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공부 / "공부 잘하면 진짜 행복해져?"

[창작동화] 씨앗을 심는 두 가지 방법 - 정약용,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by 오이랑

[대화의 발견]

저녁을 차리는 동안, 식탁은 아이들의 작은 공부방이 되었다. 보글보글 찌개가 끓는 소리 사이로 둘째의 투정이 새어 나왔다. 아이는 한 자리에 꼼짝없이 앉아 네모 칸을 숫자로 채우는 연산 문제집이 세상에서 가장 지루하다는 듯 온몸을 비틀었다.


"엄마, 공부는 재미없는데 왜 재미없는 공부를 해야 하지? 난 공부 재능이 없나 봐. 공부하면 행복해져? 공부의 끝은 있어? 하는 동안 재미가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공부하면 행복해지냐고! 난 그냥 하기 싫어!"


재미없는 과정을 견뎌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아이의 순수한 절규. 그 옆에서 영어 단어 시험을 준비하던 첫째가 고개를 들고 말을 보탰다.


"근데, 시험 100점 맞아도 기쁜 건 진짜 잠깐이야. 다시 다른 시험 준비하는 시간은 엄청 길고 힘들어. 행복해지려고 공부하는데, 대체 언제까지 공부해야 행복해지는 거야?"


순간의 기쁨을 위해 너무나 긴 고통을 견뎌야 하는 아이의 지친 질문. 부엌의 온기와는 대조적으로 차갑게 식어버린 아이들의 마음 앞에서, 나는 '공부'와 '행복'이라는 단어의 거리를 가늠해 보았다.




[창작 동화] 씨앗을 심는 두 가지 방법


햇살이 가득한 골짜기에 두 명의 어린 정원사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똑같은 씨앗 열 개와 똑같은 크기의 밭이 주어졌습니다.


첫 번째 정원사인 '렉스'는 '최고의 정원'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렉스는 자와 각도기를 이용해 밭에 완벽한 직선을 긋고, 정확히 똑같은 간격으로 씨앗을 심었습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양의 물을 주었고, 조금이라도 모양이 삐뚤어진 싹은 가차 없이 뽑아버렸습니다. 렉스의 밭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모습이었지만, 렉스는 늘 불안했습니다. 옆 밭보다 꽃이 작을까 봐, 혹은 벌레가 생길까 봐 맘 편히 쉰 적이 없었습니다.


두 번째 정원사인 '플로라'는 궁금한 것이 많았습니다. '씨앗을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심으면 어떻게 될까?', '물을 듬뿍 주면 더 빨리 자랄까?', '이 씨앗 옆에 다른 풀을 심으면 친구가 될 수 있을까?' 플로라의 밭은 엉망진창처럼 보였습니다. 어떤 꽃은 키가 컸고, 어떤 꽃은 옆으로 누워 자랐으며, 이름 모를 풀들과 뒤섞여 있기도 했습니다. 플로라는 매일 밭으로 가는 길이 즐거웠습니다. 오늘은 또 어떤 새로운 싹이 났을지, 어제와는 무엇이 달라졌을지 관찰하는 것이 신났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대회 날이 되었습니다. 렉스는 완벽하게 정돈된 정원으로 1등 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렉스는 내년 대회에서는 더 완벽한 정원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습니다.


플로라는 아무 상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플로라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자신만의 정원을 갖게 되었습니다. 플로라는 어떤 땅에서 어떤 꽃이 잘 자라는지, 식물들이 서로 어떻게 돕고 살아가는지를 알게 되었고, 골짜기에서 가장 지혜로운 정원사가 되었습니다. 밭을 가꾸는 매일매일이 플로라에게는 즐거운 공부였기 때문입니다.




즐거움 없는 공부는 지속될 수 있을까?

둘째 아이는 공부의 과정이 "재미없다"라고 말합니다. [창작 동화] 속 렉스 역시 대회를 위한 정원 가꾸기 과정에서 즐거움보다 불안을 더 크게 느낍니다. 즐거움이란 단지 순간의 쾌락일까요, 아니면 공부라는 긴 여정을 지속하게 하는 필수적인 동력일까요?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공부는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남길까요?


공부의 목적은 '경쟁에서의 승리'일까, '나의 성장'일까?

렉스는 '1등'이라는 목표를 위해, 즉 남들보다 잘하기 위해 밭을 가꿉니다. 반면 플로라는 '궁금증 해결'과 '새로운 발견'을 위해, 즉 어제의 나보다 더 지혜로워지기 위해 밭을 가꿔요. 이는 공부를 바라보는 두 가지 태도를 보여줍니다. 남을 이기기 위한 줄 세우기 공부와, 나 자신을 성장시키기 위한 활동으로서의 공부 중 무엇이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까요?


100점의 기쁨은 왜 짧을까?

첫째 아이는 시험 결과가 주는 기쁨의 짧음에 허무함을 느낍니다. 렉스 역시 1등의 기쁨 뒤에 더 큰 압박감을 느껴요. 이는 외부적인 보상(점수, 등수)이 주는 즐거움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더 오래 지속되는 즐거움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동화 속 플로라처럼 과정 자체에서 오는 지적 호기심과 발견의 기쁨이 그 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공부 재능'은 정해져 있는 것일까?

