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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 "내 마음속 '화'는 왜 자꾸 튀어나와?"

[창작동화] 내가 누구냐고? - 누스바움, 왕양명의 치양

by 오이랑

[대화의 발견]

유독 잠이 많은 둘째 아이는 아침마다 전쟁을 치른다.


그날도 잠에서 덜 깬 아이는 침대에서 발을 떼는 순간부터 온몸으로 짜증을 전시했다. 잔뜩 찌푸린 미간, 퉁명스러운 대꾸, 세상을 다 잃은 듯한 표정.

나는 격려와 단호한 재촉 사이를 오가며 아이를 침대에서 일으켜 겨우 식탁에 앉혔다.


"날씨 좋다. 우리 주말에 뭐 할까?" 돌아온 것은 "몰라"라는 단답형 대답.

밥알을 씹는 건지 세상을 씹는 건지 알 수 없는 표정…


짜증은 전염성이 강하다. 아이의 뾰족함이 내 인내심의 표면을 콕콕 찌르기 시작했다.

"좀 빨리 먹으면 안 될까? 학교 늦겠어."

내 목소리에 조급함이 실리자, 아이의 미간이 더 깊게 파였다.

"지금 먹고 있잖아!"

숟가락이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아이의 짜증이 내 안의 심지를 태우기 시작했다.


"엄마한테 무슨 말투야?"

"엄마가 먼저 짜증 냈잖아!"

"이게 다 너 위해서 하는 소리잖아!"

대화는 사라지고 감정의 파편만이 오갔다. 결국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그 소리에 옆에서 조용히 밥을 먹던 첫째가 폭발했다.

"아침부터 왜 소리 지르고 그래! 밥 먹는데 시끄러워 죽겠네!"


첫째의 예상치 못한 공격에 나는 당황했고, 둘째는 더 서럽게 울었다. 짜증이 화가 되고, 그 화가 또 다른 화를 낳는 연쇄 폭발. 그 아수라장 속에서 둘째가 울며 소리쳤다.


"나도 몰라! 그냥 내 마음속에서 '화'가 자꾸 튀어나온단 말이야! 내가 꺼내는 게 아니야!"


아이는 자신의 감정조차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이 억울하고 무서운 듯, 더 서럽게 울었다.

화를 내면서도, 그 화의 출처를 몰라 더 화가 나는 둘째. '화내지 말라'고 화를 내는 모순에 빠진 나. 이 화내는 상황에 화가 나는 첫째.


그 순간, 우리 셋은 모두 깨달았다. 우리는 지금 '화'라는 감정의 숙주가 되어 서로를 공격하고 있음을.

이 정체 모를 불청객을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창작 동화] 내가 누구냐고?


흐흐흐... 이 아이가 잠들었군. 꼬마 주인님이 잠들었을 때가 바로 내 세상이지.

이봐, 거기 솜뭉치. 그래, 너 말이야. 맨날 이 녀석 옆에 꼭 붙어 있는 곰인형. 넌 다 봤을 거 아냐. 내가 얼마나 대단한 놈인지.


내가 누구냐고? 잘 들어. 나는 이 아이의 진짜 주인이다!

평소엔 심장 뒤편, 축축한 동굴에 웅크리고 있지만 말이야, 냄새를 맡는 순간 나는 깨어나지. 스멀스멀, '억울함' 냄새, 부글부글, '부당함' 냄새! 크으, 최고의 만찬이지!


콰르르릉- 일단 깨어나면, 난 제일 먼저 이 녀석의 머릿속으로 달려가 생각이라는 걸 마비시켜 버려.

똑똑한 척하는 생각? 논리? 그런 건 내 앞에선 한낱 먼지일 뿐이라고! 심장은 내가 아주 그냥 쿵! 쿵! 쿵! 미친 듯이 북을 쳐서 온몸의 피를 들끓게 만들지.

얼굴이 시뻘게지는 거? 그거 다 내 작품이야. 큭큭.

목소리가 나오는 구멍은 아주 카랑-! 날카롭게 조여서 쇳소리를 내게 만들어.


"나도 몰라!"


어때, 방금 그 목소리. 주인이랑은 완전 다르지? 그건 내 목소리거든.


눈에서는 뜨거운 물을 펑펑 쏟아내서 세상을 흐릿하게 만들고, 손과 발은 내 마음대로 휘적휘적- 허공을 가르거나 바닥을 쿵! 쿵! 내리찍게 하지. 완전히 내 꼭두각시가 되는 거야. 이 아이는 그저 자기가 왜 그러는지도 모르고 울부짖을 뿐이라고.


