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가 좋으면
과정은 저절로 좋아진다

by 노을 강변에서

2019년 6월 17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기분 좋은 행사가 열렸다.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20세 이하 청소년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달성한 우리나라 청소년 축구대표팀을 환영하는 자리였다.


언론은 좋은 성적을 거둔 원인을 분석하기 바빴는데, 선수 개개인의 역량보다 정정용 감독의 지도력에 보도의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정감독은 화려한 선수 시절도 없었고, 프로선수로 활동한 적도 없었기 때문에 더욱 주목을 받았다.


‘그라운드의 제갈공명’, ‘소통의 달인’ 등 최고의 찬사가 그에게 쏟아졌고, ‘변화무쌍한 전술의 구사’와 ‘맞춤식 선수기용’이 결승 진출의 비결이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EObe4fmxtyB (1).jfif 2019년 FIFA U-20 월드컵에서 우리나라 청소년 대표팀을 준우승으로 이끈 정정용 감독


청소년 축구대표팀은 예선전을 치를 때만 해도 포르투갈과의 첫 번째 경기에서 0대1로 패해 16강 진출이 힘들 것이라는 예측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이후 예상을 깨고 16강전부터 연전연승하며 결승까지 진출했다.

그런데 결승까지 진출한 과정을 잘 살펴보면 매 경기 우리 팀이 상대 팀을 압도한 것은 아니었다


(세네갈과 치른 8강전을 예로 들면 1:1 동점인 상황에서 후반 30분에 한 골을 허용하여 1:2로 뒤지다가 후반 40분에 추가 골을 허용하여 1:3이 되었는데, 비디오 판독으로 세네갈 선수의 핸드볼 반칙이 선언되어 1:2가 되었다. 이후 후반 종료 3분을 앞두고 한 골을 허용하여 다시 1:3이 되었는데, 역시 비디오 판독으로 오프사이드가 선언되어 1:2가 되었다. 후반전 정규시간이 종료되고 추가 시간 8분이 주어졌는데, 다행히 추가 시간 종료 3초를 앞두고 극적인 만회 골이 터져 동점이 되었다. 이후 전개된 연장 전반전에서 우리 선수들이 한 골을 추가하여 3:2로 역전에 성공했으나, 세네갈 팀이 연장 후반전 종료 1초를 앞두고 다시 만회 골을 터트려 3:3 동점이 되면서 승부차기로 이어졌다. 승부차기에서도 우리 선수들은 초반 두 골을 연속으로 실축하여 패색이 짙었으나, 막판 뒤집기에 성공하여 3:2로 간신히 승리했다).


만약 우리 대표팀이 16강에도 이르지 못하고 예선 탈락을 했다면 언론은 정감독을 어떻게 평가했을까? 앞서 언급한 ‘변화무쌍한 전술’은 ‘일관성 없는 전술’로, ‘맞춤식 선수기용’은 ‘마구잡이식 선수 교체’로 저주에 가까운 악담을 퍼부었을 것이다.




어떤 결과물이 있으면 일정한 과정이 있기 마련이지만, 사람들이 주목하는 것은 오로지 결과이며, 그것에 이르는 과정에는 무심한 편이다. 일반적으로 결과가 좋으면 과정에 다소 문제가 있더라도 너그럽게 이해해주며, 심지어는 그런 과정이 있어서 그런 결과가 있었노라 미화하기도 한다.


인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인물을 평가할 때도 사람들은 그들이 세상에 남긴 결과물에만 관심을 둘뿐 그들이 살아온 행적들은 그것을 장식하는 부속물 정도로 여긴다.


예컨대 기원전 4세기 고대 마케도니아의 왕이었던 알렉산드로스 3세는 대다수 사람이 ‘알렉산더 대왕’이라 칭하며 동・서양을 하나로 잇고 그리스문화와 오리엔트문화를 융합시킨 영웅으로 평가하지만, 그가 10여 년에 걸쳐 그리스・페르시아・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도시를 불태우고 약탈했는지, 반란지의 시민들을 어떻게 무자비하게 학살했는지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


조송(曹松)의 시 『기해세(己亥歲)』에 ‘일장공성만골고(一將功成萬骨枯)’라는 말이 나온다. 한 명의 장수가 공을 세우려면 만 명의 뼈가 마른다는 뜻이다.

대제국을 건설한 영웅들의 이야기는 오늘도 각종 매체를 통해 거창하게 윤색되어 우러름을 받지만, 살아서는 영광을 누리고 죽어서는 이름을 남기려고 그들이 일으킨 전쟁에서 희생된 병사들과 남겨진 가족들의 고통, 그리고 자신의 땅에서 평화롭게 살다가 이민족의 침략을 받고 영문도 모르고 죽어간 숱한 사람들의 참상을 생각한다면 과연 알렉산더를 불세출의 영웅이니 위대한 정복자니 하는 말들을 쉽게 할 수 있겠는가.




