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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과 손의 무도회 - 펜 쥐는 모양에 대하여

풍경으로서의 교실

by 오이랑

“선생님, 이게 뭐라고 쓴 건지 모르겠어요.”


동료 교사가 논술 답안지를 들고 온다. 나도 눈을 찌푸리며 그 글씨를 들여다본다. 마치 지진파를 기록한 지진계 같기도 하고, 심전도 그래프 같기도 하다. 분명 한글인 것 같은데… 아니, 한글이 맞나?


“요즘 애들 글씨가 왜 이래요?”


그 질문에 나는 잠깐 생각에 잠긴다. 정말 왜 그럴까? 스마트폰과 컴퓨터에 익숙한 세대라서? 급하게 살아가는 시대의 특징? 아니면 그냥… 남고라서?




교실을 둘러본다. 스물에서 스물다섯 명 남짓한 아이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펜을 쥐고 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건, 펜을 잡는 방법만큼이나 그들이 써내는 글씨도 천차만별이라는 점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떤 쪽에 가까운가?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싸인족’이다. 펜대를 눕혀 잡고 손목 스냅을 이용해, 마치 유명한 스타가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듯 휘갈겨 쓴다. 한 글자 한 글자를 구분하기보다는 하나의 긴 곡선으로 쭉 이어 쓴다.

“이건 예술이에요, 예술! 흐름이 중요하거든요.” 하며 웃는 아이도 있다. 정작 본인도 나중에 자기가 뭘 썼는지 모를 때가 많다는 건 함정이지만.


‘암호족’도 있다. 분명 우리나라 말로 쓴 건데, 마치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처럼 보인다. 본인만 아는 약어를 남발하고, 자음과 모음이 거의 분해되어 있다. ‘ㅁ’과 ‘ㅂ’의 구분이 안 되고, ‘ㄱ’과 ‘ㄴ’이 똑같아 보인다.

"이거 '사랑'이에요"라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사각'으로밖에 안 읽힌다. 이들의 글씨를 해독하는 건 하나의 취미가 되었다. “이거 무슨 뜻인지 맞춰보세요!” 게임 같은 거다.


그런데 가장 인상적인 건 ‘미니멀족’이다. 필통? 그런 건 없다. 교복 안주머니에서 삼색펜 하나를 꺼내 든다. 빨강, 파랑, 검정. 이 세 가지 색으로 모든 걸 해결한다. 중요한 건 빨강으로, 일반적인 건 검정으로, 그리고 파랑은… 음, 그냥 기분에 따라.

“효율 모르세요? 이게 진짜 남자의 로망이지!” 하며 자랑스러워한다.


아, 맞다. 낭만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삼색펜 하나로 모든 걸 해결하는 것도 낭만, 필통 없이 사는 것도 낭만, 심지어 글씨를 알아보기 어렵게 쓰는 것도 어떤 이들에게는 낭만인 모양이다.

“선생님, 글씨가 너무 예쁘면 남자답지 않아 보여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 어이가 없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글씨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나는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고 싶은가’라는 정체성의 문제와 만난다. 글씨를 ‘나 자신을 위한 표현’으로 보는지, ‘타인을 위한 소통의 도구’로 보는지에 따라 태도가 달라진다. 남자다움이라는 사회적 시선에 맞춰 자신의 글씨를 의도적으로 망가뜨리는 것은, 어쩌면 자신을 속이는 작은 행위일지도 모른다.


요즘엔 ‘디지털 원주민족’(digital native, 생활과 윤리교과서에 개념이 소개되기도 했다.)도 늘고 있다. 태블릿에 애플펜슬로 필기를 한다. 화면을 확대하고 축소하며, 색깔도 자유자재로 바꾸고, 틀린 부분은 깔끔하게 지운다. 이들의 필기는 정말 예쁘다. 하지만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이게 진짜 손글씨일까? 종이의 마찰력을 이겨내며 써내는 고유의 흔적이 사라진다면, 그 안에 담긴 개성도 옅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 와중에도 ‘장인족’은 건재하다. 자로 잰 듯한 줄 간격, 일관된 글자 크기. 손글씨로 쓴 노트가 인쇄물처럼 깔끔하다. 형광펜으로 중요한 부분을 표시하고, 여백에는 알아듣기 쉽게 요약까지 해둔다. 친구들이 “야, 너 필기 좀 찍어줘” 하며 몰려든다. 이 아이들의 노트는 하나의 작품이다. 이들은 아마도 글씨 쓰기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정돈하는 기쁨을 아는 것일 게다.


몇 년 전부터는 과제를 컴퓨터로 받는 선생님들이 늘었다. “글씨를 도저히 알아볼 수가 없어서…” 하시며 한숨을 내쉰다. 나도 처음엔 그래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손글씨에는 컴퓨터 활자에서 느낄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급하게 쓴 글씨에서 느껴지는 절실함, 정성스럽게 쓴 글씨에서 느껴지는 진심. 글씨는 그 사람의 체온을 품고 있다.


어느 날 한 아이가 물었다. “선생님, 요즘 다 컴퓨터로 하는데 손글씨가 꼭 필요한가요?”


나는 교실을 둘러보며 대답했다.


“글쎄, 사람은 글을 쓰면서 생각이 정리되거든. 그리고 선생님 입장에서는 너희들의 그 정리 과정을 가장 잘 들여다볼 수 있는 창문이 바로 손글씨야.”


펜을 어떻게 쥐든, 글씨를 어떻게 쓰든, 그것은 그 아이만의 방식이다. 싸인처럼 휘갈겨 쓴 글씨도, 암호 같은 글씨도, 삼색펜으로 쓴 글씨도, 태블릿의 디지털 글씨도, 모두 저마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오늘도 수업 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각자의 도구를 꺼내 든다. 누군가는 안주머니에서 삼색펜을, 누군가는 태블릿을, 누군가는 정성스럽게 준비한 필기구를. 그리고 스물몇 가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글씨가 예쁘고 못한 게 중요한 게 아니구나. 그 글씨를 선택한 그 사람의 마음이 중요한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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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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