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꿈 하나보다 작은 꿈 여러 개가 좋다

by 노을 강변에서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에는 늘 자기계발서가 상당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으며, 가장 흔한 주제는 ‘꿈’이다.


‘꿈꾸는 인생이 아름답다’, ‘겁 없이 꿈꾸고 거침없이 도전하라.’ ‘젊은이여! 향기롭게 꿈꾸고 미친 듯이 도전하라’ 등 세상의 종말이 코앞에 닥쳐와도 꿈을 잃지 말라고 종용하고 있다.


기업 이미지 제고를 위한 광고용 카피 역시 단연 ‘꿈’이 압도적이다.


꿈조차 꾸지 않는다면 현실에서 맛보는 열패감을 극복할 마땅한 정신적 도피처가 없는 탓이기도 하겠지만, 꿈꾸었던 목표가 좌절된 후 찾아오는 허탈과 상처를 생각한다면 섣불리 꿈을 꾸라 재촉하는 것도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사전적 의미의 ‘꿈’은 생리학적 의미와 사회학적 의미로 나눌 수 있는데, 통상 ‘꿈을 가지라’는 말은 후자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사회학적 의미의 꿈도 두 가지로 나누어지는데, 하나는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을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실현될 가능성이 부족하거나 전혀 없는 헛된 기대나 생각’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꿈을 가지라고 말할 때 그 꿈은 전자에 해당하나, 노력하지 않으면서 바라는 것에 그치거나 능력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추구한다면 후자의 꿈과 다를 게 없다.


『열자(列子)』에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말이 있다.


어리석은 사람이 산을 옮긴다는 뜻으로 쉬지 않고 꾸준히 한 가지 일만 열심히 하면 마침내 큰일을 이룰 수 있음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되며, 다음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


북산(北山)에 우공(愚公)이라는 아흔 살 된 노인이 살고 있었다.


노인의 집 앞에는 너비가 칠백 리, 높이가 만 길이나 되는 두 개의 산이 가로막고 있어 생활이 불편했다.


어느 날 노인이 가족에게 말하길 “우리 가족이 힘을 합쳐 두 산을 옮겼으면 한다. 그러면 길이 넓어져 다니기에 편리할 것이다.”


터무니없는 이 말에 가족은 반대했지만, 노인의 의지가 강경하여 다음 날부터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우공과 아들・손자가 지게에 흙을 지고 발해 바다에 한 번 가져다 버리고 돌아오는 데 꼬박 1년이 걸렸다.


이 모습을 본 이웃 사람이 “이제 머지않아 죽을 당신인데, 어찌 그런 무모한 짓을 합니까?”라며 비웃자 “내가 죽으면 내 아들, 그가 죽으면 손자가 계속할 것이오. 그동안 산은 깎여 나가겠지만, 더 높아지지는 않을 테니, 언젠가는 길이 날 것이오”라고 했다.


두 산을 지키던 산신이 이 말을 듣고는 두려운 마음에 즉시 상제(上帝)에게 달려가 산을 구해달라고 호소하였고, 이 말을 들은 상제는 두 산을 각각 멀리 삭 땅 동쪽과 옹 땅 남쪽으로 옮기도록 했다.


이 말 같지도 않은 이야기는 헛된 꿈을 경계하는 고사로 인용되어야 마땅함에도 꾸준히 노력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좋은 의미로 포장되어 명사로 존경받는 사람들조차 인용하는 흔한 고사가 되었다.




이와 유사한 의미를 지닌 말로 『당서(唐書)』에 ‘마부작침(磨斧作針)’이라는 말이 있다.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노력을 멈추지 않으면 반드시 이룰 수 있음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이 말은 오늘날 시선(詩仙)으로 추앙받고 있는 당(唐)나라 시인 이백(李白)과 관련된 것으로 다음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


젊은 시절 학문에 소홀하던 이백이 뒤늦게 마음을 다잡고 상의산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했으나, 흥미 없는 공부에 이내 싫증을 느껴 하산하기로 마음먹고 집으로 가는 길에 냇가에서 한 노파가 무엇인가를 열심히 갈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이백이 다가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라고 물었더니, 노파는 “도끼로 바늘을 만든다”고 대답했다.


이백이 기가 막혀 큰 소리로 웃자 노파는 가만히 이백을 쳐다보며 꾸짖듯 말했다.


“비웃을 일이 아니다. 중도에 그만두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이 도끼로 바늘을 만들 수가 있다.”


이 말을 들은 이백이 크게 깨달아 그 후로는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여 역사에 길이 남을 대시인이 되었다.


