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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 "그럼, 산타 할아버지도 거짓말한 거야?"

[창작동화] 마지막 별지기 - 칸트, 밀, 장자

by 오이랑

[대화의 발견]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저녁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인 첫째는 그날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흥분하며 늘어놓았다. 산타클로스의 존재 유무를 놓고 친구들과 맹렬한 논쟁을 벌였다는 것이다. "나는 산타 할아버지 있다고 했어! 엄마 아빠가 그렇다고 했으니까!" 아이는 자신의 믿음을 굳건히 지켜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자랑스러워 보였다.


사실 나는 아이가 내심 진실을 눈치채고, 선물을 받기 위해 모른 척하는 것이라 짐작했다. 하지만 아이의 눈빛은 진심이었다. 부모의 말을, 세상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고 있었다. 그 순수한 믿음 앞에서, 나는 이 거짓말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과연 아이를 위한 일인지 혼란스러워졌다. 이 믿음이 교실의 논쟁에서 아이를 더 외롭게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 나는 아이에게 조심스럽게 아주 진중하게 진실을 말했다. "산타 할아버지 이야기는 말이야... 아주 오래전부터 아이들에게 사랑과 기쁨을 가르쳐주기 위해 어른들이 만든 아름다운 이야기야. 그래서 그 따뜻한 마음을 이어서, 엄마와 아빠가 너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선물을 준비했던 거란다."


아이는 대충격에 빠졌다. 얼굴에서는 순식간에 핏기가 가셨고, 세상이 무너진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한참을 침묵하던 아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엄마 아빠가 나한테 거짓말한 거야?"


아이의 눈물 어린 질문 앞에서, '좋은 의도를 가진 거짓말'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나는 처음으로 온몸으로 깨닫고 있었다.




[창작 동화] 마지막 별지기

세상의 모든 별이 사라져 가는 세상이 있었습니다. 매일 밤 별 하나가 빛을 잃고 사라질 때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도 희망이 하나씩 사라졌습니다. 오직 세상에서 가장 높은 '별지기의 탑' 꼭대기에서만은 언제나 영롱한 별들이 반짝였습니다. 사람들은 그 별들을 보며 위안을 얻고, 내일의 희망을 이야기했습니다.


탑에는 아주 오랫동안 별을 지켜온 늙은 별지기와 그의 유일한 제자 '루나'가 살고 있었습니다. 루나는 매일 밤, 별지기가 커다란 자루에서 별가루를 채운 유리등불을 꺼내 하늘에 매다는 모습을 보며 자랐습니다.


"얘야, 진짜 별들은 아주 오래전에 모두 빛을 잃었단다. 저 등불은 희망이란다. 사람들은 진짜 별을 보는 게 아니라, 저 등불을 보며 희망을 보는 거지."


별지기가 세상을 떠난 후, 루나는 세상의 마지막 별지기가 되어 매일 밤 홀로 수백 개의 등불을 하늘에 걸었습니다. 땅 위의 사람들이 자신의 '아름다운 거짓말'을 보며 희망을 잃지 않기를 기도하면서요.


그러던 어느 날, 한 젊은 천문학자가 탑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자신이 개발한 초고성능 망원경으로 하늘을 관찰한 끝에, 별들이 모두 가짜라는 진실을 알아냈습니다. "당신은 온 세상을 속이고 있었군! 사람들은 진실을 알 권리가 있소! 당장 이 거대한 사기극을 멈추시오!" 천문학자는 분노하며 소리쳤습니다.


루나는 눈물을 글썽이며 대답했습니다.


"만약 제가 이 등불을 거는 것을 멈추면, 세상은 희망 없는 칠흑 같은 어둠에 잠길 거예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차가운 진실인가요, 아니면 따뜻한 희망인가요?"


천문학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습니다.


"따뜻한 희망이 세상을 죽이고 있소. 나는 저 너머를 보았소. 당신들의 가짜 별빛 때문에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저 어둠 너머에서 아주 희미하게, 진짜 새로운 별들이 태어나고 있단 말이오! 당신이 매일 밤 매달아 놓은 그 눈부신 등불들이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해서, 아무도 그 연약하지만 진짜인 희망의 빛을 보지 못하게 막고 있는 거요. 이 거짓된 희망에 안주하다간, 우리는 새로운 별을 향해 나아갈 방법을 영원히 찾지 못하게 될 거요.

자, 선택하시오. 눈앞의 따뜻한 거짓 위안 속에서 서서히 죽어갈 것인지, 아니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고통스럽더라도 진짜 희망을 찾아 나설 것인지."


루나의 '모두를 위한 따뜻한 거짓말'과 천문학자의 '미래를 위한 차가운 진실'은 별 없는 밤하늘 아래에서 위태롭게 마주 보고 있었습니다.





거짓말은 항상 나쁜 것일까?

루나의 '가짜 별'은 절망에 빠진 세상에 당장의 위안과 희망을 줍니다. 하지만 천문학자의 주장에 따르면, 그 거짓말은 더 큰 희망인 '새로운 별'의 탄생을 가리는 장막이 됩니다. 이는 거짓말의 선악을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복잡한 문제인지를 보여줍니다. 단기적인 행복을 주는 선의의 거짓말이 장기적으로는 더 큰 불행을 가져올 수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좋은 거짓말'과 '나쁜 거짓말'은 무엇으로 구분할 수 있을까?

