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은 기억력에서 시작된다.
"이모부랑 이모, 과일 좋아하시잖아."
초등학교 5학년 서령이가
자기 아빠에게 툭 던졌다는 그 한마디가
과일 상자가 되어 우리 집 거실에 도착했다.
무심결에 흘린 이모부의 취향을
아이는 잊지 않고
마음 한구석에 소중히 담아두었던 모양이다.
누군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기억한다는 건
단순히 기억력이 좋다는 뜻이 아니다.
그만큼 상대를 세밀하게 살피고 있었다는
다정한 증거다.
어른인 나도
가끔 가까운 이들의 취향을 놓치고 사는데
어린 조카는 나보다 훨씬 깊은 눈으로
주변을 보고 있었다.
상자를 열어보니
과일들이 제법 묵직하고 실하다.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포장된 과일을 보니
아이가 아빠와 함께 선물을 고르며
고민했을 시간이 그려진다.
"이건 이모부가 좋아하겠지?"
"이게 더 맛있겠다"라며 조잘거렸을
그 예쁜 마음이 상자 안에 가득 담겨 있는 듯하다.
선물은 과일이지만, 내가 받은 건 사실
'기억되고 있다'는 안도감이다.
내가 무심코 건넸던 말들이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예쁘게 자라고 있었다는 사실이 꽤나 뭉클하다.
조카에게 사람을 대하는 정성이 무엇인지
새삼 배우게 된 하루다.
과일은 달고 시원하다.
하지만 그 속살보다 더 달콤한 건
서령이의 세심한 마음이다.
덕분에 이달의 한가운데서
예상치 못한 온기가 스며들었다.
서령아, 정말 고맙다.
이모부가 아주 맛있게 잘 먹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