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 작가 J.K. 롤링이 지은 판타지 소설 『해리 포터』는 67개 언어로 번역되어 약 5억 부가 판매된 세계적 베스트셀러로 2001년 「워너 브라더스」에 의해 전편이 영화로도 제작되었는데, 소설과 영화의 수입이 총 8조 원에 달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롤링의 순탄치 않았던 과거의 삶이 새롭게 조명되면서 화제가 되었다.
롤링은 1965년 영국의 브리스톨 근처에 있는 조그만 마을에서 롤스로이스 항공기의 엔지니어인 아버지와 과학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엑서터 대학을 졸업한 후 비서와 영어교사를 하며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던 중 포르투갈 남자를 만나 결혼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혼했다.
별다른 수입원이 없었던 그녀는 딸과 함께 동생 집에 얹혀살면서 빈민층에게 지급되는 생활 보조금으로 어렵게 살았다.
그 무렵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인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집필을 마치고, 1995년 여러 출판사 문을 두드렸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그녀의 원고를 받아준 출판사는 ‘블룸즈버리’라는 조그만 출판사였는데, 그때 받은 원고료는 1500파운드(우리 돈 230만 원)였고, 최초 출간 부수는 500부에 불과했다.
이후 불티나게 책이 팔리면서 1억 부를 돌파하였고, 1권의 성공에 이어 10년에 걸쳐 출간된 7권의 시리즈가 모두 성공을 거두면서 그녀는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작가가 되었다.
자신에게 대략 1조 원의 수입을 안겨준 『해리 포터』의 집필과 관련하여 그녀는 24세 때 맨체스터에서 런던으로 기차여행을 하던 중 문득 ‘소년 마법사 해리 포터’의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어릴 때부터 손에 잡히는 책이라면 가리지 않고 무수히 읽었고, 특히 『반지의 제왕』과 『나니아 연대기』는 하도 많이 읽어 책이 모두 헤어질 정도로 문학에 관한 열정이 대단했다.
그뿐 아니라, 10세 때부터 짧은 소설을 쓰기 시작할 정도로 문학에 관한 소질 또한 뛰어났다.
1965년 8월 영국에서 발표된 비틀즈의 노래 ‘예스터데이(Yesterday)’는 그해 10월 미국에서 싱글 순위 1위를 차지하면서 2,500번 이상 리메이크되었고, 현재까지 세계에서 가장 많이 리메이크된 음악으로 총 2,200개가 넘는 버전이 존재한다.
또한 ‘포퓰러 뮤직(popular music)’에서 사상 최고의 레코딩 기록과 함께 20세기에만 최소 7백만 번 연주되었으며, 1999년 BBC Radio 2 투표에서 20세기 가장 훌륭한 명곡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노래가 이처럼 유명해진 것은 무엇보다 곡이 훌륭해서이지만, 비틀즈의 멤버 폴 매카트니가 1964년 5월 어느 날 아침 꿈속에서 들은 선율을 그대로 옮겨 적어 작곡했다는 것 때문이기도 하다.
매카트니의 자서전에 따르면 자신의 여자친구 제인 애셔의 집에서 자는 도중 꿈속에서 이 노래의 멜로디를 들었는데, 잠에서 깬 순간 멜로디를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피아노로 달려가 곡을 연주했다고 한다.
그는 행여 그 곡이 다른 사람의 것일 수 있다는 생각에 한 달가량 음반관계자들을 찾아다니며 이 노래를 들은 적이 있는지 물어보았고, 몇 주가 지날 때까지 자신의 곡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 비로소 곡에 맞는 가사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매카트니는 ‘예스터데이(Yesterday)’라는 명곡이 우연히 자신에게 다가왔다고 술회했지만, 그는 어린 시절부터 댄스 밴드의 리더였던 아버지로부터 음악을 접하며 예술적 감각을 익혔고, 16세 때부터 비틀즈의 멤버가 된 후 1963년 22세의 나이에 앨범을 발표할 정도로 음악적 재능이 출중했다.
결론적으로 롤링이나 매카트니는 자신에게 우연히 찾아온 영감이 창작의 동기가 되었다고 말하지만, 사실상 그들의 작품은 타고난 재능과 부단한 연습이 낳은 결과물이었다.
영화 「어벤저스」에서 ‘헐크’역을 맡았던 마크 러팔로는 미국 영화배우로서 비중 있는 각종 영화제와 비평가협회에서 여러 차례 남우주연상을 받은 할리우드 스타이다.
배우 같지 않은 평범한 외모에 특별히 개성 있는 연기력을 보이지도 않는 그가 스타의 반열에 오른 것을 두고 우연과 행운이 겹친 인물로 평가절하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지만, 마크 러팔로는 끝없는 도전과 땀으로 꿈을 이룬 보기 드문 배우이다.
그는 일찍이 배우의 꿈을 가지고 오디션에 참가했으나, 특출한 외모나 개성이 없었던 탓에 매번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생활비가 부족하여 술집 바텐더와 페인트공을 전전하면서도 그의 도전은 무려 800회에 걸쳐 계속되었다.
이따금 보잘것없는 단역이 들어왔지만, 그는 실망하지 않고 반복된 연습을 통해 자신이 맡은 배역을 완벽하게 연기했다.
차츰 배우로서 인정받기 시작하던 무렵 뇌종양을 진단받고 10시간에 이르는 대수술을 받았으며, 후유증으로 얼굴 근육이 마비되고 한쪽 귀의 청력을 잃었지만, 끈질긴 재활운동을 통해 얼굴 근육을 되찾은 후 다시 연기에 나섰다.
