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모습이 전부를 장식한다

by 노을 강변에서

20세기 중반 미국에 록 허드슨이라는 미남 배우가 있었다.


img.jpg 리즈시절의 록 허드슨과 말년의 록 허드슨


1925년생인 그는 훤칠하고 잘생긴 얼굴에 그윽한 눈빛과 깊은 목소리를 갖춘 로맨틱한 남자 주인공의 전형이었으며,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3년 연속 최고 인기상을 받을 정도로 당대 최고의 청춘스타였다.


전성기 시절 그의 외모는 출중함을 넘어 범접하지 못할 정도였지만,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50대 후반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말라 비틀려진 그의 얼굴은 그를 멋지게 기억하던 전 세계 팬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충격을 주었다.


한편 영화 『자이언트』에서 록 허드슨과 함께 주연을 맡았던 제임스 딘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단 몇 편의 영화에 출연하였지만, 24세의 젊은 나이에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면서 가장 젊고 아름다운 시절의 얼굴이 마지막 모습이 되어 불멸의 청춘스타가 되었다.


img.jpg 제임스 딘




일제강점기 시절 나라를 대표하는 지식인으로 청년기에는 열혈 민족주의자였으나, 중년 이후 친일로 변절하여 역사에 오명을 남긴 인물이 있다.


이광수(李光洙)・ 홍명희(洪命熹)와 더불어 당대 3대 천재로 일컬어지던 최남선(崔南善)이다.


최남선은 1890년 한약방을 하던 아버지 최헌규(崔獻圭)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문학적 소질이 뛰어나 열 살 때부터 소설을 탐독하였고, 불과 12세의 나이로 황성신문(皇城新聞)에 투고할 정도로 필력이 출중했다.


15세 때 대한제국 황실에서 뽑는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 동경의 제일중학교에 입학하여 소년 반장이 되었는데, 일본인 교장이 “조선 민족은 열등하여 교육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듣고 비분강개하여 동맹휴교를 주도하다 퇴학 처분을 받고 귀국했다.


17세에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 대학에 다니면서 유학생 회보를 만들어 민족의식 고취에 앞장서다 다시 퇴학 처분을 받았으며, 귀국 후에도 조선광문회를 설립하여 조선어 편찬을 하는 등 민족지도자로서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경술국치(庚戌國恥) 이후 그의 민족정신은 더욱 맹렬해져 「기미독립선언서」를 기초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그로 인해 옥고를 치르면서도 결코 민족적 기개를 꺾지 않았다.


img.png 3.1운동으로 옥고를 치를 당시 최남선


그랬던 그였지만, 총독부의 집요한 회유에 굴복하여 1927년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찬위원회 위원을 시작으로 1941년 6월 일본의 전쟁 수행을 지지하는 글을 기고하였고, 1943년 11월 일본 메이지대학 강당에서 학도병 지원을 촉구하는 연설을 하였으며, 1945년 1월 「특공대의 정신으로 성은에 보답합시다」라는 글을 발표하는 등 철저한 친일 인사로 변신하였다.


이후 광복이 되면서 대표적 친일파로 분류되었고, 1949년 2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었다.


img.png 일제 말기 조선인 유학생 학병 독려를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 최남선(좌측 두번 째)


일제강점기 시절 누구보다 민족운동에 앞장섰던 그였지만, 마지막이 구차했던 탓에 오늘날 최남선의 젊은 시절 아름다운 역사는 흔적 없이 사라지고, 일신의 안위와 영달을 위해 민족을 팔아넘기려 애썼던 친일 분자로만 기억되고 있다.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기도 했던 피천득(皮千淂) 시인의 『인연』이란 작품은 어린 학생들의 마음에 사랑의 애틋함을 심어주었고, 인연의 소중함과 아쉬움을 느끼게 해준 아름다운 한 편의 동화였다.


시인은 이 작품을 통해 사람의 기억에서 마지막 모습이 얼마나 의미 깊은 것인지를 꿈꾸듯 표현했다. 수필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7세 때 일본 동경에 갔다가 사회교육가인 미우라 선생의 집에서 잠시 유숙하게 되었는데, 그 집 딸인 소학교 1학년생 아사코는 눈이 예쁘고 늘 웃음을 잃지 않는 예쁜 소녀로 자신을 오빠처럼 여기며 따랐다.


아사코는 꽃을 따 화병에 담아 책상 위에 놓아 주곤 하였는데, 동경을 떠나던 날 목덜미를 안고 볼에 입을 맞추며, 손수건과 작은 반지를 이별의 선물로 주었다.


십 년이 지난 후 동경에서 두 번째로 만난 아사코는 어느새 청순하고 세련되어 보이는 숙녀가 되어있었다.


img.jpg <인연>의 실제 주인공 아사코의 모습


함께 산책하던 중 아사코는 자신이 다니는 성심 여학원 캠퍼스에 들러 교실에 두고 온 우산을 가지고 나왔는데, 그 이후 여자 우산을 볼 때면 연두색이 고왔던 그 우산이 연상되었고, 「쉘부르의 우산」이란 영화를 그 이유로 좋아하게 되었다.


다시 십여 년의 세월이 지난 후 동경에 갔을 때 아사코가 미군 부대에서 근무하는 일본인 2세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아사코와의 인연을 알고 있던 미우라 선생의 안내로 아사코가 사는 집을 방문했는데, 예전의 청초한 모습은 간 곳 없고, 아사코의 얼굴은 백합같이 시들어가고 있었다.


