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정의 언덕에서 오래 머물지 마라

by 노을 강변에서


『주역(周易)』에 ‘항룡유회(亢龍有悔)’라는 말이 있다.


하늘 끝까지 올라가 내려올 줄 모르는 용은 반드시 후회할 때가 있다는 뜻으로 지극히 존귀한 지위에 올라간 자가 조심하고 겸퇴(謙退)할 줄 모르면 반드시 실패한다는 말이기도 하고, 욕심에 한계가 없으면 반드시 후회하게 됨을 비유하는 말이기도 하다.


『노자(老子)』에 나오는 ‘공성신퇴(功成身退)’라는 말도 유사한 의미를 지닌다.


공을 이룬 후에는 몸을 물러나게 해야 한다는 뜻으로 영광된 자리에서 너무 오래 머물면 몸을 보존하기 어렵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런 진리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자리를 지키며 차일피일 퇴진을 미루다 결국 멸족의 화를 당한 인물이 있었다. 진(秦)나라의 재상 이사(李斯)이다.


이사는 진나라 말기 재상으로 시황제(始皇帝)의 신임을 받아 황제의 다음 가는 반열에 올랐으며, 그의 일족 모두가 고관대작이 되었다.


절정의 영화를 누리던 어느 날 이사는 지방에서 벼슬을 하던 아들이 수도 함양으로 영전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 연회를 베풀었다.


백관의 으뜸이자 권세가인 재상의 초청에 조정의 문무백관 모두가 참석하여 축사를 올렸고, 이사의 장수와 가문의 번창을 기원하였는데, 이를 듣고 있던 이사가 문득 깊이 탄식하며 “나는 일찍이 스승 순자(荀子)로부터 매사에 성(盛)함을 금하라고 가르침을 받았는데, 오늘날 우리 일족 모두가 부귀와 영예의 극도에 이르렀으니, 달도 차면 기울듯 앞으로 내게 닥쳐올 일이 두렵구나”라고 말했다.


과연 그가 우려한 대로 머지않아 그를 신임하던 시황제가 죽고 호해(胡亥)가 다음 황제가 되면서 그의 자리를 탐내던 조고(趙高)의 흉계에 빠져 그의 일족 모두가 몰살당하고 말았다.




이와는 달리 비교 불가한 건국의 공을 세우고 독재자가 될 압도적 힘이 있었음에도 모든 권력을 스스로 내려놓고 홀연히 물러나는 공성신퇴의 교훈을 실천하여 당대에는 물론 후대에까지 극도의 존경을 받으며 사실상 신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 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다.


img.jpg 조지 워싱턴


조지 워싱턴은 1732년 미국 버지니아주의 중소 농장주이자 판사를 지낸 오거스틴 워싱턴의 아들로 태어났다.


11세 때 아버지가 질병으로 사망하면서 홀어머니와 어렵게 살았으며, 가정 형편상 초등학교 수준의 교육만을 받았다.


22세 때 영국군에 입대하여 중령의 직위로 버지니아 의용군을 이끌고 ‘프렌치 인디언 전쟁’에서 프랑스 식민지 군대와 싸워 공을 세웠으나, 식민지 출신이라는 이유로 영국 정규군이 되지 못하자 제대하여 고향으로 돌아갔다.


1758년 마사 커스티스라는 부유한 과부와 결혼하면서 부호의 반열에 오르게 된 워싱턴은 재력을 바탕으로 1759년 버지니아주 하원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후 영국 정부의 부당한 식민통치를 비판하며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1774년 제2차 대륙회의에서 대륙군 총사령관에 선출된 후 숙련되지 못한 군인들을 이끌고 세계 최강의 영국군과 싸워 승리했으나, 대륙군이 영국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듭할수록 대륙회의는 워싱턴에 대한 경계감을 높여갔고, 심지어 지원조차 미온적일 때가 많았다. 군대를 보유한 워싱턴이 전제군주가 되지 않을까 하는 의심 때문이었다.


1783년 파리평화조약으로 종전이 선언되면서 모든 이가 워싱턴의 다음 행보에 주목하였으나, 그해 12월 23일 워싱턴은 모두의 우려와는 달리 사령관직 사퇴와 더불어 모든 공직에서 물러날 것을 공식 선언하고 낙향했다.


이후 제헌의회가 구성되면서 각 주의 대표들은 만장일치로 워싱턴을 의장으로 추대하였고, 미합중국 헌법에 따라 1789년 2월 4일 세계사 최초로 국민이 직접 뽑은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워싱턴의 임기는 제한이 없었고, 그를 필적할 경쟁자도 없어 장기집권이 가능했음에도 두 번째 임기를 마친 후 많은 사람의 만류를 뿌리치고 자리에서 물러나 또다시 낙향했다.


