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조직이든 생존과 발전을 위해 갖춰야 할 조건들이 있는데, 그중 가장 기본적인 것은 효율적인 제도이다.
좋은 제도가 정착된 집단은 지도자의 교체나 주변 여건의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지만, 소수 지도자의 카리스마에 의존하는 집단은 사소한 외부 충격에도 쉽게 동요한다.
오늘날 인류가 어떤 생명체보다 안정 속에 번영을 누리게 된 것도 선조들이 이루어놓은 지식과 문명이 잘 보전되어 제도로 정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존 제도로 통제하기 어려운 변수는 언제든 돌출될 수 있고, 제도를 운용하는 것도 결국 사람이므로 제도만으로 모든 것을 완벽히 제어할 수 있다는 생각은 타당치 않다.
2016년 봄 전 세계 바둑계는 물론 바둑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조차 흥미롭게 지켜본 빅 이벤트가 서울에서 진행되었다.
3월 9일부터 15일까지 포 시즌스 호텔에서 하루 한 차례씩 총 5회에 걸쳐 구글의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인 ‘알파고’와 세계적인 바둑 고수인 우리나라 이세돌 9단의 대국이 펼쳐진 것이다.
이세돌은 12세이던 1995년 7월 입단한 후 18차례 세계대회 우승, 32차례 국내대회 우승 등 모두 50차례나 우승한 한국의 간판 바둑기사로 대국을 하기 전 이세돌은 4대 1 혹은 5대 0으로 자신이 이길 것으로 예측했다.
대국은 보통 5전 3선승제이나, 구글 측이 많은 데이터 확보를 원해 5국까지 모두 두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는데, 대국 결과 이세돌이 인공지능 ‘알파고’에게 1승 4패로 패배했다.
‘알파고’는 한 수씩 바둑을 둘 때마다 기하급수적으로 가중되는 상상을 초월한 수많은 경우의 수를 스스로 인식하고, 인간 고수들마저 이해하지 못하는 전혀 새로운 수를 두기도 했다.
해설하는 전문가조차 ‘알파고’가 왜 그런 수를 두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며 의아해했는데, 놀랍게도 그 새로운 수는 수십 수 뒤에 일어날 경우의 수를 고려한 정확한 예측의 수라는 것이 대국이 끝난 후 밝혀졌다.
세계 바둑계의 고수들이 인공지능에게 차례차례 무기력하게 패배하는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인공지능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그 힘이 어떤 재앙을 가져올지에 두려움을 가졌지만, ‘알파고’를 창시한 데미스 허사비스는 “그래도 기계는 인간을 이길 수 없다”고 말했다.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인간이고, 그것을 운용하는 것도 인간이며, 그것을 폐기하는 것도 인간임을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사기(史記)』에 ‘재덕부재험(在德不在險)’이라는 말이 있다.
나라의 안전은 임금의 덕(德)에 달린 것이지 지형의 험준함에 있지 않다는 뜻으로 주어진 여건이 아무리 훌륭해도 군주가 덕을 잃으면 나라를 온전히 보존할 수 없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사기(史記)』는 이 말과 관련하여 다음 이야기를 함께 전하고 있다.
『오자병법(吳子兵法)』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오기(吳起)가 서하 태수로 있을 무렵 위(魏)나라 무후(武侯)와 서하에 배를 띄우고 산천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문득 무후가 오기를 돌아보며 “훌륭하구나! 이 험준한 산하의 요새여! 이것이야말로 나라의 보배로다”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오기는 “나라의 보배는 임금의 덕행이지, 산하의 험준함이 아닙니다(在德不在險)”라고 말하면서 “망한 나라들은 지리가 험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임금이 정치를 바르게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임금께서 덕을 닦지 않으시면 배 안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적이 될 수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수천 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어느 한마디 그른 부분이 없다.
전국시대 초기인 기원전 440년 위(衛)나라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오기는 가산을 아끼지 않고 친구를 사귀었으며 의리를 중시했다.
하루는 자신을 건달이라고 비웃는 사람들 수십 명을 죽이고는 재상이 되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겠노라 맹세하며 노모를 뒤로한 채 노(魯)나라로 건너가 공자의 제자인 증자(曾子) 문하에서 유학을 공부했다.
오기는 모친의 사망 소식을 듣고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는데, 증자는 오기의 처신이 유가 사상에 어긋난 것이라며 그를 내쳤고, 이를 계기로 오기는 유학을 버리고 병법을 공부하였다.
이후 노나라에서 잠시 벼슬을 하던 오기는 위(魏)나라 군주인 문후(文侯)가 인재를 중시하고 개혁정치를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위나라로 향했고, 문후는 오기가 탁월한 전략가임을 한눈에 알아보고, 대장군에 발탁했다.
오기는 위나라에서 30년 가까이 머물며 76회의 전투를 치렀는데, 64회의 승리와 12회의 무승부를 거두었고,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오기는 ‘언제나 이기는 장수’라는 의미의 ‘상승장군(常勝將軍)’이란 별명을 갖게 되었고, 이러한 그의 활약으로 위나라는 사방 천 리에 달하는 영토를 확보하였으며, 전국시대 최강국으로 도약하였다.
