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마 늙은 아내는 믿을 만하다

by 노을 강변에서


꽃 피는 봄이 오면 언젠가는 낙엽 지는 가을이 찾아오듯 사랑의 세계에도 계절이 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을 연인으로 시작하지만, 서로를 알아가면서 신선함이 떨어지고 단점들이 드러나면서 여름날 무성했던 잎새가 찬바람에 시들어가듯 불타던 사랑의 열정도 식어가게 마련이다.


심리학자들은 오랜 기간 축적된 증언과 실험을 통해 남자가 여자를 보고 첫눈에 반하는 시간을 8.2초라고 결론지었다. 그야말로 사랑의 포로가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인 셈이다.


상대를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다고 여기면서 그렇게 사랑은 시작되고 결혼으로 이어지지만, 연구결과에 따르면 연애결혼 부부는 중매결혼 부부보다 금슬이 좋지 않고, 이혼율도 높다고 한다.


미 하버드 대학의 로버트 엡스타인 박사가 중매결혼 부부와 연애결혼 부부 100쌍을 대상으로 8년 동안 관찰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연애결혼 부부의 애정도는 18개월마다 절반 정도로 감소하였지만, 중매결혼 부부의 애정도는 신혼 초에는 연애결혼 부부보다 낮았으나, 시간이 갈수록 높아져 결혼 후 5년 정도 됐을 때부터 연애결혼 부부보다 높아지기 시작했고, 결혼 10년 후에는 연애결혼 부부의 두 배 정도에 달했다고 한다.


연애결혼 부부의 애정이 이처럼 빠르게 식어가는 이유를 단적으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연애결혼 부부가 중매결혼 부부보다 결혼에 대한 기대치가 더 높았기 때문일 거란 분석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가슴 깊이 다짐했던 사랑의 맹세도 생활에 지쳐 기억에서 멀어지고, 젊고 아름다웠던 모습도 세월에 지쳐 늙고 추해지는 것이니, 연애 시절 타오르던 애정의 불꽃이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는 믿음은 영화에서나 가능할 법한 일이다.


명사들의 결혼에 대한 인식도 대체로 부정적인 것 같다.



아일랜드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오스카 와일드는 “남자는 지루함 때문에 결혼하고, 여자는 호기심 때문에 결혼한다. 그리고 양쪽 모두 실망한다”고 하였고,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철학자인 몽테뉴는 “결혼은 새장 같은 것이다. 밖에 있는 새들은 장난삼아 들어가 보려고 하고, 안에 있는 새들은 오로지 밖으로 나가기 위해 몸부림친다”고 하여 결혼을 무모한 모험에 비유하고 있다.


심지어 영국의 시인이자 평론가인 새뮤얼 존슨은 “금전 때문에 결혼하는 것보다 나쁜 것은 없고, 사랑 때문에 결혼하는 것보다 어리석은 것은 없다”고 말하고 있다.


금력이나 권력을 좇아 행하는 정략결혼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오로지 사랑 하나로 결혼하는 것조차 어리석다면 도대체 현명한 결혼이란 어떤 것인지 알 길이 없다.


‘황혼이혼(黃昏離婚)’이라는 말이 있다. 일본에서 시작된 풍조로 50대 이후의 부부이혼을 말한다.


우리나라 이혼 건수 중 3분의 1이 황혼이혼이라고 하며, 최근 10년간 황혼이혼이 두 배 이상으로 증가했다는 통계 당국의 발표도 있다.


이혼하고 싶은데도 자녀 때문에 억지로 참고 살았는데, 자녀들이 성장하여 출가하거나 독립하니, 여생만이라도 배우자의 간섭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 싶은 것이다.


애초에 ‘황혼이혼’이란 말이 생겨났을 때 사람들은 무심한 세상을 풍자하는 정도로 낯설게 여겼는데, 어느새 그런 것이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용기 있는 행동으로 여겨지고 있다.


‘졸혼(卒婚)’이라는 말도 있다. ‘결혼을 졸업한다’는 뜻이라 한다.


2004년 일본 작가 스기야마 유미코가 자신의 저서 『졸혼을 권함』에서 유래한 것으로 법적으로 이혼하지 않으면서 부부가 서로의 삶에 간섭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개념으로 알려져 있다.


작가는 ‘졸혼’을 “기존 결혼 형태를 졸업하고, 자기에게 맞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로 바꾸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최근 일본에서는 ‘사후이혼(死後離婚)’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죽은 후에 이혼한다는 뜻의 신조어로 배우자가 죽은 이후 배우자 친인척들과 인연을 끊기 위해 ‘친인척 관계 종료신고서’를 관공서에 제출하는 방식으로 행해진다고 한다.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죽은 배우자와의 생전 결혼생활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으면 그럴까 싶어 한편으론 이해도 된다.


이혼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성격의 차이’가 종종 언급되지만, 실상은 ‘입장의 차이’라는 말이 적확하다고 본다.


서로의 생각이 다른 상황에서 자기 생각만 옳다고 고집하니 양자의 괴리는 좁혀지지 않고, 그런 평행선의 시간이 길어지다 보면 감정의 골도 깊어지는 것이다.


상대방 입장을 조금만 더 이해해도 이혼율은 현저히 줄어들 거라는 것이 이혼 재판에 나서는 변호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예부터 ‘부부는 무촌(無寸)’이라 했다. 부부는 부모와 자식 간의 1촌보다도 가까운 한 몸 같은 사이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부부라는 고리가 끊어지면 아무런 상관없는 남남이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가장 가까우면서도 돌아서면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니, ‘부부’라는 용어처럼 극단을 모두 공유하는 개념이 또 있을까 싶다.


미국의 위대한 정치가 겸 교육가인 벤자민 프랭클린은 “세상에서 믿을 만한 것이 세 가지 있는데, 그것은 늙은 개, 늙은 아내, 저금통장이다”라고 했다.


물론 그는 세 가지 중 가장 믿을 만한 것으로 저금통장을 꼽긴 했지만, 왜 ‘늙은 아내’를 믿을 수 있다고 했을까?


충분히 늙어버린 아내는 또 다른 사랑을 시작하거나 새로운 삶을 꿈꾸지 않을 것이라 믿었던 모양이다.

늙은 아내만큼은 믿어도 좋다는 말이 늙지 않은 아내는 믿을 수 없다는 말처럼 느껴져 씁쓸한 여운이 남는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좋은 명분은 백만 대군과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