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몸 색깔이나 모습을 능숙하게 변화시키는 동물들의 위장술은 일면 신비롭지만, 그들에게 위장술은 생존을 위한 필사적 행동이다.
동물들이 위장술을 쓰는 목적은 공격자가 먹잇감을 속이려는 경우가 많지만, 먹잇감이 공격자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경우도 적지 않다.
생존법의 하나로 활용되는 이 같은 동물의 위장술은 사람의 세상에서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큰 포부를 가진 사람이 적대자에게 자신을 형편없는 인물로 위장하여 경계감을 해제시킨 후 은밀하게 실력을 기르는 경우가 그렇다.
이 같은 위장술로 적대적 유력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후일을 도모했던 인물이 조선 말에 있었다. 임금 아닌 임금으로 천하를 쥐고 흔들었던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응(李昰應)이다.
이하응은 1820년(순조 20년) 영조(英祖)의 현손 남연군(南延君) 이구(李球)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왕손으로 태어나긴 하였으나, 12세에 어머니를, 17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불우한 청년기를 보냈으며, 장년기가 되어서도 한직에 머물며 곤궁한 처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철종(哲宗) 때에 이르러 안동김씨(安東金氏)의 권세가 극에 달하면서 왕위에 오를 가능성이 있는 종친들은 그들의 견제를 받아 온갖 범죄 혐의가 씌워져 귀양을 가거나 죽임을 당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유력한 왕족들이 차례로 제거되는 것을 지켜본 이하응은 야심가로서의 면모를 숨긴 채 ‘파락호(破落戶)’를 자처하며, ‘상갓집 개’라는 치욕적 별명을 얻을 정도로 외상술은 기본이요 안동김씨 일족의 집을 찾아다니며 구걸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안동김씨 세력은 이하응을 하찮고 타락한 양반 정도로 여기며 감시의 눈초리를 완전히 거두었고, 이들의 감시망에서 벗어난 이하응은 왕실 최고 어른인 조대비(趙大妃)에게 접근하여 자신의 둘째 아들 명복(命福)을 철종의 후계자로 삼는 데 성공했다.
조대비는 안동김씨를 친정으로 둔 시어머니 순원왕후(純元王后)로 인해 한 많은 궁중 생활을 했던 비운의 인물이었다. 조대비는 안동김씨 가문으로부터 멸시당하는 이하응에게 동병상련을 느꼈고, 그를 통해 그동안의 설움을 풀고자 했다.
마침내 1863년 12월 철종이 후사 없이 죽자 조대비는 12세의 명복을 철종의 후계자로 지명했고, 이하응은 ‘왕의 아버지’, 즉 ‘대원군(大院君)’이 되었다.
조선 역사상 대원군은 여럿 있었지만, 왕이 즉위할 때 생존하고 있었던 사람은 흥선대원군이 유일했다.
어린 왕을 대신하여 수렴청정하게 된 조대비는 흥선대원군에게 정책결정권을 주었고, 오랫동안 안동김씨에게 무시당하며 절치부심 기회를 노리던 흥선대원군은 최고 권력자가 되어 60년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를 일거에 끝장내 버렸다.
이와는 반대로 위장술에 능하지 못해 한순간 모든 것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진 어리석은 인물이 중세 유럽에 있었다. ‘태양왕’이라고 불리며 절대 권력을 행사했던 프랑스 루이 14세 때의 재무장관 푸케이다.
1643년 루이 14세는 아버지인 루이 13세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불과 5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모후인 안 도투리슈가 어린 루이 14세를 대신하여 섭정하였으나, 통치에 미숙했던 그녀는 이탈리아 출신의 재상 마자랭에게 사실상 전권을 위임하였고, 니콜라 푸케는 마자랭의 오른팔로서 프랑스 재정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어린 루이 14세는 신하들이 자신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나라의 재정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보며 언젠가 그들의 전횡을 바로잡겠다고 다짐했다.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된 루이 14세는 절대 권력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과다한 신권의 회수를 노리던 루이 14세의 사정권에 걸려든 인물은 평소 거만하면서 과시욕이 대단했던 재무장관 푸케였다.
푸케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저택을 짓겠다는 욕심으로 여러 마을을 헐어버린 후 당대 최고의 건축가와 화가들을 동원하여 10만 평에 이르는 대저택을 조성했다.
궁전에 버금가는 화려한 건축물과 온갖 꽃들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정원을 자랑하고 싶었던 푸케는 루이 14세와 귀족들을 대거 초대하여 불꽃놀이를 비롯한 성대한 연회를 베풀었다.
루이 14세는 축하의 말을 건네면서도 신하의 신분으로 왕 못지않은 부를 과시하는 푸케에게 모욕감을 느꼈다.
언짢은 시간을 보내고 있던 루이 14세는 하룻밤을 묵고 가라는 푸케의 제안을 뿌리친 채 자신의 궁으로 돌아왔고, 그로부터 한 달 뒤 공금을 횡령했다는 혐의를 만들어 푸케를 체포하라는 명을 내렸다.
왕의 의도를 파악한 법원은 푸케의 전 재산 몰수와 국외 추방령을 내렸으나, 루이 14세는 판결이 너무 온정적이라고 비난하며 이를 뒤집고 종신형을 내린 후 감옥에 가두라고 명령했다.
푸케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백방으로 구명을 요청했으나, 권위가 하늘을 찌르는 태양왕 루이 14세의 결정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고, 푸케는 15년 동안 차갑고 어두운 감옥에서 눈물의 나날을 보내다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지위가 높거나 가진 것이 많으면 시기하는 자도 많은 법이어서 겸양과 진중함으로 자신을 지켜야 했음에도 푸케는 오히려 거만과 과시로 처신하였으니, 스스로 제 무덤을 판 것과 다름없었다.
어리석은 사람은 누군가 자신을 부러워할 때 비로소 행복을 느끼나, 지혜로운 사람은 삶을 즐기되 자신이 가진 것을 드러내지 않는다.
부유함을 자랑하면 도둑을 부르고, 명예를 자랑하면 비웃음을 산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