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금력을 이길 수 없다

by 노을 강변에서

권력이란 허공에 뜬 태양의 하루와도 같아서 그 힘이 절정에 이르고 나면 언제 그런 적이 있었냐는 듯 금세 꺾여버리지만, 금력은 뿌리 깊은 나무와 같아서 거친 비바람에도 흔들림이 적고, 해마다 찾아오는 혹한의 겨울을 견뎌낸다.


권력을 가지고 있을 때는 권력의 칼로 세상에 베지 못할 것이 없을 것 같지만, 권력은 손잡이 없는 양날의 검과 같아서 쥐는 순간 손을 베일 각오를 해야 하고, 섣불리 휘두르다 보면 상대방의 힘에 밀려 칼날이 자기 몸을 파고들 수 있다.


『노자(老子)』에 ‘표풍부종조(飄風不終朝)’라는 말이 있다.

폭풍은 아침 동안에 그친다는 뜻으로 아무리 권세가 강하더라도 이내 쇠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니 ‘권불십년(權不十年)’이니 하는 말들도 결국 권력의 무상함을 일컫는 말이니, 지금 권력을 가진 자라면 후일 권력을 놓았을 때를 대비할 일이다.




『통속편(通俗編)』에 ‘유전가사귀(有錢可使鬼)’라는 말이 있다.

돈이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가 있다는 뜻이다.


돈이 일상에 미치는 영향력이야 새삼 말할 필요조차 없으나, 돈이면 죽을 처지에 놓인 사람도 살려낼 수 있음을 『사기(史記)』의 다음 이야기가 말해주고 있다.


오(吳)나라를 멸하고 춘추시대 마지막 패자(霸者)가 된 월왕(越王) 구천(句踐)은 자신을 도운 명재상 범려(範蠡)에게 많은 상과 봉토를 하사하며 여생의 복락을 약속했으나, 권력의 무상함을 알고 있었던 범려는 홀연히 월나라를 떠나 제(齊)나라로 갔고, 그곳에서 커다란 부를 쌓았다.


범려에게는 아들이 셋 있었는데, 둘째 아들이 초(楚)나라에서 어쩌다 살인을 저질러 사형을 당할 처지가 되었다.


범려는 셋째 아들을 불러 황금이 가득 실린 수레를 주며 둘째 아들을 구해오라 하였는데, 이 소식을 들은 첫째 아들이 맏이인 자신이 가겠다고 고집을 부려 결국 첫째에게 그 일을 맡겼다.


범려는 첫째에게 초나라에서 벼슬을 하는 장생(莊生)을 찾아가 편지와 황금을 전한 후 즉시 돌아오라고 신신당부하였고, 첫째는 아버지의 말대로 장생을 만나 편지와 황금을 전했다.


그러나 첫째는 장생이 미덥지 않았던지 초나라에 머물며 아우의 석방 소식을 기다렸는데, 머지않아 죄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사면령이 내릴 것이라는 소문이 초나라에 돌았다.


첫째는 사면령이 내리면 동생도 자연히 풀려날 것이라 여기고, 장생을 찾아가 황금을 돌려 달라고 했다.


장생은 아무 말 없이 황금을 돌려주었고, 과연 며칠 후 소문대로 사면령이 내려졌으나, 무슨 영문인지 둘째는 사면령이 시행되기 전날 처형되었다. 이런 결과가 발생한 이면에는 다음과 같은 내막이 숨어 있었다.


장생이 초나라 왕을 찾아가 천문(天文)을 들먹이며 재앙이 닥칠 것 같다고 말하면서 죄수들을 풀어주어 덕을 베풀라고 진언하여 사면령을 내리게 된 것인데, 자초지종을 모르는 범여의 아들이 황금을 도로 찾아가자 괘씸하게 여긴 장생이 다시 초나라 왕을 찾아가 범려의 둘째 아들 방면을 위해 사면령을 내린다는 소문이 돌고 있으니, 백성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범려의 둘째 아들을 처형한 후 사면령을 내리는 게 좋겠다고 재차 진언한 것이다.


범려는 시체가 되어 돌아온 둘째 아들을 끌어안고 탄식하며 말했다.


