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함을 사소하게 여기지 마라

by 노을 강변에서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라는 말이 있다.


미세한 변화나 작은 사건이 예상치 못한 엄청난 결과로 이어진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거대한 바다도 대지에 떨어지는 빗방울 하나에서 시작되었듯 아무리 대단한 것이라도 미세한 것들의 작용들이 모이고 연결되어 이루어진다.


사소한 사실 하나가 거대한 비극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고, 별생각 없이 행한 몸짓 하나가 세상을 구하는 거룩한 행동이 될 수도 있다.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한강을 가로지르는 성수대교의 상부 트러스 50m가량이 순식간에 절단되면서 강물 위로 떨어지는 후진국형 사고가 발생했다.


32명의 사망자를 포함하여 49명의 사상자를 낸 이른바 ‘성수대교 붕괴사건’이다.


img.jpg 성수대교 붕괴 사고


사고 원인이 건설사의 부실 공사와 감리 담당 공무원의 부실 감사로 드러나면서 공분을 일으켰고, 무엇보다 등교를 위해 시내버스를 타고 가던 꽃다운 무학여중생과 무학여고생 9명이 사망하여 국민의 마음을 더욱이나 아프게 하였다.


그런데 정작 세인의 관심을 끈 것은 사고의 원인보다 사람들이 어떤 차에 타고 있었느냐에 따라 생사가 달라진 것이었다.


당시 다리를 지나던 승합차 1대와 승용차 2대는 분리된 상부 트러스와 함께 한강으로 추락하여 탑승자 모두 가벼운 부상에 그쳤던 반면, 한성운수 소속 16번 시내버스는 뒷바퀴 부분이 대교의 절단 부위에 잠시 걸쳐 있다가 무게 중심이 뒤로 쏠리면서 이미 강물에 떨어져 있던 다리 상판에 추락하여 승객 대부분이 사망했다.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16번 시내버스는 어째서 하필 뒷바퀴 부분이 절단된 대교의 가장자리에 걸쳐 있게 된 것일까?


운전기사가 조금만 더 속도를 냈거나 줄였다면, 승객이 한 명만 더 탔거나 덜 탔더라면, 승객이 한 명만 더 내렸거나 덜 내렸다면, 타고내리는 승객들의 동작이 조금만 더 빨랐거나 느렸더라면 그 불행한 지점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추락을 피하여 승객 모두 무사했거나, 불행하게 추락했어도 상부 트러스와 함께 추락하여 승객들 모두 가벼운 부상에 그쳤을 텐데 말이다.




성수대교 붕괴사건처럼 수십 명의 억울한 사상자가 발생한 것만도 가슴 아픈 일인데, 한 사람의 사소한 부주의로 문명사회의 절반이 전쟁의 포화로 뒤덮이고, 수천만 명의 청년들이 죽음으로 내몰린 사건이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사라예보 사건’이다.


1914년 6월 28일 보스니아의 도시인 사라예보에서 육군 군사훈련 독려를 위해 방문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왕위 계승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그의 부인 조피가 19세 청년에게 암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암살자는 보스니아 출신의 세르비아계 청년 가브릴로 프린치프로 비밀결사인 ‘검은 손’의 단원이었으며, 이 단체는 오스트리아에 의해 병합된 보스니아를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으로부터 독립시키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img.jpg 가브릴로 프린치프


이들의 첫 번째 암살 시도는 실패로 끝났는데, 한 명은 권총을 품에서 빼지 못했고, 다른 한 명은 대공 부인을 불쌍히 여겨 포기했으며, 나머지 한 명은 폭탄을 던졌지만, 빗나가는 바람에 수행원들을 부상시키는 데 그쳤다.


테러의 조짐이 이처럼 뚜렷했음에도 대공 부부는 저격이 쉬운 오픈카를 타고 직전 사고의 부상자 위문을 위해 병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차량 통제가 없었기 때문에 대공 부부를 태운 차량은 신호를 준수하며 운행하고 있었는데, 운전기사가 잠깐 한눈을 팔면서 신호를 놓쳐 정차하게 되었다.


그런데 대공 차량이 정차한 지점이 하필이면 범인인 프린치프와 공범이 타고 있던 차량의 바로 옆이었다.


호위 차량 때문에 대공 부부의 차량에 접근하기 어려워 계획을 포기하려 했던 프린치프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대공의 목과 대공비의 복부에 총을 발사하였고, 두 사람은 모두 현장에서 즉사했다.


6X1fBCe0ELC.jfif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사라예보 사건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이 사건으로 1914년 7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 세르비아에 선전포고하고, 주변국들이 양 진영으로 갈라져 참전하면서 유럽 대륙이 일제히 전쟁에 돌입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것이다.


역사에 가정이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지만, 만약 대공 부부의 운전기사가 신호를 놓치는 사소한 실수를 하지 않았다면 암살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고, 수많은 젊은이가 암울한 전쟁터에서 그렇게 허무하게 죽어가진 않았을 것이다.




어머니의 눈물로 세자가 되었고, 세자가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또 다른 형제의 칼에 목숨을 잃어야 했던 비운의 왕자가 조선 초에 있었다.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의 계비인 신덕왕후 강씨(神德王后 康氏)의 막내아들 이방석(李芳碩)이다.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는 첫째 부인 한씨(韓氏)에게서 여섯 아들을 두었고, 둘째 부인 강씨(康氏)에게서 두 아들을 두었다.