시인은 글의 마지막 대목에서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라고 술회하였다.




부부의 인연을 맺고 수많은 세월 동안 남편과 함께 힘든 시절을 보냈으나, 마지막 조금을 견디지 못해 제후의 아내로 여생을 편히 살 기회를 날려버린 안타까운 사연이 『사기(史記)』에 실려있다. 강상(姜尙:일명 강태공 또는 여상) 의 아내 마씨(馬氏) 이야기이다.


주(周)나라 무왕(武王)의 선군인 태공(太公)이 바랐던 인물이라 해서 ‘태공망(太公望)’으로도 불리는 강상(이하 태공)은 동해에서 살고 있었는데, 70세가 넘을 때까지 일도 하지 않고 책만 볼뿐 도무지 집안 살림에 무심하였다.


그의 아내 마씨는 집안을 돌보지 않고 책에 파묻혀 사는 무능한 남편이 야속하기 그지없었지만, 불평 없이 남편을 대신하여 남의 집 일도 하고 농사도 지어가며 힘겹게 살림을 꾸려나갔다.


어느 흐린 날 일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서던 마씨는 멍석에 널어놓은 보리가 걱정되어 태공에게 보리가 비에 젖지 않게 해달라고 당부하였다.


얼마 후 소나기가 쏟아졌는데, 태공은 책 보는 데 열중한 나머지 보리가 비에 젖는지도 몰랐다.


마씨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멍석에 널어놓은 보리 대부분은 물에 쓸려 떠내려가고, 그나마 남은 보리도 흙탕물에 젖어 먹지 못하게 되었다.


마씨는 무능한 남편이 원망스러워 집을 나와버렸고, 이 광경을 지켜보던 태공은 “조금만 더 참으면 될 것을... 80세가 되면 내 운이 트이는데, 그것을 못 참고 떠나가다니 안타깝다”며 중얼거렸다.


이후 홀로 된 태공은 위수 강가로 집을 옮기고, 낚시로 소일하며 때를 기다렸다.


서백(西伯:후일 문왕)이 하루는 꿈을 꾸었는데, 천제(天帝)가 나타나 말하길 “위수에 가면 낚시하고 있는 현인이 있을 것이다. 그를 등용하면 천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일러주었다.


서백이 목욕 재개하고 위수에 가니, 과연 범상치 않게 생긴 백발노인이 낚시하고 있었다.


서백이 노인에게 다가가 천하를 얻을 방법을 물으니, 태공은 “민심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을 것”이라며, 천하대계(天下大計)를 논하는데 막힘이 없었다.


서백은 태공을 국사(國師)로 임명한 후 그의 계책에 따라 은(殷)나라를 무너뜨리고 주(周)나라를 창업하였으며, 태공은 그 공으로 제(齊)나라의 제후가 되었다.


제나라로 향하는 태공의 화려한 행차 길에 행색이 초라한 노파 하나가 길을 막고 태공을 뵙고자 했다.


태공이 자세히 보니 과거 아내였던 마씨였다.


마씨는 남편을 두고 떠난 잘못을 눈물로 후회하며, 다시 아내로 받아달라고 애원했다.


마씨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태공은 신하에게 물을 담은 그릇을 가져오라 하고는 그것을 땅에 쏟아버린 후 마씨에게 다시 그릇에 담아보라 했다.


마씨는 쏟아진 물을 그릇에 담으려 애썼지만, 손에 잡히는 것은 물에 젖은 흙뿐이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태공은 “그대와 나 사이는 이미 엎질러진 물과 같아서 돌이킬 수 없다”고 말하며, 옛 아내를 매정하게 내쳤다.


마씨는 자신을 거두지 않으면 목숨을 끊겠다고 버텼으나, 태공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가던 길을 재촉했고, 마씨가 그 자리에서 목숨을 끊자 태공은 대충 묻어주라 한 후에 어리석은 이를 꾸짖는 비석을 그 자리에 세우게 했다.


"한 번 쏟아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는 의미를 지닌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이라는 말이 생겨난 유래이다.


태공은 오랜 세월 동안 갖은 고생을 하며 자신을 뒷바라지하던 아내의 평소 모습보다 사소한 잘못을 이유로 자신을 버리고 떠날 때의 매정했던 아내의 마지막 모습만 기억하며 두고두고 괘씸하게 여긴 것이다.




꽃 같은 추억들이 산처럼 쌓여 있는 연인이라도 모진 말을 쏟아내며 돌아섰다면 그간의 고왔던 기억들도 이별과 함께 사라지고 말 듯, 절세의 미모를 뽐내던 미인이라도 늙어 추해지면 이전의 모습은 의미를 잃어버리듯 사람을 평가할 때도 최후의 행적은 전체 삶을 좌우하는 절대 기준이 된다.


한평생 살아가노라면 수 없는 만남과 이별을 경험하게 되지만, 피해야 할 것이 딱 하나 있다.


원수처럼 헤어지는 것이다.


불편했던 사이라도 화해하면 이전의 안 좋았던 기억은 저절로 사라지나, 아무리 좋았던 사이라도 불편하게 헤어지면 이전의 좋은 기억은 모두 사라지니, 처세의 관건은 마지막의 관리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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