일면 무거운 가르침을 주는 고사인 것 같지만, 이 역시 헛된 일에 에너지를 낭비하는 무모하고 어리석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도끼와 바늘의 용도가 엄연히 구분되어 있고, 도끼를 훼손하여 용도가 전혀 다른 바늘을 만드는 것은 수많은 바늘을 녹여 도끼를 만드는 것처럼 무익한 일임에도 바람직한 행동인 양 뭇사람들에게 인용되고 있다.


바르지 못한 목표는 애초 시작도 말아야 하고, 쉼 없이 노력하면 이룰 수 있는 목표라도 효율성이 떨어진다면 같은 노력으로 더 많은 성과를 낼 수 있는 목표로 전환함이 옳다.


꿈은 가능성과 현실성을 동시에 갖추어야 하며, 한 방울의 땀이라도 헛된 곳에 소모되지 않도록 설계하여야 한다.




이루기 어려운 한 개의 꿈을 가지는 것보다 쉽게 이룰 수 있는 작은 꿈을 많이 가져야 할 이유는 많지만, 가장 큰 이유는 성취의 기쁨을 자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꿈은 소소하게 많은 게 좋고, 년・월・일 단위로 잘게 쪼갤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게 좋다.


인생 전체가 하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거대한 과정이 되어선 안 된다.


쉽사리 이룰 수 없는 커다란 꿈을 위해 평생을 시련 속에 사는 것보다 실현 가능한 작은 꿈들을 인생길에 촘촘히 세워두고, 그것들을 하나씩 이루어가며 그때마다 만족을 누리는 게 훨씬 보람되고 지혜로운 삶이다.


고달픈 현실 탈피가 꿈이었던 한 소년이 작은 성취와 좌절을 겪으며 성장을 거듭하여 후일 세계적 기업을 일으키고, 나아가 가난한 농업국을 진격의 공업국으로 이끌었던 개척 시대의 위대한 경영인이 있었다. 현대그룹의 창업자 정주영(鄭周永)이다.


1915년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정주영은 소학교를 졸업한 후 가정 형편상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아버지의 농사를 도우며 지냈다.


img.png 청년시절의 정주영


버지는 정주영이 자신처럼 농사꾼이 되기를 원했으나, 아버지 뜻에 따르면 평생 가난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 여기고 아버지의 소 판 돈을 훔쳐 무작정 가출했다.


딱히 정해진 목표도 갈 곳도 없었던 그는 막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다 서울 신당동에 있는 ‘복흥상회’라는 쌀가게에서 점원 생활을 했는데, 노름에 빠진 외아들에게 실망한 가게 주인이 성실한 정주영에게 감복하여 그에게 쌀가게를 넘겨주었다.


쌀가게를 운영하며 안정을 찾아가던 무렵 일제 당국이 쌀 배급제를 시행하면서 가게 문을 닫게 되자 이를 계기로 대부업자 오윤근에게 돈을 빌려 직원 80명을 둔 자동차 수리공장을 개업했다.


손님이 늘어가면서 차츰 기반을 잡아가던 중 화재로 공장이 전소하면서 무일푼이 되었으나, 대부업자 오윤근을 다시 찾아가 빌려준 돈을 받으려면 자신의 재기를 도와야 한다는 억지 주장을 펴며 재차 돈을 빌려달라고 사정했다.


정주영의 성실함과 남다른 집념을 잘 알고 있었던 오윤근은 빚 갚을 것을 독촉하는 대신 다시 돈을 빌려주었고, 정주영은 그 돈을 발판으로 보란 듯이 재기에 성공하여 빌린 돈을 모두 갚았다.


해방 이후 건설 붐이 일 것으로 예측하고 현대건설을 설립했는데, 과연 미군정 당국의 주도로 각종 건설공사가 진행되었고, 때마침 주한미군 통역장교로 복무하던 동생 정인영(鄭仁永)의 도움으로 관급 공사를 도맡으면서 창사 10년 만에 전국 10대 건설사로 도약했다.


머지않아 한국전쟁이 터지고 전후 복구사업이 전국적으로 진행되면서 건설사들은 어떤 사업체보다 호황을 누리게 되었고, 현대건설은 나라를 대표하는 건설사로 우뚝 서게 되었다.


이어 조선업과 자동차산업에 연이어 진출하면서 사세를 확장하여 오늘날 현대를 삼성과 더불어 나라를 대표하는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그의 자전적 수필집 『시련은 있으나 실패는 없다』에 “높은 산을 오를 때엔 산 정상을 바라보지 말고, 다음 발을 디딜 곳만 보며 오르는 게 좋다”는 말이 있다.


img.jpg 현대그룹 회장 시절의 정주영


머나먼 최종 목표만을 바라보면 현재의 노력이 보잘것없게 여겨져 중도 포기하게 되니, 작은 목표를 끊임없이 설정하고 이루어가노라면 언젠가는 종국의 목표에도 이르게 될 것이라는 조언일 것이다.