명성이 높아지면 시기하는 무리도 많아지는 법, 오기의 업적이 쌓여갈수록 그를 중상모략하는 무리도 늘어갔다.
그러던 중 오기를 총애하던 문후가 세상을 떠나고 무후가 즉위하자 평소 오기를 시기하던 공숙(公叔)은 오기가 두 마음을 품고 있다고 무후에게 수시로 고해바쳤다.
무후의 마음이 돌아서고 있음을 간파한 오기는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위나라를 떠나 초(楚)나라로 몸을 옮겼다.
초나라 도왕(悼王)은 오기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던 터라 즉시 그를 재상으로 임명하고, 전권을 주어 국정을 관장하게 하였다.
오기는 귀족들의 과도한 특권이 초나라의 발전을 가로막는 요인이라 판단하고, 그들의 특권을 박탈하는 동시에 강병 양성을 비롯한 일대 개혁을 단행했다.
이로써 변방의 오랑캐 정도로 취급받던 초나라는 단박에 중원을 위협하는 강국으로 변모했으나, 오기가 떠난 위나라는 진(秦)나라와의 싸움에서 대패하는 등 20년이 채 되지 않아 오기가 있을 때 확장했던 영토는 물론 고유의 요충지조차 모두 빼앗기면서 약소국으로 추락했다.
오기의 존재 여부에 따라 두 나라의 국력이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면서 그의 이름은 더욱 드높아졌고, 영예는 절정에 달하였다.
그러나 오기의 운이 다하였는지, 그를 절대 신임하며 지지를 아끼지 않던 도왕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그동안 박해받았던 귀족들이 예전 특권을 되찾고자 일제히 궐기하여 오기를 공격했고, 쫓기던 오기는 도왕의 시신이 안치된 방으로 피신했다가 수많은 화살을 맞고 삶을 마감했다.
이때 오기가 화살을 무수히 맞는 과정에서 도왕의 시신에 화살 몇 개가 박혔는데, 왕의 몸(시신도 포함)에 해를 가하면 사형에 처하는 초나라 법에 따라 초나라 귀족 가문 중 70여 세대의 일족이 처형되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오기가 죽는 순간까지 자신을 공격한 무리의 보복을 생각했다며 병법의 대가다운 최후라고 했다.
오기의 전술을 담고 있는 『오자병법(吳子兵法)』은 오늘날 『손자병법(孫子兵法)』과 더불어 병법의 양대 산맥으로 평가받고 있다.
손자병법은 도교 철학에 기초한 속임수 위주의 병법으로 단기전에 유용하지만, 오자병법은 유교 철학에 기초한 정공법 위주의 병법으로 중・장기전에 유용한 전술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오자병법이 손자병법과 구별되는 점은 오기의 인간적 지휘 방법에 있다.
오기가 장군이 되면서 가장 먼저 한 것은 신분이 낮은 병사들과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식사를 하는 것이었다.
행군할 때는 말이나 수레를 타지 않았고, 자기가 먹을 식량을 직접 가지고 다녔으며, 잠자리에 들 때도 자리를 깔지 않는 등 어떤 것도 병사들과 차별을 두지 않았다.
언젠가 병사 한 명이 등에 종기가 나서 오기가 입으로 고름을 빨아 주었는데, 그 소식을 들은 병사의 어머니가 땅을 치며 통곡했다.
동네 사람들이 “일개 병사에 불과한 당신 아들을 대장군이 입으로 고름을 빨아 주었으면 감복할 일이지, 어째 슬피 우는 거요?”라고 물었더니,
그 어머니가 “일전 오기 장군이 남편 종기를 빨아 주어 그 은공을 잊을 수 없다며 장군을 위해 싸우다 죽었는데, 이제 자식의 종기까지 빨아 주었으니, 그 아이도 장군을 위해 죽을 것 아니겠소. 그러니 내가 이렇게 우는 것이요”라고 했다.
오기의 이 같은 자애로움은 병사들의 마음에 깊이 새겨졌고, 전투할 때면 나라를 위한 충성심보다 오기라는 장수 개인을 위한 충성심이 더 크게 작용했다.
아무리 훌륭한 작전을 사전에 짜 두었어도 병사들이 작전대로 움직여주지 않으면 승산이 없는 것이고, 아무리 사지에 몰렸더라도 병사들이 죽을 각오로 임하면 패하지 않음을 알고 있었던 오기는 이런 원리를 지휘 방법으로 활용했고, 그가 이끄는 부대는 무적의 군대가 될 수 있었다.
『삼국지(三國志)』에 ‘공심위상 공성위하(攻心爲上 攻城爲下)’라는 말이 나온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 상책이요 성을 공략하는 것이 하책이라는 뜻이다.
오기는 적을 공략하기에 앞서 부하들의 마음을 공략하는 것이 우선임을 알고 있었다.