"내가 아니야! 내 안에서 뭐가 막 튀어나와!"


바보 같긴. 그게 바로 나인데 말이야.

나는 말이야, 이 아이가 상처받을 때, 세상이 이 녀석을 함부로 대할 때 나타나는 가장 강력한 갑옷이야.

이 연약한 녀석을 지킬 수 있는 건 나뿐이라고.


그런데 말이야... 이 아이는 날 자꾸 나쁜 놈으로만 봐. 내 목소리를 듣기 싫어해. 나를 없애려고만 한다고.

그럴수록 나는 더 거칠어질 수밖에. 크르르릉... 더 크게 소리치고, 더 난폭하게 날뛰어서 보여주는 거지.

이 몸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를!


... 그러니까 너라도 좀 알아달라고.

이 아이의 유일한 친구인 너, 곰인형. 너만은 내가 왜 나타나는지... 좀 알아달란 말이야.

내가 사실은... 이 아이를 지키려고 그러는 거라는 걸.


오랜 시간 묵묵히 아이의 곁을 지켜온 곰인형이, 먼지 쌓인 플라스틱 눈을 반짝이며 나지막이 말했다.


"네가 요란하게 날뛰고 간 밤이면, 이 아이는 내 품에서 한참을 울다 잠들어. 정말 이 아이를 지키고 싶다면, 시끄러운 갑옷이 될 게 아니라... 이 아이의 진짜 목소리가 되어 줘야지."




감정의 주인은 누구인가?

동화 속 '화'는 "나는 이 아이의 진짜 주인이다"라고 선언하며 아이의 몸을 꼭두각시처럼 조종합니다. 둘째 아이의 화가 엄마에게, 또 첫째 아이에게 연쇄적으로 옮겨 붙으며 그 누구도 상황을 통제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는 우리가 감정의 온전한 주인이 아닐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드러냅니다. 감정은 때로 우리를 지배하는 강력한 힘이며, 우리는 그 힘 앞에서 속수무책인 숙주가 되기도 합니다.


'나쁜' 감정이란 존재하는가?

'화'는 자신을 '나쁜 놈'으로만 보는 세상이 억울하다고 항변하며, 스스로를 상처받은 아이를 지키는 '가장 강력한 갑옷'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화'라는 감정의 의도 자체는 생존을 위한 보호 본능에 가까울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하지만 곰인형은 그 갑옷이 너무 "시끄럽다"라고 지적하며, 그 결과 아이가 울게 된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즉, '화'는 선하거나 악한 존재가 아니라, '보호'라는 목적을 위해 '파괴'라는 서툰 방법을 사용하는 존재일 수 있습니다.


감정을 '느끼는 것'과 '표현하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동화 속 '화'는 자신의 등장과 함께 아이의 생각을 마비시키고(콰르르릉-), 심장을 후려치고(쿵! 쿵! 쿵!), 쇳소리를 내게(카랑-!) 합니다. 이는 분노를 느끼는 내면의 상태와 그것을 파괴적으로 표출하는 외부 행동 사이의 경계가 완전히 무너진 상태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곰인형이 제안한 '진짜 목소리가 되어 주는 것'은 바로 이 둘 사이에 공간을 만드는 일입니다. 분노를 느끼더라도, 그것을 날것 그대로 폭발시키는 대신, '내가 왜 화가 났는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죠.


감정을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동화 속 '화'는 자신의 본심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결국 곰인형에게 "너라도 좀 알아달라"며 절박하게 호소합니다. 감정 역시 이해받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입니다. 곰인형의 마지막 대답은 감정 이해의 핵심을 꿰뚫습니다. 그것은 '화'의 시끄러운 갑옷 소리(표면적 행동)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갑옷이 지키려 했던 아이의 여린 마음과 진짜 하고 싶었던 말(근본 원인)을 들어주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동서양 철학자들이 오랫동안 탐구해 온 감정의 본질과 맞닿아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와 올바른 분노의 조건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분노가 '부당한 무시'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는데, 이는 동화 속 '화'가 '억울함'과 '부당함'을 최고의 만찬으로 삼는다는 설정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그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올바른 대상에게, 올바른 정도로, 올바른 시간에, 올바른 목적으로, 올바른 방식으로 화를 내는 것. 그것은 결코 쉽지 않다"라고 말했습니다. 동화 속 '화'의 방식은 이 모든 조건에서 어긋난 '시끄러운 갑옷'이며, 아침 식탁의 연쇄 분노 역시 '잘못된 분노'의 전형입니다.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과 전환적 분노

