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령아, 그 백수는 그 백수가 아니야
어느 날, 조카 서령이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내게 물었다.
"이모부, 이모부 꿈은 뭐야?"
순간 장난기가 발동했다.
"응, 이모부 꿈은 '돈 많은 백수'야."
그저 실없는 농담이었다.
인생의 쓴맛 단맛 다 본 어른들이
술자리에서나 주고받는 허무맹랑한 희망 사항.
그런데 아뿔싸,
서령이의 반응이 예상보다 너무 뜨거웠다.
그날 이후 서령이는 어딜 가나
당당하게 외치고 다닌다.
"내 꿈은 돈 많은 백수야! 우리 이모부처럼!"
졸지에 나는 조카에게 '생산성 없는 삶'의 비전을 제시한 멘토가 되어버렸다.
아이의 맑은 눈망울에 내 농담이 박제된 걸 보니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당황한 나는 부랴부랴 수습에 나섰다.
"서령아, 근데 그게 그냥 백수가 아니야.
돈이 많으려면 남들보다 책도 산더미처럼 읽어야 하고, 공부도 엄청나게 열심히 해서 실력을 쌓아야 가능한 거야.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
백수가 되기 위해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이 역설적인 교육이라니.
하지만 내 말을 듣는 서령이의 표정은
'아, 백수도 고시 공부처럼 어렵구나' 하는 표정이었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일하지 않고도 풍요로울 수 있는 자유는,
젊은 날 치열하게 자신을 갈고닦은 사람에게나 주어지는 일종의 '전역 선물' 같은 것이니까.
조카에게 건넨 수습용 조언이었지만,
쓰고 보니 나 자신에게 하는 말 같기도 했다.
서령아, 미안하다.
이모부가 꿈을 너무 요약해서 말했지?
우리 일단 책부터 좀 읽자.
돈 많은 백수라는 그 험난한(?) 길을 가려면 일단 머리부터 꽉 채워야 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