이 동화는 그 구분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루나의 거짓말은 사람들을 위로하려는 '좋은 의도'를 가졌지만, 결과적으로는 진실을 가리고 성장을 막는 '나쁜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반면 천문학자의 진실은 당장 사람들을 거대한 고통에 빠뜨리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인류를 구원할 수도 있습니다. 의도와 결과 중 무엇을 기준으로 거짓말의 가치를 판단해야 할까요?


진실을 마주할 용기란 무엇인가?

천문학자는 '칠흑 같은 어둠'을 견디고 '진짜 희망'을 찾아 나서자고 말합니다. 이는 진실을 마주하는 데에는 반드시 고통과 용기가 수반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산타가 없다는 진실을 마주한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듯, 진실은 때로 우리를 아프게 합니다. 하지만 그 아픔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성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당장의 위안보다 고통스러운 성장을 선택할 수 있는지 묻습니다.


희망이란 무엇인가? 만들어지는 것인가, 발견하는 것인가?

루나의 희망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희망입니다. 반면 천문학자의 희망은 어둠 속에서 스스로 '발견해야' 하는 희망입니다. 과연 진정한 희망은 무엇일까요? 누군가에 의해 주어진 안전하고 따뜻한 희망일까요, 아니면 불확실하고 고통스럽더라도 내 눈으로 직접 찾아 나서는 희망일까요?




이 이야기는 '거짓말'과 '진실'이라는 오래된 윤리적 딜레마에 대한 철학자들의 깊은 고민과 연결됩니다.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와 절대적인 정언명령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어떤 상황에서도, 심지어 선한 의도일지라도 거짓말은 절대로 허용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칸트의 관점에서 보면, 루나의 행동은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사람들의 눈을 속여 진실을 보지 못하게 하는 비도덕적 행위입니다. 오히려 천문학자처럼 고통스럽더라도 진실을 말하는 것이 인간의 이성적 의무를 다하는 것이라고 보았을 것입니다.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과 공리주의

영국의 철학자 밀로 대표되는 공리주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윤리의 기준으로 삼습니다. 이 동화의 딜레마는 공리주의적 계산을 매우 복잡하게 만듭니다. 루나의 거짓말은 '단기적으로' 최대 다수에게 '안정적인 행복'을 줍니다. 반면 천문학자의 진실은 '장기적으로' 최대 다수에게 '더 큰 행복(생존)'을 줄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엄청난 고통을 수반합니다. 현재의 행복과 미래의 행복 중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가에 대한 어려운 질문을 던집니다.

장자(莊子)와 진실과 거짓의 경계

고대 중국의 철학자 장자는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이 과연 절대적인지 질문을 던집니다. 장자의 관점에서 보면, '가짜 별(등불)'과 '진짜 별(새로운 별)'의 구분 자체가 중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이 우리를 더 자유롭고 충만한 삶으로 이끄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장자는 "등불을 보며 희망을 얻는 삶이나, 새로운 별을 찾아 나서는 삶이나, 그 나름의 길이 있을 뿐"이라며 초연한 태도를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교실의 철학 수업]


칠판에 "개인의 행복과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거짓말은 항상 정당화될 수 있을까?"라는 주제를 적자, 교실의 공기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저는 루나의 편이에요! 당장 오늘 밤을 버틸 희망이 없는데, 보이지도 않는 먼 미래의 희망이 무슨 소용이에요? 사람들은 절망 속에서 다 죽어버릴 거예요!" 한 학생이 동화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 먼저 포문을 열었다.


"하지만 그건 마약 같은 거잖아! 당장의 고통을 잊게 해 주지만 결국 몸을 망가뜨리는! 천문학자의 말이 맞아. 아프더라도 진실을 마주하고 해결책을 찾아야지!"


그러자 다른 쪽에서 목소리가 커졌다. "그럼 시한부 환자에게 의사가 '곧 돌아가실 겁니다'라고 차갑게 진실을 말하는 게 옳은 거야? 아니잖아! '좋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거짓말이 그 사람을 살리는 거라고!"


"그건 환자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거야! 남은 시간을 정리하고 싶을 수도 있잖아! 의사의 선한 의도가 환자의 마지막을 망칠 수도 있다고!"


분위기는 순식간에 현실의 문제로 옮겨 붙으며 더욱 뜨거워졌다. 한 학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스케일을 더 키워보자! 만약 정부가 국민을 안정시키겠다고 '유해 물질은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라고 거짓말했다가 나중에 수많은 사람들이 병에 걸리면? 그건 공동체를 위한 거짓말이 아니라 재앙이잖아! 동화 속 천문학자가 말한 게 바로 그거야! 가짜 별만 보고 있다가 진짜 별이 태어나는 걸 놓치는 거! 당장의 안심 때문에 더 큰 위험을 못 보게 되는 거라고!"


그의 외침에 교실은 순간 잠잠해졌다가, 곧이어 더 큰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그건 극단적인 경우고! 친구 생일파티 서프라이즈 해주려고 거짓말하는 건 어떡할 건데!" "그건 사소한 거랑 큰 거랑 다르지!" "그 기준은 누가 정하는데?"


아이들은 동화 속 루나와 천문학자, 현실의 의사와 환자, 정부와 국민을 넘나들며 자신의 논리를 펼쳤다. 교실은 정답 없는 질문의 용광로가 되어 들끓었다. 나는 그 생생한 에너지의 충돌을 지켜보며 깨달았다. 이 수업의 목표는 명쾌한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정답보다 중요한 것은, 이처럼 복잡한 삶의 딜레마 앞에서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질문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 기울이며,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려는 그 치열한 과정 자체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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