신라의 장수 김유신(金庾信) 또한 오늘날 국사 교과서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위인으로 대접받고 있지만, 그의 청년기는 영웅적 풍모와는 거리가 멀었다.


6uQvb7NJTj0.jfif 충청북도 진천군 소재 길상사에 있는 김유신 장군 영정


젊은 시절 김유신은 벗들과 더불어 술을 즐겨 마셨고, 천관녀(天官女)라는 기생을 사랑하여 그녀의 집에 자주 드나들었다. 그의 어머니가 이런 사실을 알고 꾸짖어 말하기를 “나는 네가 공명(功名)을 세우고 임금과 어버이를 위해서 영예롭게 되기를 바랐는데, 어찌 천한 아이들과 어울려 기생집과 술집에서 놀아나느냐”며 울음을 그치지 않자 김유신은 크게 뉘우치고 천관녀의 집에 발길을 끊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만취하여 말을 타고 귀가하던 길에 깜빡 잠이 들었는데, 김유신의 말은 주인이 자주 가던 옛길을 기억하고, 그를 천관녀의 집으로 안내했다. 천관녀는 기쁨과 원망이 뒤섞인 눈물을 흘리며 반갑게 맞이했지만, 술에서 깨어 정신을 차린 김유신은 그녀가 보는 앞에서 자신을 태우고 온 말의 목을 베어 죽인 후 매정하게 돌아섰다. 주인이 술에 취하면 늘 가던 곳으로 충직하게 안내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말을 칭찬하는 대신 목을 베어 죽인 것이다.


이 이야기는 한 번 결심하면 반드시 지킨다는 김유신의 영웅적 기상을 보여주는 일화로 전해지고 있지만, 방탕했던 지난날의 제 잘못은 탓하지 않고, 주인을 위해 충성을 다한 죄 없는 짐승의 목을 자른 행위가 과연 칭송할 일인지는 의문이 간다.


그가 삼국통일을 이룬 명장이 아니었다면 결코 미화되지 못할 행태이며, 결과가 좋으면 어떤 과정도 아름답게 바라보려는 세인들의 ‘결과 만능주의’가 빚어낸 억지 미담이 아닐 수 없다.




이와는 반대로 최후의 승자가 되지 못해 일관되게 세계인의 비난을 받는 인물이 있다. 독일 나치스의 지도자이자 나치 독일의 총통이었던 히틀러이다.


제1차 세계대전 패전 후 독일은 가혹한 베르사유 조약에 묶여 전 국민이 고통 속에 살았다. 패전국 독일이 배제된 가운데 전승국에 의해 일방적으로 체결된 베르사유 조약으로 독일은 해외식민지를 모두 잃고, 알자스 로렌 지방을 프랑스에 반환해야 했으며, 막대한 배상금까지 떠안게 되면서 독일은 유럽을 호령하던 국가에서 하루아침에 후진국으로 전락했다.


패전으로 독일이 지급해야 할 배상금은 독일 국민의 세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22년을 모아야 갚을 수 있는 천문학적 금액이었다. 독일 정부는 화폐 윤전기를 쉴 새 없이 돌리는 것에서 해결책을 찾고자 했고, 전쟁으로 자원이 고갈된 상태에서 무차별 풀린 돈을 화폐 가치를 속절없이 하락시켰다. 빵값은 2,000억 배나 뛰어 빵 하나를 사려면 수레에 돈을 가득 싣고 가야 했고, 주부들은 지폐를 땔감으로 사용하였으며, 아이들은 돈다발로 블록을 쌓으며 놀았다. 절망한 가장들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도시를 빠져나가 추수가 끝난 감자밭을 헤집고 다녀야 했다.


BqcaQYXRHjY.jfif 제1차 세계대전 패전 후 살인적 인플레이션 하에서 독일 아이들이 돈다발로 블록 쌓기 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


인플레이션이 가장 극심했던 1923년의 물가는 10년 전보다 10억 배에 달했으며, 마르크화의 가치도 폭락해 그해 겨울 1달러는 4조 2000억 마르크에 거래되었다.

알뜰살뜰 살며 평생 모은 돈을 은행에 저축한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하층민으로 전락한 반면, 인플레이션을 이용하여 자산을 헐값에 인수한 대기업과 유대인 자산가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부를 축적했다.