현대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분노가 파괴적인 '보복의 욕구'로 이어지기 쉽다고 경고합니다. 그녀는 보복 대신, 잘못을 바로잡고 미래를 건설적으로 바꾸는 데 집중하는 '전환적 분노(Transition-Anger)'를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곰인형의 마지막 충고, "시끄러운 갑옷이 될 게 아니라... 이 아이의 진짜 목소리가 되어 줘야지"는 바로 이 '전환적 분노'의 철학과 맞닿아 있습니다. '화'의 에너지를 파괴적인 폭발(갑옷)에서 건설적인 자기표현(목소리)으로 전환하라는 지혜인 셈입니다.


왕양명(王陽明)과 마음의 주인이 되는 길

중국 명나라 시대의 철학자 왕양명은 모든 문제 해결의 열쇠가 '마음(心)'안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치양지(致良知)'를 통해 내 마음의 본래 모습인 '양지(良知, 옳고 그름을 아는 선천적 능력)'를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동화에서 '화'는 거칠게 날뛰는 욕망을 상징한다면, 오랜 시간 아이 곁을 지키며 조용히 본질을 꿰뚫는 '곰인형'은 바로 이 '양지'의 목소리와 같습니다. 밖으로 폭발하는 감정을 안으로 돌이켜, 내 마음의 조용한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진짜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실의 철학 수업]

작년 고3 2학기, 수능이 끝난 교실은 열정과 냉소, 희망과 체념이 기묘하게 뒤섞인 공간이다.


나는 그 거대한 무기력과 마주하며 정말 조심스럽게 동화 한 편을 꺼내 들었다.

"오늘은 '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하는데..."

여기저기서 예측했던 반응이 터져 나왔다. '이 와중에 무슨 수업입니까?!!!'라고 말하는 눈빛이 나와 마주쳤다


"쌤, 지금 저희한테 가장 없는 게 '희망'이고, 가장 많은 게 '화'예요."

"제 안의 '화'는 이미 저를 잡아먹었는데요."


그 냉소적인 분위기 속에서 난 꿋꿋하게 '내가 누구냐고?'를 낭독했다. 이야기가 끝나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맨 뒷자리 녀석이 툭, 하고 한마디 던졌다.

"그거... 그냥 제 얘기 같은데요. 제 안의 주인 행세하는 놈."


그 한마디가 봇물처럼 하소연이 쏟아져 나왔다.

"완전 소름. 제 '화'는 너무 시끄러워서, 제 '곰인형'은 아예 입도 뻥긋 못 하고 찌그러져 있어요."

"시끄러운 갑옷이라는 말, 진짜 공감돼요. 그 갑옷이 절 지켜주는 것 같긴 한데... 너무 무거워서 저까지 같이 무너지는 기분이에요."

"화내는 내가 싫은데, 또 화를 내고 있고, 그런 내 자신이 더 화가 나요. 성격장애 아니겠죠?"

"저는 엄마가 '다 널 위해서'라는 말 할 때마다 폭발해요. 그 '화'라는 놈이 제일 좋아하는 메뉴가 '다 널 위해서'일걸요?"


래퍼지망생 한 명은 샤우팅 느낌의 랩 가사로 만들어보면 어떻겠냐며, 아이들의 하소연에 라임을 붙여 중얼중얼. 스트레스 해소가 될 것 같단다.

이어지는 위트 섞인 고백들은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하는 깊은 공감으로 이어졌다.


한 아이가 조용히 물었다. "쌤도... 쌤 안에도 그놈이 살아요?"

그 질문에 아이들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나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하지. 아주 난폭하고 시끄러운 녀석이 살고 있어. 가끔은 내가 주인인지 그놈이 주인인지 헷갈릴 때도 많아."


'에이, 진짜요?' 하는 표정으로 아이들이 웃었다.

억지스러운 훈훈함이 아닌, 동지애에 가까운 분위기였다.


나는 한 문장을 적었다.


"우리의 모든 감정은, 우리가 누구인지 알려주기 위해 찾아온 손님이다."


아이들은 그 문장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교실을 나서는 그들의 뒷모습에서, 나는 스무 살이라는 낯선 대륙을 탐험하기 위해 제 마음속의 포악한 괴물과 기꺼이 동행하기로 결심한, 작은 철학자들의 모습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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