를 늘려 햇볕이 있는 쪽으로 길게 자라는 경우가 그렇다.


05x8a0jd.png 괭이눈


‘괭이눈’이란 식물은 꽃이 작은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잎을 꽃처럼 위장하는 기상천외의 수법을 동원한다. 괭이눈 꽃의 크기는 3mm에 불과하여 곤충의 관심을 못 받는 약점이 있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꽃 주변의 잎을 꽃잎처럼 보이게 하는 위장전략을 구사한다.


폴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자신의 저서 『부수적 피해』에서 “다리의 운명은 가장 약한 교각이 결정한다”고 하여 약점의 위험성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강점 보강보다 약점 보완에 더욱 힘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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