“다 살려 놓은 둘째를 맏이가 죽였구나.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다. 내가 막내를 보내려고 한 것은 고생을 모르고 자라서 돈 아까운 줄 모르고 거금을 쓸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고, 맏이를 보내지 않으려고 한 것은 맏이가 어릴 때부터 나와 함께 일하며 돈 버는 어려움을 겪어 돈을 아끼니, 거금을 쓰지 않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사마천은 범려에 관한 이야기의 끝에 이런 말을 덧붙였다. “도덕이란 경제적 여유가 있을 때 꽃이 피고, 부유해야 덕을 베풀고 의리도 알게 된다. 천금을 가진 자의 자식은 거리에서 처형되지 않는다는 말은 틀리지 않다.”



『사기(史記)』에 ‘부귀도인성골육 곤궁골육역도인(富貴途人成骨肉 困窮骨肉亦途人)’이라는 말이 있다.

부귀하면 남도 형제처럼 나를 따르고, 가난하면 형제도 나를 남처럼 대한다는 뜻이다.


예부터 ‘피는 물보다 진하다’며 혈연관계를 중시하나, 피를 물보다 못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 돈이기도 하다.


피로 맺어진 사이라도 가진 것의 많고 적음에 따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짐을 보여주는 일화가 『사기(史記)』에 실려있다. 전국시대 6국의 재상을 지낸 소진(蘇秦)에 관한 이야기이다.


소진은 전국시대 이름만 겨우 유지하고 있던 천자의 나라 주(周)의 낙양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젊은 시절부터 출세욕이 남달랐던 그는 농사일을 돕지 않고 집안일에도 소홀하여 가족들에게조차 무시당하며 살았다.


소진은 유세가(遊說家)가 되어 명성을 얻겠다는 포부를 안고 운몽산을 찾아 종횡가(縱橫家)의 시조인 귀곡자(鬼谷子) 문하에서 수학한 후 주나라에서 벼슬자리를 얻으려 했으나 문전박대를 당하고, 이후 진(秦)나라와 조(趙)나라에서도 벼슬을 얻지 못해 연(燕)나라를 찾았는데, 강대국인 진나라의 위세에 눌려 지내던 연나라 문후(文侯)는 6국이 연합하여 진나라에 대적하자는 소진의 ‘합종책(合從策)’에 공감하고 그를 재상으로 등용했다.


연나라 재상이 된 소진은 진나라를 제외한 나머지 다섯 나라를 돌며 연나라에서 초나라에 이르는 거대한 동맹을 탄생시킨 공으로 무려 6국의 재상을 겸하게 되었다.


가난한 유세객에서 일약 6국의 재상이 된 소진은 어느 날 조나라로 가는 길에 고향인 낙양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그의 화려하고 위엄 넘치는 행렬은 마치 제왕의 행차와 같았고, 소진의 권세를 두려워한 주나라 현왕(顯王)은 그가 지나가는 길을 말끔히 청소하라고 명하면서 사람들을 보내 영접하게 하는 등 극진히 예우하였다.


소진은 지난날 자신을 업신여기고 박대하던 가족들을 만났는데, 모두가 벌벌 떨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


소진이 형과 형수에게 “예전에는 오만하게 저를 대하더니, 지금은 어찌 이렇게 공손합니까?”라고 말하자 형수가 나서면서 “지금 도련님의 지체가 높고 재물이 많은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소진은 “나는 예나 지금이나 같은 사람인데, 가난할 때는 그렇게 경시하더니, 부귀해지니 이토록 경외하는구나. 하물며 일반 사람들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라며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인간 세태를 한탄했다.



가진 것을 빼앗겼을 때도 권력과 재물은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권력을 빼앗기면 자신의 힘이 부족한 탓이라 여기며 대체로 순응하지만, 재물을 빼앗기면 분함을 견디지 못하고, 죽기 살기로 되찾으려 하는 것이 사람들의 보편적 심리이다.


이런 심리를 알지 못해 수십 년 동안 유지해 오던 권력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통치자가 최근 아프리카에 있었다.


30년간 수단을 철권 통치하던 독재자 알바시르 대통령이 그 주인공으로 그가 권좌에서 밀려난 것은 다름 아닌 ‘빵값 인상’이었다.


img.png 빵값 인상 때문에 권좌에서 쫓겨난 수단의 알바시르 대통령


2018년 12월 수단 정부가 빵값을 3배 인상하겠다고 발표하자 급격한 빵값 인상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수단 국민은 반정부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시위대는 최초 수백 명에 불과했지만, 정부군과 경찰이 강경하게 진압하는 과정에서 사망자가 발생하자 대규모 정권 퇴진 운동으로 이어졌고,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와 일부 군대까지 가담하면서 2019년 4월 11일 알바시르는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수십 년간 독재정치를 해도 불평하지 않았던 수단 국민이 정권 타도를 결심하게 된 것은 같은 빵을 사기 위해 이전보다 세 배의 돈을 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국가 간의 관계에서도 돈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주류 비평가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이 세계 패권을 두고 체제 경쟁을 했던 이른바 ‘냉전(冷戰:cold war)’에서 미국이 승리한 원인을 공산주의 체제의 한계나 미국 레이건 대통령의 강한 압박정책에서 찾지만, 원유가격의 폭락에서 비롯된 ‘돈의 전쟁’에서 소련이 패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흥미롭다.