부하들의 마음을 얻는 오기의 전략이 얼마나 효과적인지는 다음의 반대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부하들의 사기를 북돋아 힘을 하나로 모아도 부족할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홀로 전선을 이탈하여 휘하 병사들을 사지로 내몬 형편없는 지휘관이 있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5월 중순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현리 일대에서 펼쳐진 ‘현리전투(縣里戰鬪)’의 한국군 지휘관 유재흥(劉載興) 군단장이다.
1951년 4월 중공군 인민지원군 총사령 팽더화이(彭德懷)는 본국에서 지원군과 전쟁물자가 전선에 속속 도착하고, 때마침 연합군 사령관이었던 맥아더가 트루먼 대통령과 불화 끝에 해임되자 호기가 왔다고 판단하고, 이른바 ‘춘계 대공세’를 감행했다.
중공군 제12군단과 제27군단을 포함한 인민군 제5군단은 인제와 홍천을 잇는 교통의 요지이자 작전상 주요 보급로인 인제군 상남면 소재 오마치 고개를 점령했다.
오마치 고개를 적군에게 점령당하면서 5월 17일 제7사단의 오른쪽 지역을 방어하던 제3군단 예하 제3사단과 제9사단 병력은 퇴로를 차단당한 채 현리로 모여들었다.
포위당했다는 생각에 병사들의 불안감이 증폭되던 상황에서 제3군단장 유재흥은 부군단장을 대리로 지정한 후 작전 회의에 참석한다는 이유로 돌연 경비행기를 타고 군단 본부로 돌아갔다.
병사들 사이에서는 군단장이 홀로 도망쳤다는 소문이 돌았고, 이내 군심(軍心)이 흔들렸다.
그러던 와중 오후 5시 무렵 오마치 고개 탈환 작전에 나섰던 제9사단 일부 병력이 중공군의 반격을 받아 고지 탈환에 실패하고 퇴각하면서 지휘 통제가 완전히 무너져 군단 병력 전체가 혼돈상태에 빠져들었다.
지휘관의 공백 속에 순식간에 오합지졸이 된 한국군은 전투장비・수송수단・보급품 등 군수품 모두를 내팽개친 채 뿔뿔이 도주하였고, 사단장을 비롯한 지휘관들조차 계급장을 떼어낸 채 병사들 틈에 끼어 도주 대열에 합류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병사가 중공군에게 사살되거나 포로가 되었고, 인근 야산은 탈진과 굶주림으로 죽은 한국군들의 시체로 뒤덮였다.
일방적 탈주극에 가까웠던 이 전투에서 제3군단 병력 1만 9천여 명이 희생되었고, 병력의 40%만이 겨우 살아남아 평창의 하진부리에 집결할 수 있었다.
한국전쟁의 실질적 최고 지휘관이었던 밴 플리트 미8군 사령관은 현리전투의 어이없는 패전을 보면서 한국군 지휘관의 무능과 한국군 전체를 불신하게 되었고, 이는 육군본부의 작전권 박탈과 한국군의 모든 군단 사령부 해체라는 치욕적 결과를 가져왔다.
이때 밴 플리트 사령관이 유재흥과 나눈 대화는 지금도 인구에 널리 회자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밴 플리트 : 유 장군, 당신의 군단은 지금 어디 있소?
유재흥 :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밴 플리트 : 당신의 예하 사단은 어디 있소? 모든 포와 수송 장비를 상실했단 말이오?
유재흥 : 그런 것 같습니다.
밴 플리트 : 유 장군, 당신의 군단을 해체하겠소. 차라리 다른 일자리나 알아보시오
당시 유재흥 군단장이 작전 회의에 실제 참석했는가에 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나, 포위된 상태에서 부하들을 남긴 채 군영을 떠난 지휘관의 행태가 부하들의 불신과 공포를 조장하였고, 결과적으로 휘하 병력의 와해를 초래하였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오늘날 현리전투는 임진왜란 때의 칠천량(漆川梁)해전, 병자호란 때의 쌍령(雙嶺)전투와 더불어 한국 전쟁사 3대 패전 중 하나로 혹평받고 있다.
아무리 첨단 장비로 무장하고, 병사들 개개인의 전투역량이 뛰어나더라도 그들을 이끄는 지휘관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패전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현리전투가 말해주고 있다.
『순자(荀子)』에 ‘유치인 무치법(有治人 無治法)’이라는 말이 있다.
"다스리는 사람은 있지만, 다스리는 법은 없다"는 뜻으로 세상을 잘 다스리는 것은 사람에게 달린 것이지, 법에 달린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좋은 제도는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지만, 변화무쌍한 현실은 시시각각 사람의 직관적 판단을 요구한다.
번창하던 회사가 하루아침에 도산하고, 주변국을 호령하던 패권국이 어느 때부턴가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면 거기에는 분명 무능한 지도자의 용렬한 지도력이 자리하고 있으며, 부실하던 회사가 건실하게 변모하고, 변변찮은 나라가 주변을 위협하는 강국으로 도약하고 있다면 거기에는 분명 유능한 지도자의 탁월한 지도력이 자리하고 있다.
결국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