사소한 배역에도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은 영화종사자들에게 호감을 주었고, 2012년 그의 열정과 성실성을 높이 평가한 세계적인 영화사 「마블」 제작진에 의해 ‘어벤저스’의 헐크 역이 제안되었다.
천금 같은 기회를 잡은 그는 내면에 헐크라는 괴물이 사는 이중적 배너 박사 배역을 완벽히 소화하였고, ‘어벤저스’가 공전의 흥행을 거두면서 스타덤에 올랐다.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수학자이자 과학자였던 아이작 뉴턴은 만유인력의 법칙뿐 아니라, 운동의 세 가지 법칙을 만들었고, 반사 망원경의 제작과 미적분학을 발달시키는 등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와 관련하여 가장 많이 알려진 일화는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다는 것인데, 천재는 단순한 자연현상에서도 의미심장한 영감을 얻는다는 사례로 지금도 많이 인용되고 있다.
그러나 ‘만유인력의 법칙’이라는 이 위대한 원리는 어느 날 우연히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발견한 것이 아니라,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나 케플러의 ‘행성운행의 법칙’ 등 태양계의 행성에 관한 수많은 성과물을 뉴턴이 오랫동안 연구하여 밝혀낸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일설에 따르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표할 당시 기자들이 법칙 발견의 유래를 묻자 뉴턴이 사과가 떨어지는 사례를 들어 설명하였을 뿐인데, 대중들에게 흥밋거리를 제공하고 싶었던 기자들이 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우연히 그 법칙을 발견한 것으로 기사를 썼고, 그 기사가 사실로 굳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많은 것들이 우연히 발생하고, 우연적 요소가 계산된 예측을 왜곡시키기도 하지만, 오늘날 인류가 누리는 문명 대부분은 천재들의 끝없는 도전과 부단한 노력이 누적되어 만들어진 것이고, 대부분 우연과는 거리가 멀다.
독일 통일의 시발점이 된 베를린 장벽 붕괴는 동독의 한 정치국원이 엉겁결에 우연히 내뱉은 말 한마디로 이루어졌고, 그 말은 ‘지금 당장’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이것 역시 우연적 요소를 과대평가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면서 소련이 점령한 동독과 미국・영국・프랑스가 점령한 서독으로 분할되었고, 동독 지역에 있는 수도 베를린도 전승국들에 의해 네 개로 분할되었다.
이후 동독 정부에서는 1961년 군을 동원하여 동베를린과 서방 3개국의 점령지역인 서베를린 경계에 콘크리트 담장을 쌓아 동베를린 시민들의 서베를린 탈출을 막았다.
서베를린으로 가는 길이 봉쇄된 동독 주민들은 주로 헝가리와 오스트리아를 통해 서독으로 탈출했는데, 1989년 5월 헝가리가 오스트리아와 접해있는 국경 철조망을 철거하면서 이 경로를 통해 동독을 탈출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9월에는 헝가리가 오스트리아와의 국경을 개방하고 동독 주민의 출국 여행을 허용하면서 9월 말까지 3만 명 이상의 동독 주민이 서독으로 탈출했다.
가을에 접어들면서 여행의 자유를 요구하며 시작된 동독 주민들의 시위가 날이 갈수록 격화하면서 그 규모가 100만 명을 넘어서자 이를 감당할 수 없었던 동독 당국은 여행의 자유를 보장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11월 9일 사회주의통일당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사회주의통일당 공보 담당 비서였던 샤보브스키는 “베를린 장벽을 포함한 모든 국경 통과 지점에서 출국이 인정된다”고 발표했다.
11월 10일부터 여행 허가에 관한 출국 규제를 완화한다”는 내용을 잘못 발표한 것이다.
이때 한 기자가 “언제부터 발효하는가?”라고 묻자 세부 사항을 몰랐던 샤보브스키는 자료를 뒤적이며 머뭇거리다가 즉흥적으로 “내가 알기로는…… 지금부터”라고 대답했다.
원래 여행 자유화는 다음 날 발효될 예정이었고, 출국비자는 관련 기관의 신청 절차를 거쳐야 했으나, 샤보브스키의 답변을 오해한 기자들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는 긴급뉴스를 전 세계에 타전했다.
TV 생중계로 이를 지켜보던 동베를린 사람들은 즉시 베를린 장벽으로 달려갔고, 상부의 구체적 지시를 받지 못한 동독 국경수비대는 몰려드는 대규모 군중의 힘에 밀려 머뭇거리다 이들이 서베를린으로 넘어가는 것을 방관했다.
자유를 얻기 위해 장벽을 넘다가 죽어간 수많은 동독 주민들의 피를 머금고 28년 동안 굳건히 버티고 있던 베를린 장벽은 그렇게 순식간에 허물어졌다.
이를 두고 언론들은 20세기 역사상 가장 극적인 순간 중 하나로 꼽히는 베를린 장벽 붕괴가 동독 관료 한 사람의 ‘어쩌다 던진 말 한마디’로 이루어졌다고 앞다투어 보도했다.
그러나 베를린 장벽의 붕괴가 어찌 한 사람의 우연한 말 때문에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독일의 통일은 분단을 극복하려는 동・서독 국민의 뜨거운 염원을 바탕으로 유능한 역대 서독 총리들의 지속적인 동방정책과 대 서방 설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사건이었다.
좋은 성적을 거둔 스포츠 선수들이 인터뷰에서 종종 “운이 좋았다”는 말을 하지만, 단순히 운이 좋아 그런 성적을 거두었다고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경험적으로 볼 때 우연히 얻어지는 것들은 가치가 없는 것이거나, 설령 가치가 있더라도 오래 머물지 않는다.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는 “우연으로 취급된 것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필연이 가끔 우연의 옷을 입고 나타날 뿐, 세상에 그냥 만들어지는 것은 거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