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原則)’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행동이나 이론 따위에서 일관되게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규칙이나 법칙’이다.
그러나 한 사람의 삶을 보더라도 탄생에서 죽음까지 수많은 변수가 개입되고, 세상의 변화 또한 장마철 계곡의 급류와 같으므로 과거 경험에 기반한 ‘원칙’을 조건 없이 현실에 적용하는 것에는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삼국지(三國志)』 등장인물들의 대화 속에 담겨있는 원칙에 관한 다음 이야기는 원칙을 세우는 것과 원칙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다소나마 알게 한다.
조조(曹操)는 막료 중에서 곽가(郭嘉)를 유달리 아꼈다.
어느 날 조조가 곽가의 식견을 칭찬하자 곽가 또한 학식과 실전경험의 풍부함을 들어 조조를 칭송하였는데, 조조가 그 말을 듣고 난 후 “실전경험이 많은 사람이 오히려 기본과 원칙을 잊어버릴 때가 많네. 전쟁이란 여러 변수를 가지기 때문에 임기응변으로 대처해서 승전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 그래서 기본이나 원칙보다는 자신이 경험한 바를 따른다네. 그러나 원칙은 잊지 말아야지. 눈앞의 다급한 상황을 해결하려다 보면 더 큰 실수를 할 수도 있네”라고 말했다.
삶의 해법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원칙은 존중되어야 마땅하지만, 마주한 상황이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전혀 생소한 것이라면 원칙은 수정되어야 마땅하며, 이 경우 선택의 주사위 면에 ‘변칙’이라는 글자를 새겨넣어야 한다.
전통적 방식으로는 처한 상황에 대처하기 어려움을 깨닫고, 서슴없이 변칙을 구사하여 국난을 극복한 사례가 고대 전쟁사에 있었다. 로마 장군 파비우스 이야기이다.
기원전 3세기 무렵 카르타고는 지중해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나라 중 최강국이었다.
특히 서지중해는 “카르타고의 허락 없이 바닷물에 손을 담글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카르타고가 압도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카르타고는 서지중해의 패권에 만족하지 않고 동지중해까지 세력의 판도를 확장하려 하였고, 그 과정에서 로마라는 장벽에 가로막히게 되자 지중해 전체의 패권을 두고 로마와 세 차례에 걸친 전쟁을 치르게 된다. 이른바 ‘포에니 전쟁’이다.
카르타고는 해상무역을 통해 부자나라로 성장했으나, 인구가 적어 자국민만으로는 군대를 구성할 수 없어 부득이 외국 용병을 들여와 전시에 활용했다.
용병들은 기골이 장대하고 용감했지만, 돈으로 고용된 만큼 충성도가 낮았고, 보수나 복무 여건에 불만이 있으면 탈출하거나 반란에 가담하기 일쑤였다.
게다가 이들의 지휘관은 군사적 역량보다 부자가 선출되는 경우가 많았고, 자주 경질되는 편이어서 군사전문가로 보기도 어려웠다.
반면 로마군은 조그만 도시국가에서 시작하여 이탈리아반도를 통일할 때까지 수많은 전투를 거쳐 전쟁 경험이 풍부하였고, 충성도 높은 직업군인들로 이루어져 카르타고 군대보다 모든 면에서 우세했다.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카르타고는 제1차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에 패해 시칠리아를 비롯한 지중해의 전략적 요충지를 모두 상실했으나, 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는 명장 한니발이 등장하면서 이전과 전혀 다른 상황이 전개되었다.
한니발은 뛰어난 지도력으로 카르타고군의 이질적 요소를 제거하고, 알프스산맥을 넘어 로마의 배후를 공격하는 등 기상천외의 방법을 동원했으며, 정보부대를 이용하여 적의 규모와 위치를 사전에 파악한 후 지형을 활용한 기습과 기만전술을 펼쳤던 반면, 로마군은 특별한 전술 없이 정면 대결하는 전통적 전투방식을 고수했다.
결과는 로마군의 연전연패로 나타났고, 북부의 주요 도시를 속수무책으로 빼앗기면서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로마인은 한니발을 전쟁의 원칙을 무시하는 야비한 인물이라 비난하였으나, 그것은 패자의 자기변명에 불과했다.
위기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로마 원로원은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를 독재관으로 임명하여 한니발과 맞서게 했다.
파비우스는 기존의 전투방식으로는 한니발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하고, 정면 대결을 피하면서 소모전을 통해 상대방을 지치게 하는 특이한 전략을 구사했다.
이른바 ‘파비우스 전략’으로 불리는 이것은 당시 로마 장군이던 파비우스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변칙적 전략이었다.
지연과 고갈을 위주로 하는 파비우스의 지구전은 속전속결로 로마를 멸망시키려 했던 한니발의 전략적 구도를 무너뜨리고, 로마의 전쟁 동원력이 가동될 시간을 벌어주어 한니발로부터 로마를 구하는 해법이 되었다.
파비우스 전략은 수천 년이 지난 후에도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과 히틀러의 러시아 침공 시 러시아의 기본전술로 채택되어 나폴레옹과 히틀러에게 뼈아픈 패배를 안겼다.
구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세상을 연 영웅이나 위인들은 예외 없이 과거의 관행이나 원칙을 깨뜨리고 일어섰다.
굳이 영웅적 인생을 꿈꾸지는 않더라도 남아있는 삶의 진전을 바란다면 관행을 넘어서는 창조적 자기파괴를 두려워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