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맥에도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by 노을 강변에서

한때 ‘인맥(人脈)’이 사회적 담론의 관심사가 되어 명사(名士)들의 단골 강연 주제가 되고, 관련 서적이 넘쳐나던 때가 있었다.


좋은 인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홀로 해결해야 할 일을 여럿이 함께하는 격이니, 세상살이가 그만큼 수월하고, 이런 효능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에게 도움이 될 법한 사람들과의 관계 형성에 공을 들인다.


그러나 인맥은 등가적 성격이 짙어서 어느 일방의 필요만으로는 형성되지 않고, 서로의 이익이 상호 공존하는 동안에만 유지되며, 어느 일방이 상대에게 어떤 이익도 주지 못하는 상황이 새롭게 전개되면 인맥은 저절로 끊어진다.


그래서 오래도록 친분을 유지하던 사람이 언제부턴가 연락을 끊거나 예전과 달리 냉랭해졌다면 그 이유를 다른 것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회적 위치나 능력이 이전보다 못해진 것에서 찾아야 한다.


과거 어떤 유명인이 방송에 출연하여 수천 개의 번호가 저장된 자신의 휴대전화를 내보이며 그 많은 사람이 자산이라도 되는 양 과시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미래의 어느 날 그가 사회적 영향력을 잃고 곤경에 처하여 그들에게 도움을 청한다면 그를 돕기 위해 몇 사람이나 달려올지 자못 궁금하다.


단언컨대 그들 대부분은 이런저런 이유를 들면서 도움을 거절하거나 심지어 안면을 바꿀 것이다.


『사기(史記)』에 나오는 다음 이야기를 살펴보면 인맥 유지의 조건이 무엇인지, 인맥의 연결고리가 얼마나 취약한지 쉽게 알 수 있다.


전국시대 조(趙)나라에서 벼슬을 하던 목현(穆賢)의 식객 중 인상여(藺相如)라는 인물이 있었다.


한번은 목현이 어떤 죄를 지어 혜문왕(惠文王)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는데, 이 일로 처벌되지 않을까 두려워하다 이웃 연(燕)나라로 망명하려고 했다.


인상여가 이를 말리며 망명의 이유를 묻자 목현은 “내가 전에 연왕(燕王)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연왕이 내 손을 잡으며 친구가 되자고 했으니, 내가 가면 반갑게 맞아줄 것이다”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인상여는 “연나라는 약소국이고 조나라는 강국입니다. 연왕이 당신과 친구가 되자고 한 것은 당신이 강국인 조나라 왕의 총애를 받고 있어 행여 자신에게 도움이 될 거라 여겼기 때문인데, 이미 왕의 총애를 잃고 노여움까지 산 당신을 연왕이 반갑게 맞아줄 것 같습니까? 이대로 연나라로 가면 연왕은 당신을 보호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사로잡아 조나라로 압송할 것입니다. 차라리 웃통을 벗고 형틀을 짊어진 채 왕에게 죄를 청하면 운 좋게 용서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라고 설득했다.


목현이 인상여의 말을 듣고 옳다고 여겨 그의 말대로 했더니, 과연 혜문왕은 그를 용서하고 다시 예전처럼 신임하였다.


사람 간의 관계가 얼마나 얄팍하고 계산적인지를 알게 하는 또 다른 이야기가 『사기(史記)』에 실려있다.


‘문 앞에 새 잡는 그물이 쳐졌다’는 뜻을 가진 ‘문전작라(門前雀羅)’에 얽힌 고사이다.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 급암(汲黯)과 정당시(鄭當時)라는 대신이 있었다.


그들은 매우 어질고 의리를 소중히 여겨 집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극진히 대접함은 물론 손님의 신분을 가리지 않고 겸손한 태도를 잃지 않아 주위의 칭송이 높았으며, 집 앞은 항상 그들을 찾는 손님들로 붐볐다.


세월이 흘러 급암은 바른말을 했다는 이유로, 정당시는 자신이 천거한 사람이 죄를 지었다는 이유로 모두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는데, 두 사람은 워낙 청렴하여 모아둔 재산도 없는 데다 녹봉마저 받지 못하게 되어 생활 형편이 말이 아니었다.


그들의 처지가 예전과 달라지자 그동안 줄을 잇던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발길을 끊었고, 집 마당에는 새들만 한가롭게 노닐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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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司馬遷)은 “아무리 어진 사람이라도 세력을 잃게 되면 이와 같은데, 하물며 일반 사람은 어떠하겠는가”라며 비정한 세상의 인심을 한탄했다.


자신의 사회적 신분이 높을 때 친교를 맺는 것은 신분의 추락을 대비하기 위한 것이며, 부유할 때 친교를 맺는 것은 빈곤을 대비하는 것이라 말들 하지만, 막상 자신의 지위를 잃거나 가난에 처하면 이전의 친교는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된다.


인맥이란 자신의 능력이 건재할 때만 의미를 지니는 거미줄보다 못한 가상의 연결선에 불과하다.


‘인맥 비만’이라는 말이 있다. 몸에 군살이 많으면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듯 필요 이상의 인맥은 에너지만 소모할 뿐 인생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인맥이 빈약하여 정작 필요할 때 지인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방만한 교우 관계로 삶이 번잡해지는 것 또한 문제이다. 인맥에도 다이어트가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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