정주영이 고향 집을 나설 때부터 자동차산업이나 조선업을 일구겠다는 꿈을 꾸었겠는가. 평생 뼈 빠지게 일해도 곤궁함을 벗어나지 못하는 아버지 같은 삶을 살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가출을 결심했을 것이고, 공사판에서 막일꾼으로 있을 때는 말끔한 정장을 입고 번듯한 빌딩에서 근무하는 사무원이 부러웠을 것이며, 쌀가게 점원으로 일할 때는 그 가게 주인이 되는 게 꿈이었을 것이다.


그는 주어진 현실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쉼 없이 꿈꾸었고, 처음에는 아주 작았던 꿈이 시간이 갈수록 크게 바뀌었으며, 목전에 놓인 새로운 꿈의 실현을 위해 최선을 다하다 보니, 그토록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된 것이다.




작은 꿈을 꾸었기에 조그만 성취에도 행복할 수 있었던 아름다운 사건이 몇 해 전에 있었다.


우리나라 여자 수구 국가대표팀의 이야기다.


2019년 7월 광주에서 ‘세계 수영선수권 대회’가 열렸다.


언론들은 선수들의 활약상을 다양하게 전했는데, 유난히 눈에 띄는 소식이 있었다.


우리나라 여자 수구팀 선수들이 조별 리그 러시아와의 2차전 경기에서 첫 골을 넣었다는 소식과 함께 선수들이 환호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광경이었다.


img.jpg 우리나라 여자 수구팀 선수들이 한 골을 넣고 환호하는 장면


우승한 것도 아니고, 겨우 한 골을 넣었을 뿐임에도 선수들이 그처럼 격한 감정을 보이고, 언론이 관심을 가진 것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우리나라에는 여자 수구팀이 없었는데, 개최국 자동 출전이라는 경기 규정에 따라 대회 두 달을 앞두고 여고 수영 선수를 주축으로 대표팀이 간신히 구성되었고, 제대로 된 코치진도 없이 40여 일간의 짧은 연습 기간을 거쳐 경기에 출전했다.


선수들의 꿈은 거창하지 않았다. 한 골을 넣는 것이었다.


64골을 허용하면서도 한 골도 넣지 못한 헝가리와의 첫 경기를 치르면서 선수들의 꿈은 더욱 간절해졌고, 그래서 러시아팀에게서 얻은 한 개의 골은 우승한 것과 다름없는 기쁨을 선수들에게 안겨주었다.


남들이 보기에 그들의 꿈은 작고 초라했지만, 실현 가능한 꿈을 꾸었고, 그 하나의 골로 평생 기억에 남을 환희를 느낀 것이다.


사람마다 행복의 조건이 다르고, 같은 결과를 두고도 만족도가 다른 이유는 개성의 차이가 아니라, 꿈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꿈이 크면 설령 깨지더라도 파편이 크다는 이유로 꿈은 클수록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꿈이 금덩이라면 가능한 논리이지만, 꿈을 도자기에 비유한다면 그런 주장이 합당할까?


꿈이 클수록 깨졌을 때 입는 상처는 클 수밖에 없고, 상처가 클수록 재기의 시간은 그만큼 길어지니, 꿈이 꿈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면 꿈의 크기를 줄이라고 권하고 싶다.


사람들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다소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결국은 부나 명예로 귀결된다.


부족함 없이 살고 싶고, 남부러운 사회적 지위를 누리고 싶은 것을 어느 누가 비난할 수 있을까마는, 꿈의 종착점을 그런 것에 두게 되면 성취도 쉽지 않거니와 설령 이룬다 해도 잠시의 희열에 그칠 뿐 영구한 만족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숫자에 상한선이 없듯 세속적 욕구에도 끝이 없으며, 물리적 성취가 주는 만족감은 순간에 그칠 뿐 이내 연기처럼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새로운 욕구가 채워진다.


삿포로 농학교의 초대 교감이었던 월리엄 스미스 클라크가 일본인 학생들에게 말했다고 알려진 ‘Boys, be ambitious(소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는 마치 세속적 성취를 추구하라는 말로 이해하기 쉽지만, 그가 한 말의 전문(全文)을 읽어보면 ‘야망’이 그런 의미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BOYS, BE AMBITIOUS, not for money, not for selfish accomplishment, not for that evanescent thing which men call fame. Be ambitious for attainment of all that a man ought to be: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돈을 위해서도 말고, 이기적인 성취를 위해서도 말고, 사람들이 명성이라 부르는 덧없는 것을 위해서도 말고, 단지 인간이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얻기 위해서”


세상살이가 어려운 것은 능력이 부족한 탓이기도 하지만, 능력 밖에 있는 것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비현실적 목표에 쏟는 정열의 일부를 실현이 가능한 목표로 전환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고, 그로 인해 더 많은 행복을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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