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가 사라지면 영혼도 사라진다

by 노을 강변에서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아왔다.


그래서 우리는 어릴 때부터 가정이나 학교에서 「개미와 베짱이」 같은 우화를 들으며 대책 없이 노는 베짱이가 되지 말고, 쉬지 않고 일하는 개미같이 살아야 한다고 배워왔다.

자녀나 제자들이 그렇게 해야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고 제 몫을 하며 살 수 있을 거라 여긴 것이다.


그렇다면 개미는 정말 쉬지 않고 일만 할까?

여러 연구에 따르면 개미 집단에는 20% 정도의 개체가 일하지 않고 노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개미 집단의 이런 독특한 생활방식에 대한 궁금증이 다소나마 해소될 수 있는 연구가 2016년 일본에서 진행되었다.


홋카이도 대학 하세가와 에이스케 교수 연구팀은 일본 전국에 서식하는 뿔개미속의 한 종류를 사육하여 한 마리마다 구분할 수 있도록 색을 입힌 후 한 달 이상에 걸쳐 8개 집단, 1,200마리의 행동을 관찰했다.


연구팀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쉬지 않고 일을 하는 개미로만 구성된 집단과 일하는 개미와 노는 개미가 혼재된 집단으로 구분하여 비교했는데, 전자의 경우 개체 모두가 어느 순간 일제히 피로해져 집단의 멸망이 빨라지는 데 비해, 후자의 경우 집단이 오래 존속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개미 떼


이 연구결과를 두고 하세가와 교수는 “일하지 않는 개미가 항상 있는 비효율적 시스템이 집단의 존속에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으며,


아사미 다카히로 신슈대 교수도 “쉬는 개미의 중요성을 보여 주는 가치 있는 연구 성과”라고 하면서 “사람도 쉬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준 연구결과”라고 평가했다.


인간의 직접 조상으로 알려진 크로마뇽인의 역사가 고작 4만 년인 것에 비해 개미는 공룡이 살고 있던 수억 년 전부터 존재해 왔다.


개체 수를 비교하더라도 인간의 수십억 배가 되며, 인간이 멸종하면 그 후 지구를 지배하는 종은 개미가 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처럼 개미가 장구한 세월 동안 종(種)을 유지하고 번성해온 비결 중 하나는 아마도 규칙적인 쉼을 실천한 것은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만기친람(萬機親覽)’이라는 말이 있다.

임금이 온갖 정사를 친히 보살핀다는 뜻으로 『상서(尙書)』에서 유래되었다.


만기친람과 관련하여 늘 언급되는 고사가 있는데, 춘추시대 위(魏)나라 소왕(昭王)의 이야기다.

소왕은 선천적으로 부지런한 임금이었다.


하루는 소왕이 맹상군(孟嘗君)에게 직접 공무처리를 하고 싶다고 하자 맹상군은 공무를 직접 처리하려면 법령 공부가 우선이라 대답했다.


소왕이 맹상군의 말을 좇아 법전을 펼치고 법령을 공부하기 시작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졸기 시작했으며, 지루하다고 말했다.


맹상군이 소왕에게 “군주는 정치 권력을 잡고 있으면 될 뿐 신하가 할 일인 법전을 읽으려 했기 때문에 지루하고 졸린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조선왕조에도 만기친람형 군주들이 있었다. 세종(世宗)과 정조(正祖)가 대표적인데, 정조가 세종보다 심했다고 알려져 있다.


정조는 그야말로 ‘일 중독’이라 할 만큼 일 속에 묻혀 살았다. 새벽에 일어나 늦은 밤까지 정사를 돌보며 잠시도 쉬지 않고 세세한 것까지 살피는 그야말로 개미형 군주였다.


이를 보다 못한 규장각 제학 김종수(金鍾秀)가 “작은 일에 너무 얽매이면 큰일에 소홀하기 쉽습니다. 크고 실한 것에 전력을 기울이지 않고 눈앞의 일에만 신경 쓰시면 겉치레의 말단입니다”라는 상소문을 올리며 임금의 정무 태도를 지적할 정도였다.


도제조 서명선(徐命善)도 건강이 나빠지고 있는 정조가 보고서를 빠짐없이 읽는 것을 보고 “제발 건강 좀 챙기소서”라며 걱정했지만, 정조는 “나는 원체 업무보고서 읽는 것을 좋아하네. 그러면 아픈 것도 잊을 수 있네”라며 보고서 읽기를 멈추지 않았다.


불꽃처럼 정사에 매진하던 개혁 군주 정조는 등창이 난지 20여 일이 지난 1800년 6월 재위 24년 만에 49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준비되지 않은 11세의 어린 군주 순조(純祖)가 즉위하면서 정치는 외척들의 손아귀로 넘어갔다.


이렇게 60년 안동김씨의 세도정치(勢道政治)가 시작되면서 국정은 문란해지고 매관매직이 성행하며 왕조의 몰락이 시작되었다.


