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정요(貞觀政要)』라는 고전이 있다.
정치철학서의 일종으로 당태종(唐太宗)이 위징(魏徵)・방현령(房玄齡) 등의 신하들과 담소를 나누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로 군주의 도리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창업(創業)’과 ‘수성(守成)’에 관한 내용이다.
당태종이 어느 날 신하들과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제왕의 업적 중 창업이 더 어려운가, 아니면 수성이 더 어려운가?”라고 질문하자 방현령은 창업이 더 어렵다고 했고, 위징은 수성이 더 어렵다고 했다.
당태종은 “방현령은 나를 따라서 천하를 평정하러 다니느라 온갖 어려움과 고통을 겪으며 죽을 위기를 여러 번 넘겼기 때문에 창업의 어려움을 말한 것이고, 위징은 나의 마음이 교만해지거나 방자해지면 나라가 위태롭게 되고, 마침내 멸망의 길을 걷지 않을까 염려하여 수성의 어려움을 말한 것이다. 오늘날 창업의 고통과 어려움은 과거의 일이나, 수성의 어려움은 마땅히 그대들과 함께 신중하게 생각해야만 하는 현재의 일이다”라고 말했다.
두 사람 말이 모두 옳다는 것을 전제로 창업은 이미 이루었으니, 수성에 전념하자고 한 것이다. 당태종을 왜 명군이라 칭송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으면 일단 수성에 전념해야 함에도 잠시도 멈추지 않고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잘 되면야 좋겠으나, 실패하면 새로운 시도만 좌절되는 게 아니라, 이전의 성과까지 타격을 받게 된다는 점이 문제이다.
승승장구하며 패배를 몰랐던 나폴레옹이 몰락의 과정을 밟게 된 것도 수성에 힘쓰기보다 승산 없는 창업에 주력했기 때문이었다.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은 ‘전쟁의 신’으로 불리며 유럽 전역을 손아귀에 넣고 대륙을 호령했지만, 영국만은 굴복시키지 못했다.
특히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영국에 패배하여 자존심이 구겨진 나폴레옹은 영국을 고립시키기로 마음먹고 영국과의 통상을 금지하는 ‘대륙봉쇄령’을 내렸다.
당시 유럽은 영국에 곡물을 수출하고 값싼 영국산 공산품을 수입했다.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던 나폴레옹은 곡물 수출을 통제하면 영국이 버티지 못하고 항복할 것으로 여겼으나, 영국은 방대한 해외 식민지로부터 물자를 조달하면서 큰 어려움 없이 버텨나갔고, 오히려 유럽 경제가 봉쇄당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가 곡물 수출 차단으로 인한 경제손실을 견디지 못해 영국과의 통상을 몰래 재개하자 나폴레옹은 자신의 명령을 어겼다는 이유로 60만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 원정길에 올랐다.
나폴레옹은 3주 분량의 식량만을 가지고 출발하면서 그 이후는 현지 조달을 목표로 했는데, 러시아군이 후퇴하면서 모든 물자를 파괴하는 바람에 프랑스군은 진군하면서도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고, 텅 빈 도시들을 점령해가면서도 병사들의 사기는 오히려 떨어졌다.
모스크바를 점령한 지 5주가 지나도록 기대했던 러시아 황제의 항복문서는 오지 않고, 겨울 추위는 유례없이 일찍 찾아와 나폴레옹은 아무런 성과 없이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했다.
러시아 원정의 결과는 끔찍했다. 퇴각하는 과정에서 원정군 60만 명 중 40만 명이 죽고, 10만 명이 포로가 되었다.
불패의 나폴레옹 군대가 패배했다는 소식은 나폴레옹 치하에 있던 유럽 나라들이 두려움 없이 프랑스에 대항하도록 하였고, 결국 1814년 3월 영국・러시아・프로이센・오스트리아 연합군에 의해 파리가 점령되면서 나폴레옹은 엘바섬으로 유배되었다. 정확히 1년 후 나폴레옹은 엘바섬을 탈출하여 재기에 나섰으나, 그해 6월 ‘워털루전투’에서 패하면서 세인트헬레나섬으로 재차 유배되어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만일 나폴레옹이 ‘대륙봉쇄령’이나 ‘러시아 원정’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고, 수성에 힘썼다면 그의 영광시대는 오래도록 유지될 수 있었을 것이고, 그의 조국 프랑스는 오늘날 유럽의 패권국이 되었을 것이다.
새로운 시도는 현재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며 행해지지만, 검증되지 않은 수단을 통한 거친 변화는 종종 현상 유지보다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
정부가 국민의 복지를 위해 시도하는 각종 정책이 애초의 목적은 이루지 못하고, 여러 부작용만 남기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물건의 가격이 단기간 과도하게 상승하여 정부가 그것을 억제하기 위해 ‘최고가격제’를 시행하면 초과수요가 발생하여 정부가 책정한 가격으로 물건을 살 수 없게 되거나 암거래로 물건 가격이 오히려 비싸지는 경우가 그렇다.
실제 미국에서 서민들의 주거를 안정시킨다는 이유로 섣불리 최고가격제를 시행하여 역작용만 초래한 사례가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미국 주택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서민들의 생활이 어려워지자 뉴욕시 당국은 서민 생활 안정을 위한다는 이유로 임대료 상한제를 전격적으로 시행했다.
계약 기간과 상관없이 세입자가 나가기 전까지 임대료를 올리지 못하도록 한 이 제도는 기존 세입자들의 주거 안정에는 어느 정도 긍정적 역할을 하였으나, 집주인들에게는 수익 악화를 가져와 임대를 위한 건물 신축이 중단되는 지경에 이르렀고, 그 결과 건물과 주택이 갈수록 노후화되면서 도시는 활력을 잃고 슬럼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
사태의 현상만을 보고 서툰 대증요법을 함부로 동원하면 안 되는 이유이고,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 작동하는 시장의 원리를 무시하면 안 되는 이유이다.
자연 생태계에 새로운 요소를 개입시키는 것은 더욱 신중해야 한다.
다소 문제가 있어 보이더라도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것이라면 그대로 두는 게 낫다는 말이다.
20세기 초 일본 오키나와에서 시도되었던 몽구스 반입 사례는 인간의 섣부른 생태계 개입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1910년 일본의 저명한 생물학자가 인도를 방문했다가 우연히 길거리에서 몽구스가 코브라를 잡아먹는 것을 보고, 독사의 일종인 반시뱀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오키나와 주민들이 생각났다.
귀국 후 몽구스를 반입하여 반시뱀을 퇴치하자는 그의 제안에 오키나와 주민들은 환호했고, 모두의 기대 속에 몽구스 16마리가 반입되었다. 몽구스가 반시뱀을 남김없이 먹어 치울 것이라 여겼던 오키나와 주민들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몽구스들은 사냥에 위험이 따르는 반시뱀을 먹는 대신 쉽게 사냥할 수 있는 멸종 위기종과 희귀 파충류와 같은 야생동물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었다.
살기 좋은 환경에서 몽구스의 개체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여 1980년에는 그 수가 무려 3만 마리까지 불어났고, 몽구스는 어떤 야생동물보다 생태계를 위협하는 존재가 되었다.
오늘날 일본 환경성은 외래생물 퇴치 예산의 많은 부분을 몽구스 퇴치에 사용하고 있다.
한 집단을 기준으로 보더라도 새로운 지도자가 나타나면 구성원들은 그가 기존의 것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그리고는 새롭게 시도한 것이 조금이라도 문제를 일으키면 ‘구관이 명관’이라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인다.
개선이 확실히 보장되는 변화가 아니라면 현상을 유지함이 낫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