독일 국민은 가혹한 전후 처리를 강요하는 연합국과 무능한 독일 정부, 그리고 자산을 독점하고 있는 유대인에게 분노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발 대공황의 여파가 밀어닥치면서 물자는 더욱 부족해지고, 국민은 내핍을 강요당했으며, 거리에는 실업자가 넘쳐났다.


미국・영국・프랑스 같은 전승국은 해외식민지 덕분에 그나마 대공황을 버텨낼 수 있었지만, 각종 경제봉쇄로 무역조차 차단된 독일은 파멸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던 무렵 민주 공화제 타도, 독재정치 강행, 베르사유 조약 폐지, 반(反)유대주의, 다국적 기업 공격 등을 내세우며 현란한 연설로 국민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한 인물이 혜성처럼 등장했다. 히틀러였다.


9tJUVq43x4V.jfif 열광적인 군중들의 환호를 받고 있는 히틀러


일당 독재 권력을 수립한 히틀러는 독일경제를 좌우하던 유대 자본을 강제로 빼앗아 경제재건의 자금을 확보한 후 도로・댐・군수산업 등을 통해 완전 고용에 이를 정도로 실업자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고, 각종 노동자 우대정책을 펼치며 근로자의 지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였다.


히틀러가 쏟아내는 각종 기간산업 육성정책이 사기업 발전의 원동력이 되면서 경제는 활력을 되찾았고, 군사력도 크게 증강되어 독일은 단기간에 유럽 최고의 군사 대국으로 발돋움했다.


이로써 독일은 패전국의 우울한 그늘을 완전히 걷어내고, 이전의 국제적 위상을 되찾았음은 물론, 어느 나라도 함부로 대하지 못할 강대국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긍정적 성과의 이면에는 나치의 일당 독재에 의한 불법적 정치공작이 난무했지만, 이런 것들은 가시적인 경제부흥과 군사발전에 취한 독일 국민의 광적인 환호 속에 모두 묻혀 버리고 말았다.


히틀러 연구가이자 역사학자인 라이너 자이틀만은 히틀러를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히틀러는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고, 노동자에게 더 좋은 집을 지어주고, 산업을 현대화하고, 복지제도를 세우는 등 과거의 반동적 특권을 없애는데 특히 관심이 많았던 인물이었다. 비록 잔인한 방법을 썼을지언정 한마디로 더 좋고 더 앞서고 계급에 좌우되지 않는 독일 사회를 만들려고 애쓴 사람이었다. 히틀러라는 인물이 아무리 유대인을 악마로 몰아세우고 세계를 휘어잡기 위해 승산이 희박한 무모한 싸움에 뛰어들었을지라도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훨씬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했던 정치인이었다.”


모든 역사는 히틀러를 자신의 민족만을 우월한 인종으로 여기고 유대인 말살을 시도한 잔인한 독재자로 기록하고 있지만, 그는 보통의 독재자들과는 구별되는 정치적 행로를 걸었다. 무력을 이용한 비상수단이 아닌 합법적 선거를 통해 수상의 자리에 올랐고, 유대인 탄압이나 침략을 통한 영토 확장도 선거공약으로 공공연히 내세웠던 것이어서 집권 후 그가 행한 일련의 정책은 국민에게 약속한 공약을 충실히 이행한 것이었다. 그는 재물을 탐하여 부정축재를 하지 않았고, 사치를 일삼지도 않았다. 또한 술과 담배를 금하여 금욕을 스스로 실천했으며, 여자를 탐닉하거나 유흥에 빠지지도 않았던 지도자였다.

1939년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한 히틀러는 패전국의 지도자였다는 이유만으로 그가 이룬 나름의 업적은 역사의 시궁창에 내던져지고, 인류 최악의 독재자요 학살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써야 했다.




‘성즉군왕 패즉역적(成則君王 敗則逆賊)’이라는 말이 있다. 같은 일이라도 성공하면 왕이 되고, 실패하면 역적이 된다는 뜻으로 세상 모든 일은 결국 승자에게 이롭게 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마키아벨리도 『군주론』에서 “군주가 전쟁에서 이기고 국가를 보존하면 그 수단조차 모든 사람에 의하여 명예롭게 찬양받게 되는 것은 사람들이란 그저 외양의 결과에 감명을 받을 뿐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여 과정은 결과의 종속물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역사의 기록을 보더라도 승자에게는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그 행적을 아름답게 포장하지만, 패자에게는 업적을 쪼그라뜨리고 실책은 부풀려 모든 행적을 비난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래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생겼다.


좋은 과정 없이 어찌 좋은 결과가 있으랴만 좋은 과정은 좋은 결과가 전제될 때 비로소 빛을 발할 수 있다. 과정은 발광체가 아니라, 반사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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