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는 위기를 동반한다

by 노을 강변에서

누구에게나 일생 중 세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기회는 삶의 획기적 개선을 가져오는 좋은 의미로 여겨지나, 기회를 놓치면 위기를 부를 수 있다는 점에서 기회는 위기를 동반하며, 그런 의미에서 기회는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찾아온 기회를 잡지 못한 것이 오히려 재앙이 되어 산 같은 공덕을 모두 잃고 죽음을 맞아야 했던 불운한 인물의 이야기가 『사기(史記)』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 실려있다.


초한전(楚漢戰)이 한창이던 무렵 한신(韓信)이 제(齊)나라 왕으로 있을 때의 일이다.


항우(項羽)가 불리한 전세를 타개하기 위해 무섭(武涉)을 한신에게 보내 유방(劉邦)으로부터 독립하여 셋이서 천하를 삼분(三分)하자고 제안했다.


무섭이 돌아간 후 한신의 책사인 괴통(蒯通)이 한신에게 독립할 것을 권하며, ‘천여불취 반수기구 시지불행 반수기앙(天與不取 反受其咎 時至不行 反受其殃)’이라는 말을 했다. 하늘이 주는 것을 받지 않으면 도리어 나무람을 듣게 되고, 때가 이르렀는데 결행하지 못하면 도리어 재앙을 입게 된다는 뜻이다.


괴통은 “공은 세우기는 어려우나 무너지기는 쉬운 것이고, 시기도 마찬가지여서 얻기는 어려우나 잃기는 쉬운 것입니다. 이런 기회와 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하면서 한신이 유방의 편에 서면 유방이 승리하고, 항우의 편에 서면 항우가 승리하니, 한신이 어느 편에도 서지 않고 독립하면 천하는 안정되고, 백성들도 전쟁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라며 거듭 결심을 촉구했다.


그러나 한신은 유방의 은혜를 저버릴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괴통의 진언을 물리쳤고, 괴통은 자신의 계책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위험을 예감하고 한신을 떠나 은신했다.


그 후 해하전투(垓下戰鬪)에서 항우를 꺾고 천하의 주인이 된 유방은 한신을 모반죄로 체포하여 장안으로 압송하고, 신분도 왕에서 회음후(淮陰侯)로 격하했다.


좌절과 분노 속에 살아가던 한신은 후일 거록군 태수 진희(陳豨)의 반란에 가담했다는 죄명으로 체포되어 반역죄로 죽어가면서 괴통의 계책에 따르지 않은 것을 절절히 후회했다.




기회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므로 기회가 떠난 다음에야 뒤늦게 그것이 기회였음을 깨닫는 경우가 많다.


기회를 알아보는 능력이 부족하면 기회가 찾아와도 그것이 기회인지 모른다는 말이다.


조선 초 두 부류의 정치집단이 유사한 기회를 앞에 두고 전혀 다른 대처를 하여 상반된 결과를 초래한 사건이 몇 년을 사이에 두고 연이어 발생했다.


계유정난(癸酉靖難)과 단종복위운동(端宗復位運動)이 그것이다.


결과적으로 계유정난은 성공했고 단종복위운동은 실패했는데, 양자와 관련하여 기회가 어떻게 주어졌고, 양자의 주체세력이 그 기회에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살펴보면 왜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는지를 알 수 있다.


계유정난은 세종(世宗)의 둘째 아들인 수양대군(首陽大君)이 한명회(韓明澮)를 비롯한 일단의 세력과 함께 고명대신(顧命大臣)이자 권신인 영의정 황보인(皇甫仁)과 좌의정 김종서(金宗瑞)등을 살해한 후 권력을 장악한 쿠데타였다.


형인 문종(文宗)이 사망하면서 왕위찬탈을 준비해 오던 수양대군은 1453년(단종 1년) 10월 10일 거사를 앞두고 자신이 길러온 무사들을 급히 소집한 후 거병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와중에 무사 몇 명이 역모죄로 처벌될까 두려워 대열에서 이탈하였다.


img.jpg 영화<관상>에서 이정재가 연기한 수양대군


순간 전체 무사들이 동요하자 수양대군이 당황하여 계획을 미루려 하였으나, 한명회가 분연히 나서면서 “길가에 집을 지으면 의견이 분분하여 3년이 지나도 지을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결행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갑니다. 쇠뿔은 단김에 빼야 합니다"라며 거사의 즉각적 실행을 촉구했다.


잠시 생각에 빠져있던 수양대군은 마음을 고쳐먹고 남은 무사들을 거느리고 스스로 앞장섰고, 이로써 계유정난은 성공할 수 있었다.


단종복위운동은 1456년(세조 2년) 6월 1일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 등 집현전 학사 출신의 문신들이 중심이 되어 세조를 제거한 후 상왕으로 물러나 있던 단종을 복위시키려는 계획이었다.


거사 계획은 세조가 명나라 사신에게 연회를 베푸는 장소에서 별운검(別雲劍)을 맡은 성승(成勝)과 유응부(兪應孚)가 세조와 세자를 비롯한 계유정난 주역들을 제거하는 것이었는데, 공교롭게도 한명회의 진언에 따라 세조가 돌연 별운검을 폐지한 데다 세자마저 병을 이유로 연회장에 불참하면서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유응부 등 무신들은 일단 연회장에 참석한 왕과 보좌하는 신하들을 모두 죽인 뒤 단종을 모시고 호령하면 일시에 대세를 장악할 수 있고, 거사를 늦추면 배신자가 나올 수 있으니, 계획대로 결행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핵심 세력인 성삼문 등 문신들은 별운검이 폐지되어 세조를 제거하는 게 쉽지 않고, 세자가 변고를 듣고 경복궁에서 군사를 일으키면 성패를 알 수 없다며 뒷날을 기약하자고 고집했다.


결국, 거사는 연기되었고, 무신들이 우려한 대로 거사 동지였던 김질(金礩)이 그의 장인 정창손(鄭昌孫)과 함께 세조를 찾아가 고변하였다.


관련자들이 줄줄이 체포되면서 단종복위운동은 실패로 돌아가고, 가담자들은 하나같이 살이 찢기고 뼈가 으스러지는 모진 고문을 받은 후 처형되었다.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길에 유응부가 성삼문 등을 돌아보며 “사람들이 서생과는 함께 일을 도모할 수 없다고 하더니, 과연 그렇구나. 지난번 연회장에서 내가 칼을 사용하려 했는데, 그대들이 굳이 말려 오늘의 화를 초래하고야 말았구나”라며 한탄했다.


3년을 사이에 두고 벌어진 극적인 이 사건들은 두고두고 후세에 많은 이야기를 낳았다.


양자의 역사적 평가는 차치하더라도 기회의 측면에서만 살펴본다면 계유정난은 계획을 연기하지 않아 성공할 수 있었고, 단종복위운동은 계획을 연기하여 실패했다.


이 두 사례만 놓고 보더라도 기회는 과감한 사람을 편애하며, 우유부단한 사람을 멀리한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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