둘째 아이는 "난 공부 재능이 없나 봐"라고 말하며 자신의 능력을 단정 짓습니다. 하지만 플로라의 이야기는 다른 관점을 제시합니다. 플로라가 지혜로운 정원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타고난 재능 때문이 아니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질문하고 시도하는 '태도' 덕분이었지요. 공부란 정해진 재능을 확인하는 과정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는 과정 속에서 능력을 '키워가는' 활동이 아닐까요?




이 이야기는 '공부'의 본질에 대한 다양한 학자들의 깊은 사유와 연결됩니다.


정약용(丁若鏞)과 실학(實學) 조선 후기의 실학자

정약용은 책상에 앉아 경전만 외우는 공부를 비판하고,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학문'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앎(知)이 앎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실천(行)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봤습니다. 그의 관점에서 본다면, 시험 점수만을 위한 공부는 공허한 것이지요. 동화 속 플로라가 밭을 가꾸며 얻은 지혜처럼, 공부란 나의 삶과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가꾸어 나가는 구체적인 활동이 되어야 비로소 그 의미를 갖습니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Jiddu Krishnamurti)와 경쟁 없는 교육

인도의 철학자 크리슈나무르티는 비교와 경쟁에 기반한 교육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는 교육의 진정한 목적이 아이들을 사회가 정해놓은 틀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두려움 없이 자기 자신과 세상을 온전히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동화 속 렉스가 겪는 끊임없는 불안과 압박감은 크리슈나무르티가 경고했던 경쟁 교육의 폐해를 보여줍니다. 그는 아이들이 비교와 경쟁에서 벗어나, 내적인 자유 속에서 배움 자체를 즐길 때 진정한 지성이 깨어난다고 믿었어요.


캐럴 드웩(Carol Dweck)과 성장형 사고방식(Growth Mindset)

미국의 심리학자 캐럴 드웩은 자신의 능력이 고정되어 있다고 믿는 '고정형 사고방식'과, 노력을 통해 얼마든지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믿는 '성장형 사고방식'을 구분했습니다. "난 공부 재능이 없어"라고 말하는 둘째는 고정형 사고방식에 갇혀 있는 반면, 수많은 시도를 통해 지혜를 얻는 플로라는 성장형 사고방식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드웩의 연구는 공부의 즐거움과 성취가 타고난 재능이 아닌, '성장할 수 있다'라고 믿는 마음가짐과 태도에 달려 있음을 명확히 말하고 있어요.




[교실의 철학 수업]

2차 지필평가, 일명 기말고사가 끝나고 다음 주면 방학인, 교실 달력에서 가장 어정쩡하고 나른한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엎드려 자거나, 스마트폰을 만지거나, 그도 아니면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었다. 나는 이 무기력한 공기를 깨고 싶어 툭, 하고 질문을 던졌다.


"야, 그래서... 공부 잘하면 진짜 행복하냐?"


맨 뒷자리에 앉은 녀석이 엎드린 채로 고개만 돌려 대답했다.

"쌤, 그건 행복이랑 상관없죠. 돈 잘 벌면 행복한 거고, 돈 잘 벌려면 공부 잘해야 하는 거고. 그냥... 필요조건?"

지극히 현실적인 답변에 여기저기서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저는 1등급 받으면 엄마가 행복해하시니까... 뭐, 간접 행복 정도는 되는 것 같아요."

"시험 끝났을 때 행복하잖아요. 공부가 행복의 원인이긴 하네요. 역설적으로."


아이들의 냉소적인 답변이 오가는 와중에, 늘 조용하던 한 아이가 손을 들었다.

"그런데요, 쌤. 저는 행복하려고 공부하는 건지, 그냥 불안하지 않으려고 공부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좋은 성적을 받아도 진짜 잠깐 좋고, 바로 다음 시험 걱정해야 하잖아요."

"좋은 성적의 기준은 또 뭘까요? 난 이만하면 잘한 거 같다 싶어 좋아하고 있는데 옆에서 아니라 그러면 확 쭈구리가 돼요."


교실의 공기가 순간 달라졌다. 녀석의 말은 교실에 있는 모두의 마음을 건드린 듯했다. 나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너희들 말이 다 맞아. 솔직히 나도 너희에게 철학자의 사유보다 문제 푸는 기술을 더 많이 가르칠 때가 있으니까. 이게 더 중요하다고, 밑줄 그으라고 소리치잖아. 우리 다 똑같이 불안한 거지."


아이들은 그제야 경계를 풀고 나를 쳐다봤다. 그 틈으로 동화 이야기를 꺼냈다.


"그냥... 가끔 그런 생각을 해. 우리는 다들 렉스처럼 1등 정원을 만들려고 애쓰고 있는 거 아닐까. 옆 밭보다 더 예쁘게, 더 완벽하게. 근데 정작 진짜 재밌는 건 플로라처럼 엉망진창 밭에서 뭐가 자랄지 궁금해하는 건데 말이야. 정답은 나도 몰라. 그냥 그렇다고."


수업 종료 종이 울렸다. 아이들은 여느 때처럼 시끌벅적하게 교실을 빠져나갔다. 그날, 나는 아이들에게서 어떤 소감문도 받지 않았다. 정답도, 깨달음도 없었다. 하지만 교실을 나서는 몇몇 아이들의 얼굴에, 아주 잠깐 스쳐 지나간 그 알 수 없는 표정. 어쩌면 진짜 공부는, 바로 그 표정 속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keyword
화요일 연재
이전 07화공정 / “왜 나만 동생한테 양보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