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분자가 될지언정 극단에는 서지마라

by 노을 강변에서

‘과유불급(過猶不及)’을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라고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과(過)’는 지나침을 의미하고, ‘유(猶)’는 같음을 의미하며, ‘불급(不及)’은 미치지 못함을 의미하니, 지나치는 것이나 미치지 못하는 것이나 다르지 않다는 의미이다.


‘과유불급’은 『논어(論語)』에 나오는 말로 공자(孔子)가 제자들에게 중용(中庸)의 도(道)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등장한다.


어느 날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자장(子張)과 자하(子夏)의 인물됨을 물었더니, 공자는 “자장은 지나치고, 자하는 미치지 못한다”고 대답하였다.


자공이 “그렇다면 자장이 더 낫다는 말씀입니까?”라고 되물으니, 공자는 “아니다. 지나치는 것과 미치지 못하는 것은 같다”고 대답했다.


즉 지나치는 것이나 모자라는 것이나 모두 좋지 않으니,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장자(莊子)』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장자가 제자들과 함께 산길을 가던 중 나무꾼을 만났다.


나무꾼은 가지와 잎이 무성한 큰 나무를 보고는 “옹이가 너무 많아 쓸모가 없구나”라고 말하면서 그냥 가버렸다.


그 광경을 본 장자는 “이 나무는 쓸모가 없는 덕택에 베어지지 않았구나”라고 말했다.


저녁이 되어 장자가 친구 집에 들렀는데, 친구가 하인에게 기러기를 잡아 술안주로 올리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하인이 “한 마리는 잘 울고 한 마리는 잘 울지 않는데, 어느 것을 잡을까요?”라고 묻자 주인이 잘 울지 않는 놈을 잡으라 했다.


이튿날 제자들이 장자에게 “어제 산속의 나무는 쓸모가 없어서 죽지 않았는데, 기러기는 쓸모가 없어서 죽었습니다. 스승님은 어느 입장에 머물겠습니까?”라고 묻자 장자는 “나는 쓸모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중간에 머물고 싶다”라고 대답했다.


치우침을 경계하는 고사와 명언은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고 균형적 삶을 산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지만 우리는 크고 작은 선택을 해야 할 상황에 수시로 봉착하고, 때론 선택을 강요당하기도 하는데, 생사를 건 두 개의 선택지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지 못해 결국 목숨을 내줘야 했던 불운한 인물이 조선 중기에 있었다.


연산군(燕山君)을 몰아내고 중종(中宗)을 옹립한 ‘중종반정(中宗反正)’의 과정에서 반정의 주동자인 박원종(朴元宗)과 좌의정 신수근(愼守勤) 사이에 있었던 일이다.


박원종은 거사 직전 반정 가담 의사를 타진하기 위해 신수근을 찾아가 구체적인 내용을 숨긴 채 “누이와 딸 중 어느 편이 중한가?”라고 물었다.


박원종이 신수근에게 양자택일을 강요한 것은 연산군의 부인이 신수근의 누이였고, 자신들이 왕위에 옹립할 진성대군(晉城大君)의 부인이 신수근의 딸이었기 때문이었다.


신수근은 조금도 망설임 없이 “임금은 비록 포악하나 세자가 총명하니, 그를 믿고 살 뿐이다”라며 반정에 반대했고, 박원종은 자신들의 반정 모의가 탄로 날 것을 염려하여 신수근을 살해하였다.


1506년 9월 1일 박원종을 필두로 한 반정 세력은 궁궐로 난입하여 연산군을 몰아내고, 다음 날 경복궁에서 진성대군을 조선의 제11대 왕으로 옹립했다.


신수근의 누이인 신씨는 그 즉시 폐비가 되어 왕궁에서 쫓겨났고, 신수근의 딸은 반정 직후 왕후(단경왕후)로 책봉되었으나, 죽은 아버지 신수근이 반정에 반대한 인물이라는 이유로 역적의 딸로 분류되어 그녀 역시 왕비가 된 지 7일 만에 궁궐에서 쫓겨났다.


만약 신수근이 당시 딸을 선택했거나 대답을 하지 않았다면 굳이 역적으로 몰려 죽임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고, 딸 또한 역적의 딸이 아닌 왕비로 일평생 영화를 누렸을 것을, 누이를 선택한 것이 원인이 되어 일가족 모두가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다.


치국(治國)과 용인(用人)에 있어서도 치우침은 유리한 결과를 낳지 않는다.


춘추시대 진(秦)나라 목공(穆公)이 재상인 건숙(蹇叔)에게 패자(覇者)의 길을 묻자 “군주는 위엄과 덕을 갖추어야 합니다. 덕만 있고 위엄이 없으면 나라를 다른 나라에 빼앗기게 되고, 위엄만 있고 덕이 없으면 백성들의 불만이 쌓여 나라에 혼란이 일게 됩니다”라고 대답했다.


목공은 이 말을 새겨듣고 위엄과 덕을 균형 있게 실천하니, 나라는 안정되고 백성들은 평안을 누렸다. 역사가들이 목공을 명군으로 일컫고, 건숙을 명재상이라 평가하는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손자병법』은 “위아래가 아직 변변하게 친해져 있지도 않은데, 엄벌주의를 내세워서 위압적으로 다루려고 하면 그들은 복종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너무 무관하게 친해지면 버릇이 없어지고 친함이 한도를 넘어 제대로 벌도 주지 못하게 되면 쓸모가 없어지고 만다. 즉 압력만으로 사람을 다루려는 것은 하책이며, 한 가족같이 지내되 한도는 엄히 정해놓아야 한다”고 하여 지휘관이 군사를 다룸에 있어 엄함과 친함의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말 것을 충고하고 있다.


좋은 결실은 대부분 적극적 처신에서 비롯되지만, 때론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 소극적 처신이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국정에 대한 무관심과 방임을 통해 결과적으로 나라를 융성시킨 앤 여왕이 그랬다.


명예혁명(名譽革命) 이후 후계 없이 사망한 윌리엄 3세와 메리 2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앤 여왕은 남다른 재능이 없었고, 국정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img.jpg 앤 여왕


앤 여왕의 그런 성향은 소수의 측근 자문관 그룹이 궁정의 일을 전담하는 것으로 이어졌고, 왕의 간섭에서 해방된 의회는 자연스럽게 국정의 주도권을 잡았다.


당시 의회는 휘그당과 토리당의 양대 세력이 장악하고 있었는데, 여왕의 무관심은 어느 당에도 힘을 실어주지 않는 결과로 나타났고, 자연스럽게 다수당을 차지한 정당이 국가의 주요 정책을 이끌어가는 관행으로 이어졌다.


국정에 관여하지 않는 여왕을 대신하여 국정을 책임지는 총리가 다수당에서 배출되면서 ‘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입헌군주제가 이때 영국의 정치제도로 정착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앤 여왕의 국정 무관심이 있었기에 영국은 대제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고, 이후 수백 년 동안 지구상 최강의 국가로 군림할 수 있었다.


공자(孔子)는 “천하도 바로잡을 수 있고, 벼슬도 사양할 수 있고, 칼날도 밟을 수 있지만, 중용(中庸)만큼은 다만 추구할 뿐 행할 수 없다”고 제자들에게 인정하였다.


성인조차도 어렵다는 중용의 도를 어찌 행할 수 있으랴만, 적(敵)을 만들지 않고 평온한 삶을 원한다면 적어도 편향적이라는 평을 듣지는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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