1980년 초 원유가격은 배럴당 70달러를 웃돌다가 그해 말 10달러까지 떨어졌는데, 이 같은 원유가격의 폭락은 수출의 절반 이상을 석유와 가스에 의존하고 있던 소련 정부를 재정 파탄으로 내몰았고, 재정이 바닥난 소련 정부가 위성 국가들을 예전처럼 지원할 수 없게 되자 그들 나라가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연합체를 탈퇴하면서 동유럽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하였다는 것이다.




돈의 힘은 심지어 예술의 영역에서도 적지 않은 힘을 발휘한다.


2020년 2월 10일 미국 로스엔젤레스 할리우드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우리나라 영화 「기생충」이 최고상인 작품상을 비롯하여 감독상・각본상・국제극 영화상까지 무려 4관왕을 차지했다.


다음 날 우리나라 모든 언론은 관련 기사로 도배하다시피 하였고, 우리나라 예술 역사상 최고의 쾌거를 이루었다고 평가했다.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4개 부문 수상은 우리나라 영화사 101년 만에 처음 있는 일로 92년 전통의 아카데미상이 최초로 비영어권 영화에게 작품상을 수여했다는 점에서 백인 주류의 아카데미상 관행을 뒤집었으며, 이런 사실 하나만으로도 전 세계적 이목을 끌었다.


img.png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차지한 <기생충> 제작자와 출연진


그런데 이런 대이변의 배경에는 돈의 힘도 일정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카데미상은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 소속 회원 8,469명의 투표로 결정되는데, 여기에는 대통령 선거를 방불케 할 정도의 예산과 영화계 네트워크가 동원된다고 한다.


지금까지 미국 대형 스튜디오들의 독무대가 펼쳐졌던 이유이다.


한 유력 일간지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석권하게 된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로 봉감독의 작품을 꾸준하게 지원해온 우리나라 기업 CJ ENM의 노력을 거론하면서 이 기업이 「기생충」을 홍보하는 것에 최소한 1,000만 달러(우리 돈 110억) 이상을 투입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인의(仁義)를 평생의 신념으로 여겼던 맹자(孟子)조차도 경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러한 그의 정신은 ‘유항산자유항심 무항산자무항심(有恒産者有恒心 無恒産者無恒心)’에 잘 나타나 있다.


백성들이 기본적인 경제력을 가지면 도덕심을 가지게 되고, 그렇지 않으면 도덕심을 가질 수 없게 된다는 뜻이다.


이어 맹자는 “백성들을 곤궁하게 만들어 염치를 가질 수조차 없게 만들고서 사회질서를 지키지 못함을 이유로 벌을 준다면 이는 백성들에게 죄 주기 위해 그물질을 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명심보감(明心寶鑑)』에 ‘인의진종빈처단 세정편향유전가(人義盡從貧處斷 世情便向有錢家)’라는 말이 있다.


사람의 의리는 가난한 곳에서 끊어지고, 세상의 인정은 돈 있는 집으로 향한다는 말이다.


사마천은 “서민들은 상대방의 재산이 자기보다 열 배가 넘으면 그를 무시하고, 백 배가 넘으면 그를 두려워하며, 천 배가 넘으면 그의 심부름을 달게 하고, 만 배가 넘으면 그의 하인이 되고 마는데, 이것이 세상의 이치이다”라고 했다. 돈의 위력을 절절히 느끼게 하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흔히 우리는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고 말하지만, 그런 부정문의 이면에는 돈이 인생을 좌우한다는 뜻이 은밀히 숨어 있다.


부자들을 비난하며 가난을 정당화하려는 것도 옳지 않다.


아무 노력 없이 부모로부터 부를 물려받은 사람들도 있지만, 피땀 흘려 부를 이룬 사람들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가난 자체는 부끄러운 게 아니나, 가난에서 벗어나려 노력하지 않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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