만약 정조가 소소한 잡무들을 신하들에게 맡기고, 국정의 큰 줄기만을 보며 선 굵은 정치를 했다면 장수를 누리며 나라를 잘 건사할 수 있었을 테고, 조선왕조도 그처럼 허무하고 처참하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곡가라 평했고, 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곡가인 모차르트가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것도 작곡에 혹사당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모차르트는 오스트리아의 빈이라는 화려한 도시에서 살면서도 늘 돈이 부족하여 여유롭지 못한 생활을 했다.


한때 오페라를 작곡하여 큰돈을 벌기도 했지만, 낭비벽이 심하고 도박을 끊지 못해 쪼들리는 생활을 벗어나지 못했고, 건강이 악화하여 요양이 필요한 때에도 생계를 위해 쉬지 않고 작곡했으며, 심지어 선불로 받은 작곡료로 인해 목숨이 다해가는 병상에서조차 진혼곡(鎭魂曲)을 작곡해야 했다.


그에게 작곡이란 예술의 경험이 아닌 노동에 가까웠던 셈이다.


그는 평생 626곡이라는 엄청난 작품을 남겼는데, 어느 것 하나 버리기 아까운 수준 높은 작품이었다.

한 곡 한 곡 작곡할 때마다 허투루 여기지 않고 최선을 다해 정성을 쏟았다는 증거이다.

img.jpg 모차르트

생전에 그는 “사람들은 내가 쉽게 작품을 쓴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선배들의 음악 가운데 내가 연구하지 않은 작품은 하나도 없다”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그의 천재성은 간단없는 노력의 결과였던 셈이다.


그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것을 두고 독살설・기생충 감염설 등 여러 가지 소문이 무성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결정적 이유는 십 대부터 죽음이 임박할 때까지 쉬지 않고 작곡에 매진했던 극도의 수고로움이 그의 수명을 단축했다는 주장은 그래서 설득력을 지닌다.


사람에게는 태생적으로 주어진 기력이 있는데, 이를 모두 소진하면 생명도 다하게 된다고 한다.


꿀벌의 수명을 살펴보면 이런 가설에 수긍이 간다.


꿀벌의 수명은 통상 3개월에서 6개월 정도인데, 한창 일을 하는 여름철 꿀벌은 1개월 정도밖에 살지 못하고, 일하지 않고 쉬게 하면 6개월까지 산다. 쉼 없는 노동이 꿀벌의 수명을 6분의 1로 감소시키는 것이다.


노자(老子)는 “천도(天道)에 어긋나지 않도록 힘쓰고 있는 자는 시력(視力)・청력(聽力)・지력(智力)을 지나치게 사용하지 않는다. 시력・청력・지력을 지나치게 혹사하는 것은 정신을 소모하는 것이다. 정신을 지나치게 소모하게 되면 곧 맹(盲)・농(聾)・광(狂)의 화를 입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심신의 힘을 아껴야 한다”고 하여 심신을 혹사하지 말 것을 종용하고 있다.


의학자들은 암 환자들이 어떤 마음가짐을 취할 때 가장 좋은 결과가 나오는가에 관해 오랫동안 연구했는데, 암을 이기고 말겠다는 강렬한 의지보다는 잘될 거라는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생각이 면역체계를 건강하게 유지하여 암 치료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반드시 고치고야 말겠다는 전투적 사고보다는 한 걸음 물러서 마음에 쉼을 주면 오히려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미국의 뇌과학자 마커스 라이클 박사는 뇌 영상 장비를 통해 사람이 아무런 인지 활동을 하지 않을 때 활성화되는 뇌의 특정 부위를 알아낸 후 논문으로 발표했는데, 그 특정 부위는 생각에 골몰할 경우 오히려 활동이 줄어들었다고 하며, 「뉴스위크」는 IQ를 높이는 생활 속 실천 31가지 요령 중 하나로 ‘멍하게 지내라’를 꼽기도 했다.


과도한 목표 또한 심신 고갈과 여유 없는 삶을 가져와 인생을 피폐하게 만든다.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 입으며 너무 악착같이 살지도 말아야 한다.


더 가지려고 애쓰는 습성을 버리지 못하는 한 죽는 날까지 마음은 쉴 수가 없다.

조금 덜 이루더라도 나날의 소중함을 느끼며 현재를 즐기는 삶이 되어야 한다.


미국의 교육학자 레오 버스카글리아는 “여가가 사라지는 것 같으면 조심하라. 영혼도 따라서 사라질 수 있으니까”라고 하여 쉼 없는 삶을 영혼 없는 삶에 비유하였다.


활시위의 탄성이 지나치게 팽팽하면 화살을 멀리 보낼 수 없고, 현악기의 줄도 탄성이 지나치면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없듯 긴장감을 유지하는 삶이 길어질수록 몸도 마음도 지치게 되어 종국에는 병마를 불러들이게 된다.


이따금 고개를 들어 하늘도 보고, 창밖 풍경도 바라보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낯선 곳을 찾아 잠시라도 일상에 대한 근심을 잊고 이름 모를 꽃잎의 향기를 맡아보라.


무익하고 헛된 세월을 보내서도 안 되지만, 전쟁 같은 삶을 살아서는 더욱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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