강씨는 개경의 명문가 출신이었지만, 한씨가 공양왕(恭讓王) 3년에 사망할 때까지는 후처일 수밖에 없었고, 조선 개국 당시 막내인 방석은 겨우 열한 살이었다.

개국 초 어느 날 태조는 공신인 정도전(鄭道傳)・조준(趙浚)・배극렴(裵克廉) 등을 불러 후계문제를 논의하였는데, 그들은 한목소리로 “시국이 평안할 때는 적자(嫡子)를 세우고, 시국이 어지러울 때는 공이 있는 자를 우선해야 합니다”라고 진언했다.

나라가 안정되고 시국이 평안하다면 장자인 이방우(李芳雨)를 세워야 하나, 당시는 개국 초이고 시국이 안정되지 못했으므로 공이 있는 다섯째 이방원(李芳遠)을 세자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시국의 안정 여부를 떠나 첫째인 이방우는 조선 개국에 부정적이었으므로 결국 세자 후보는 둘째인 이방과(李芳果)와 공이 많은 이방원으로 압축되어 논의가 진행되었는데,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이 전개되었다.


옆방에서 이런 논의를 엿듣고 있던 신덕왕후 강씨가 자신의 소생이 세자 후보에 오르지 못하게 되었음을 알고 소리 높여 통곡한 것이다.


DmfEYNFPgSg.jfif KBS드라마 <정도전>에서 이일화가 연기한 신덕왕후 강씨


강씨를 지극히 사랑했던 태조는 결국 그녀의 눈물에 흔들려 막내인 이방석을 세자로 책봉했다.


강씨의 눈물은 자신의 소생을 나라의 차기 주인으로 예약하는 것에는 성공했으나, 그것으로 인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아들 모두는 차기 왕위를 노리던 이방원에 의해 살해되고 말았다.


강씨가 공신들의 세자 논의를 옆방에서 듣지 않았더라면, 들었더라도 소리 내어 울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사랑했던 두 아들이 형제의 손에 목숨을 잃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를 두고 후세 사람들은 여자의 사소한 눈물이 세자를 바꾸었고, 그 눈물이 자식들을 죽였다고 했다.




『사기(史記)』에 ‘태산불사토양(泰山不辭土壤)’이라는 말이 있다.


큰 산은 한 줌의 흙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아무리 거대한 것도 사소함에서 시작하므로 사소함을 무시하면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


시황제(始皇帝)가 진(秦)나라 왕으로 있을 때의 일이다.


타국 출신의 관료들이 진나라에서 세력을 넓혀가자 위기감을 느낀 진나라 출신 왕족과 대신들이 그들을 축출해야 한다며 집단으로 진왕(秦王)에게 탄원했는데, 그 이유는 타국 출신들이 진나라의 정보를 가지고 자국으로 돌아가면 진나라에 커다란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들의 주장에 공감한 진왕은 타국 출신 관료들에게 본국으로 돌아갈 것을 명했고, 초(楚)나라 출신이었던 이사(李斯)도 축출 대상에 포함되었다.


이사는 진왕에게 “신이 듣건대 땅이 넓으면 곡식이 많아지고, 나라가 크면 백성이 많으며, 병력이 강하면 병사가 용감해진다고 합니다. 태산은 본디 한 줌의 흙도 사양하지 않았으므로 그렇게 높이 되었고, 큰 강과 바다는 작은 물줄기라도 가리지 않았으므로 그 깊음에 이른 것입니다”로 시작되는 그 유명한 『간축객서(諫逐客書)』를 올려 객경(客卿)의 축출이 불가함을 주장했다.


이 글을 읽은 진왕은 크게 감동하여 객경들의 축출을 철회하고 오히려 우대하니, 그들은 하나 같이 힘을 다해 진나라를 위해 일했고, 진왕은 이들의 도움으로 천하를 통일하는 위업을 이룰 수 있었다.




‘하인리히 법칙‘이라는 말이 있다.


이 법칙은 미국 보험회사의 관리자였던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가 17년 동안 각종 산업재해를 통계적으로 분석하여 1931년 『산업재해 예방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주장한 것으로 산업재해로 중상자 1명이 나오면 그전에 같은 원인으로 29명의 경상자가 발생했고, 역시 같은 원인으로 부상의 위험에 노출되었던 300명의 잠재적 부상자가 있었다고 하면서 이를 ‘1:29:300 법칙’이라고 명명했다. 즉 큰 사고는 관리되지 못한 사소한 것들이 누적되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주역(周易)』에 “신하가 군주를 시해하고 자식이 아비를 죽이는 일은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쌓이고 쌓인 잘못이 그런 결과를 가져온다”는 말이 있다.


노자(老子)도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일부터 비롯되며, 천하의 큰일도 사소한 일부터 비롯된다. 그래서 어려운 일은 쉬울 때 손을 써야 하고, 큰일을 하고자 할 때는 사소한 것부터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어떤 문제라도 사소할 때는 작은 힘만으로 통제할 수 있으나, 사소함이 누적되어 거대해지면 온 힘을 다해도 통제가 어려워지니, 사소함에 머물 때 수습에 나서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물론 모든 사소함에 신경을 곤두세울 것까지야 없겠으나, 큰 위험을 예고하는 의미 있는 사소함마저 가벼이 여기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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