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4교시 윤리 시간. 늘 그렇듯 오후 수업은 나른하다. 20여 명의 고2 아이들 중 절반은 눈이 반쯤 감겨 있고, 나머지 절반은 멍하게 칠판을 바라본다. 나는 열심히 롤스의 무지의 베일과 샌델의 공동체주의를 설명하지만, 교실의 공기는 점점 무거워진다.
"정의는 사회를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야. 롤스는..."
그때였다. 첫 번째 줄 창가 자리 한 아이의 손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교과서를 펼쳐놓고는 있지만, 분명 수업 내용을 듣고 있지는 않다. 궁금해서 슬쩍 다가갔다.
아이는 교과서 여백에 무언가를 그리고 있었다. 처음엔 그냥 낙서려니 했는데, 자세히 보니 놀라웠다. 정교한 갑옷을 입은 기사였다. 투구의 깃털 하나하나, 갑옷의 금속 질감, 심지어 망토의 주름까지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볼펜 하나로 이런 그림이 나올 수 있다니.
나는 멈칫했다.
'저 아이에게 정의란, 어쩌면 내가 설명하는 롤스나 샌델이 아니라 저 갑옷일지 모른다.'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가르쳐온 걸까? 아이들은 정말 내 수업을 듣고 있는 걸까? 아니, 더 근본적인 질문. 나는 이 아이들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생각했다. 아이들의 진짜 세계는 어디에 기록되고 있을까? 수업 시간에 받아 적는 노트? 시험 답안지? 아니면...
그날 밤, 논술 수행평가를 채점하던 중이었다. 스무 편의 답안지가 책상 위에 쌓여 있었다. 평소처럼 내용부터 읽으려 했는데, 이상하게 그날은 글씨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첫 번째 답안지. 또박또박한 글씨. 한 글자 한 글자가 정성스럽다. '성실한 아이구나.' 내용을 읽기도 전에 그 아이의 성품이 느껴졌다.
두 번째 답안지. 휘갈겨 쓴 글씨. 해독하기 어렵지만 필압이 강하다. 급하게 썼지만 뭔가 절실함이 묻어난다. '이 아이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세 번째 답안지. 연필로 쓴 글씨가 너무 연해서 각도를 맞춰야 겨우 보인다. 조심스럽다. '자신감이 부족한 걸까, 아니면 섬세한 걸까?'
그렇게 하나씩 보다 보니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답안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그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오늘 교과서에 기사를 그린 그 아이의 답안지도 있었다. 글씨는 평범했지만, 여백 곳곳에 작은 그림들이 숨어 있었다. 방패, 칼, 성벽의 일부분들.
아, 그제야 깨달았다. 이 아이에게 정의는 추상적인 철학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이미지였구나. 악을 물리치는 기사, 약자를 보호하는 갑옷, 정의를 상징하는 칼. 이 아이만의 언어로 정의를 이해하고 있었던 거다.
20여 년 교단에 서면서 나는 무엇을 봐왔을까?
정답과 오답, 점수와 등급. 수행평가 루브릭에 맞는 답안인지, 학습 목표에 도달했는지. 아이들을 평가의 대상으로만 봐왔던 것은 아닐까?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다른 질문을 던졌다.
'나는 이 아이들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동안 함께한 수천 명의 학생들. 그들의 마음은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그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꿈꾸는지 정말 알고 있을까?
'아이들의 진짜 세계는 어디에 기록되고 있는가?'
교과서 여백에 그려진 기사, 답안지 구석에 숨겨진 작은 그림들, 펜을 쥐는 방식, 글씨를 쓰는 속도, 실수를 대하는 태도. 혹시 진짜 교육은 이런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날부터 나는 아이들의 손을 보기 시작했다.
교실은 참 신기한 공간이다. 세로 8미터, 가로 9미터. 고작 72제곱미터의 한정된 공간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스무 개의 서로 다른 우주가 공존한다. 스무 명의 아이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생각하고, 느끼고, 표현한다.
그들이 사용하는 도구는 평범하다. 펜, 연필, 지우개, 종이. 우리가 매일 만지는 일상의 도구들. 하지만 그 평범한 도구들을 통해 드러나는 인간의 이야기는 무한하다.
윤리 교사로서 나는 늘 질문해 왔다. "선이란 무엇인가? 옳은 삶이란 무엇인가?" 그런데 아이들의 손을 보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질문이 생겼다.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자신을 표현하는가?"
대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바로 그들의 손끝에서, 그들이 써 내려가는 글씨에서, 그들이 다루는 일상의 도구에서.
어쩌면 진짜 윤리 수업은 칠판 앞에서가 아니라, 아이들의 책상 앞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정의를 가르치려 하기보다는, 아이들 각자가 품고 있는 정의를 발견해 주는 것. 그것이 진짜 교육이 아닐까.
오늘도 첫 시간 종이 울리면, 20여 명의 아이들이 각자의 펜을 꺼내 든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손을 본다. 그 손이 써 내려갈 이야기들을 기대하며, 그 속에서 그들만의 철학을 발견하려 애쓰며.
이 책은 그래서 시작되었다. 아이들을 진짜로 알고 싶다는 간절함에서. 그들의 진짜 세계를 발견하고 싶다는 호기심에서.
당신도 함께 보기를 바란다. 교실이라는 작은 세상에서 펼쳐지는 무한한 드라마를. 일상의 평범함 속에서 발견되는 인간의 비범함을.
그리고 가능하다면, 당신도 펜을 들어보기를. 종이 위에 당신만의 이야기를 써보기를. 그 순간, 당신도 이 아름다운 인간 탐구에 동참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