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과 세평은 무관하다

by 노을 강변에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거의 예외 없이 일종의 꼬리표가 붙어있다. ‘세상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평판’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닌 ‘세평(世評)’이 그것이다.

세평이 나름의 의미를 지니는 것은 사람을 보는 눈에는 별 차이가 없다는 것에 근거하지만, 사람들의 평가 대상은 그 사람의 외적 영역에 국한되고, 평가자의 주관적 성향이나 친소관계 또한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므로 세평과 실체 간에는 다소의 괴리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뛰어난 인물이었음에도 세평이 좋지 않았던 사례를 역사서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지만, 유방(劉邦)을 도와 한(漢)나라 건국에 절대적 역할을 한 진평(陳平)은 유난히도 세평이 좋지 않았다.


다운로드.jpg 진평


진평은 위(魏)나라 사람으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용모와 풍채가 좋고 언변이 뛰어났으나, 성년이 된 후에도 하는 일 없이 책이나 읽으면서 형인 진백(陳伯)의 집에 얹혀살았다. 동네 사람들은 멀쩡한 허우대로 빈둥대는 진평을 탐탁지 않게 여겼으나, 진백만은 이런 진평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정성껏 뒷바라지하였다. 진백의 아내는 일은 하지 않고 밥만 축내는 진평이 못마땅해 남편에게 진평의 흉을 늘어놓으며 잔소리하는 날이 많았지만, 그럴 때마다 진백은 오히려 진평을 감쌌으며, 진평이 자신의 아내와 정을 통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을 때도 진평을 의심하지 않고 오히려 아내를 내침으로써 동네 사람들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후일 진(秦)나라가 멸망하고 유방(劉邦)과 항우(項羽)가 천하를 두고 다툴 때 처음에는 항우 진영에 있었으나, 항우에게 재능을 인정받지 못하자 유방의 진영으로 몸을 옮겼다.


진평의 비범함을 알아본 유방은 그를 도위(都尉 : 장군보다 낮은 무관)에 임명하고, 수레를 함께 타고 다닐 정도로 총애했는데, 이를 시기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진평을 헐뜯었다. 형수와 사통하고 뇌물을 좋아하며 관직을 사고팔아 기강을 흐린다는 내용이었다.


유방이 크게 노하여 진평을 천거한 위무지(魏無知)를 불러 바르지 못한 자를 천거하였다고 나무라자 위무지는 “주군께선 제게 유능한 자를 천거하라고 하셨지, 행실이 바른 자를 천거하라고 하진 않으셨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유방은 그 말도 옳다 여기고, 진평을 불러 사실 여부를 묻자 진평은 항우 진영에서 맨몸으로 귀순한 탓에 생활이 어려워 뇌물을 받은 적이 있었노라 자백하면서 자신의 능력이 의심되면 내치라고 했다. 유방이 진평의 솔직한 말을 높이 평가하고, 오히려 상을 내리자 진평은 크게 감읍하였다.


세평에 괘념치 않고 오직 능력만을 본 유방의 선 굵은 정치력과 남다른 포용력은 후일 진평이 유방을 천하의 주인이 되도록 하였고, 백등산 전투 때 흉노족에게 포위된 황제 유방을 사지에서 구해내게 했으며, 유방이 죽은 후 여씨(呂氏)의 난 때 유씨 왕조를 지켜내는 데 앞장서게 했다.




조선의 명재상으로 이름이 높았던 황희(黃喜)도 세평이 좋지 않았던 대표적 인물이었다.

황희는 개성 출신으로 1363년(공민왕 12년) 자헌대부를 지낸 황군서(黃君瑞)의 아들로 태어났다. 1389년(공양왕 1년) 문과에 급제하여 정9품 성균관 학록으로 있던 중 고려가 멸망하자 한동안 은둔생활을 하였으나, 태조(太祖)의 출사 요청으로 성균관 학사에 제수되면서 조선의 관료로 변신했다.


bny35a7k.png 황희 정승


심성이 곧고, 성품이 완고하여 태조와 정종(定宗) 때에는 임금의 명에 자주 반발하여 파직과 복직을 거듭하였는데, 태종(太宗)이 그를 높이 평가하면서 관료로서 빛을 보기 시작했다. 태종의 총애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황희는 6조 판서를 모두 역임하는 진기록을 세웠고, 그런 총애는 세종(世宗) 때까지 이어져 56년의 관직 생활 중 24년 동안 재상으로 봉직할 정도였다.


그러나 화려한 그의 이력 뒤에는 온갖 추문과 비리가 숨어있었으며, 그런 이유로 세평은 그야말로 바닥 수준이었다.

대사헌으로 재직 시 남원 부사 이간(李侃)으로부터 황금을 뇌물로 받았다 하여 ‘황금 대사헌’이라 조롱받았고, 난신 박포(朴苞)의 아내를 여러 해 동안 집안에 숨겨준 것도 모자라 간통까지 하였으며, 물려받은 노비가 몇 되지 않았음에도 그의 집안에서 부리는 하인과 농막에 흩어져 사는 하인은 수도 없이 많았다.

이뿐만 아니라 형사재판에 불법으로 개입하고, 자식 훈육조차 변변치 못하여 아들들이 장물 취득, 도둑질, 전답 바꿔치기, 정부미 속여 타내기 등 말썽을 일으켰으며, 심지어 서자가 궁중 물건을 빼돌린 것이 발각되자 자기 아들이 아니라며 성을 바꾼 일도 있었다.


이처럼 황희는 청백리와는 거리가 멀었음에도 영의정만 18년을 지내고, 사후 세종묘에 배향될 정도로 역대 왕의 신임과 백성의 존경을 받았으며, 특히 세종은 그를 중히 여겨 국정에 다툼이 생길 때면 “황희정승 말대로 하라”고 하는 등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




오늘날 정부 고위관료를 임명할 때 청문회를 거치도록 하고 있는데, 정부에 꼭 필요한 인재라고 여겨 입각을 제안하면 청문회 때문에 손사래를 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다운로드 (1).jfif 국회 인사청문회 광경


청문회를 열면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언론 매체에서 경쟁적으로 명예훼손성 의혹을 쏟아내고, 심지어 수십 년 전의 글이나 말 한마디까지 끄집어내어 문제 삼는 등 저인망식으로 신상을 털어 망신을 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다 보니 임명권자는 능력 있는 인물보다 흠이 적은 인물을 찾게 되고, 설령 능력 있는 인물을 임명하더라도 청문회 과정에서 입은 상처로 조직 장악력이 현저히 떨어져 업무수행에 장애를 초래하니, 도대체 청문회라는 제도가 어떤 유용성을 가지는지 의구심마저 든다.


흠이 없는 것과 유능한 것은 별개의 개념이다. 역량이 출중함에도 살아온 궤적에 다소의 흠이 있다고 하여 등용하지 않는 것은 해로운 짐승을 잡기 위해 포수를 선발할 때 총 쏘는 기술보다 인품을 우선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았다면 그런 사람은 이승이 아닌 천상에서 날개를 달고 천사의 임무를 수행함이 옳다. 지난 행적에 비난받을 부분이 있더라도 세상을 이롭게 할 인재라면 유능함만을 이유로 등용함이 지극히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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