워싱턴은 본인이 의도하면 전제군주가 될 수도 있었지만, 누구의 권유도 없이 스스로 내려왔다.


가진 권력을 더욱 강화하고, 분산된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키는 보통의 권력자와는 달리 권력의 정점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은 워싱턴의 지혜로운 선택은 후일 국민에 의해 자신의 이름을 미국 수도의 이름이 되게 하였고, 수도의 중앙에 자신의 기념탑을 건립하게 하였으며, 국회의사당 로툰다홀 천장에 여신의 보좌를 받는 자신의 인물화를 새기게 하였다.




한 사람의 일생에 절정기가 있듯 투자의 세계에도 절정의 단계가 있다.


전설의 투자가 피터 린치는 자신이 고안한 ‘칵테일 파티 이론’에서 절정단계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으며, 이 단계에서 머뭇거리다 보면 큰 손실을 보게 된다고 조언하고 있다.


월스트리트 역사상 가장 성공한 펀드매니저 피터 린치는 1977년부터 1990년까지 ‘마젤란 펀드’를 운영했는데, 1977년 2천만 달러에서 시작된 그의 펀드는 13년 동안 660배로 늘어나 그 규모가 132억 달러에 달했으며, 주식투자만으로 13년 동안 고객들에게 28배, 연평균 30%의 기록적인 수익을 안겨 주었다.


img.jpg 피터 린치


그의 놀라운 투자성적이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투자비결에도 세간의 이목이 쏠렸는데, 특히 칵테일 파티에 온 사람들의 행동에 따라 주식투자의 흐름이 4단계로 나누어진다는 그의 ‘칵테일 파티 이론’은 지혜로운 투자법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제1단계:자신이 펀드매니저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이 경우 조만간 약세이던 장세가 상승세로 돌아선다.


제2단계:자신이 펀드매니저라고 말하면 조금 관심을 보이다가 이내 다른 사람에게로 간다. 이 시기는 1단계보다 15% 상승해 있을 때이다.


제3단계:자신이 펀드매니저라고 말하면 열성적인 몇몇 사람들이 자신에게 어떤 주식을 사야 할지 물으며, 파티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주식시장에서 벌어진 일을 묻는다. 이 시기는 1단계보다 30% 상승해 있을 때이다.


제4단계:자신이 펀드매니저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자신을 에워싸고 특정 종목을 사라고 말해주고, 자신 또한 그들의 충고를 받아들였더라면 하고 아쉬워한다. 이 시기가 주식시장의 절정지점이며, 머지않아 급격한 하락이 시작된다.




‘월 스트리트의 살아있는 전설’, ‘영적인 투자가’ 등의 별칭을 가지고 있는 존 템플턴도 “강세장은 비관 속에서 태어나 회의 속에서 자라며 낙관 속에서 성숙해 행복 속에서 죽는다. 가장 비관적일 때가 가장 좋은 매수 시점이고, 가장 낙관적일 때가 가장 좋은 매도 시점이다”라고 하여 최고의 단계가 찾아오면 가진 것 모두를 던지고 즉시 그곳을 떠나라고 조언하고 있다.


이런 원리를 활용하여 대공황의 위기에서 자산을 보존하고, 후일 자신의 아들을 대통령으로 만든 현명한 인물이 20세기 초 미국에 있었다. 미국 제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아버지 조지프 케네디다.


img.png 조지프 케네디


조지프 케네디는 미국 월가의 투자자였다.


하루는 늘 다니던 증권회사의 창구에서 낯익은 얼굴을 보았는데, 그 사람은 증권회사 앞에서 늘 구두를 닦던 소년이었다.


구두를 닦을 시간에 증권회사 창구에 있는 것이 의아하여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그동안 부어온 적금을 털어 주식을 사려 한다고 했다.


조지프 케네디는 구두닦이의 돈까지 주식시장에 들어올 정도라면 주식 매수를 위한 자금 유입이 더는 없을 거라 판단하고, 주식시세가 천정에 닿았음을 직감했다.


그는 지체하지 않고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모두 팔아치웠는데, 그의 예상대로 얼마 있지 않아 주식시장이 폭락하며 대공황이 찾아왔다.


조지프 케네디가 이렇게 지켜낸 자산은 후일 아들인 존 F. 케네디가 대통령이 되는 경제적 발판이 되었다.


절정의 시점에 이르면 후유증 없이 내려갈 준비를 해야 함에도 오히려 가속해야 할 시점으로 오인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한 시점에 대한 진실은 적어도 그때가 지난 후에야 비로소 알 수 있지만, 매사가 뜻대로 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낙관이 내면을 지배하는 순간이 찾아온다면 그때가 인생의 정점일 확률이 높으며, 행여 그런 때가 온다면 이후 다가올 급격한 쇠락을 서둘러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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