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동화] 소원을 파는 상점 - 마르크스, 샌델, 프롬, 카더먼
어린이집에 다니던 둘째가 저녁을 먹으며 신이 나 재잘거렸다.
"나는 언니 있어서 너무 좋아! 언니가 그림 그리는 것도 가르쳐주고, 내가 모르는 한글도 알려주고, 무서울 때 옆에 있어 주잖아! 그리고 친구들은 언니 없는데 난 있어서 애들이 엄청 부러워해. 나만 언니 있지롱~"
동생은 언니라는 존재를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자기 소유물인 양 자랑했다.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옆에 앉은 첫째를 바라보았다. 당연히 첫째도 기분이 좋을 것이라 막연히 짐작했다. 하지만 아이의 표정은 어두웠다. 동생의 자랑이 끝나자, 유치원생이었던 첫째는 전혀 예상치 못한 떼를 쓰기 시작했다.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나도 언니 있었으면 좋겠어."
나는 웃으며 "네가 언니잖아."라고 대답했지만, 아이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야! 나도 이런 나 같은 언니 갖고 싶어! 친구들이 그러는데 돈으로 못 사는 게 없대! 우리 반 OO는 마트에서 햄스터도 샀단 말이야! 엄마, 언니도 돈으로 어떻게 해줘! 사줘!"
'언니를 사달라'는 아이의 서툰 외침 앞에서 나는 순간 당황해서 할 말을 잃었다.
첫째라는 역할의 무게, 동생을 챙겨야 하는 책임감 속에서 아이는 정작 자신을 챙겨줄 존재의 부재를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결핍을 채울 유일한 방법으로 '돈'을 떠올린 아이의 모습, 햄스터를 사는 것과 언니를 사는 것을 동일한 '구매 행위'로 보는 아이의 순진한 논리 앞에서, 돈으로 할 수 있는 일과 결코 할 수 없는 일의 경계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해졌다.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에 무엇이든 살 수 있는 '소원 상점'이 있었습니다. 상점의 주인은 신비로운 노인이었고, 물건값은 오직 순금으로만 받았습니다. 나라에서 가장 큰 부잣집의 아이 '마이더스'는 그 상점의 단골손님이었습니다.
"가장 빠른 장난감 자동차를 주세요."
마이더스가 금화를 던지자, 눈부신 자동차가 나타났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케이크를 주세요."
마이더스가 금 주머니를 던지자, 구름 같은 케이크가 나타났습니다. 마이더스는 돈으로 무엇이든 가질 수 있었지만, 어쩐지 늘 혼자였습니다.
어느 날, 마이더스는 상점 앞에서 한 아이가 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왜 울고 있니?"
"내 가장 친한 친구가 곧 아주 먼 곳으로 이사를 가. 영원히 함께 있고 싶은데... 그 소원은 너무 비싸서 살 수가 없어."
마이더스는 처음으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마이더스는 상점으로 달려가 노인에게 외쳤습니다.
"내 모든 재산을 드릴게요! 저 아이의 '영원한 친구'가 되어주세요!"
노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습니다.
"얘야, 이 상점에서는 물건을 팔지만, '관계'는 팔지 않는단다. 시간과 마음을 들여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거든."
마이더스는 상점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울고 있는 아이에게 다가가 조용히 손을 내밀었습니다.
"내가 너의 새로운 친구가 되어줄게."
아이는 눈물을 닦고 마이더스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 순간, 마이더스는 금화로는 결코 느껴본 적 없는 따뜻함이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돈으로 무엇이든 살 수 있다고 믿었던 소년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훨씬 더 소중하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닫고 있었습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무엇으로 구분될까?
[대화의 발견]에서 첫째는 '햄스터'와 '언니'를 동일한 구매 대상으로 봅니다. [창작 동화] 속 마이더스는 '영원한 친구'를 돈으로 사려다 실패합니다. 이는 돈이 물건이나 서비스 같은 '소유'의 영역에는 막강한 힘을 발휘하지만, 사랑, 우정, 신뢰와 같은 '관계'의 영역에서는 무력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돈의 힘이 닿는 경계는 어디까지일까요?
모든 가치는 돈으로 환산될 수 있을까?
첫째는 '언니가 주는 든든함'이라는 가치를 돈으로 사려 합니다. 이처럼 돈으로 측정할 수 없는 가치들이 우리 삶에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만약 세상 모든 것에 가격표를 붙인다면, 우리는 더 행복해질까요, 아니면 더 불행해질까요? 돈이라는 단일한 척도가 놓치는 소중한 가치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돈이 많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은 왜 위험할까?
이 믿음은 [대화의 발견] 속 첫째에게 해결될 수 없는 문제(언니를 사는 것)에 대한 잘못된 해결책을 제시하고, [창작 동화] 속 마이더스를 외롭게 만들었습니다. 이 믿음은 우리에게 세상의 모든 문제를 '소비'를 통해 해결하려는 태도를 갖게 합니다. 이는 진정한 문제의 원인을 보지 못하게 하고, 관계와 노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상점 주인은 '관계'는 시간과 마음을 들여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마이더스가 진정한 따뜻함을 느낀 순간은, 금화를 던졌을 때가 아니라 친구에게 손을 내밀었을 때였어요. 이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한 가치들이 대부분 효율성이나 편리함이 아닌, 시간, 노력, 진심과 같은 비물질적인 요소를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 이야기는 '돈'과 '가치'의 본질에 대한 다양한 사상가들의 깊은 사유와 연결됩니다.
카를 마르크스(Karl Marx)와 상품물신성(Commodity Fetishism)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상품이 마치 스스로 가치를 지닌 신비로운 존재처럼 숭배된다고 보았습니다. '언니를 사달라'는 아이의 외침은, 돈이 가진 본래의 교환 기능을 넘어 마치 모든 것을 창조할 수 있는 신적인 힘을 가졌다고 믿는 물신성의 한 예랍니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물신성이 인간 사이의 관계를 상품 사이의 관계로 왜곡시킨다고 비판했습니다.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과 시장의 도덕적 한계
현대의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은 시장이 모든 영역으로 확장되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그는 어떤 재화나 가치는 돈으로 거래되는 순간 그 본질이 훼손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예를 들어, 친구를 돈으로 산다면 그것은 더 이상 진정한 우정이 아닌 겁니다. '언니'를 돈으로 사는 순간, 그 존재는 더 이상 '가족'이 아닌 '상품'이 되는 거지요.
에리히 프롬(Erich Fromm)과 소유냐 존재냐(To Have or to Be?)
심리학자이자 철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삶의 양식을 '소유 양식'과 '존재 양식'으로 구분했습니다. '소유 양식'은 더 많은 것을 갖고 소비하는 것(마이더스의 초기 모습)에서 만족을 얻는 삶입니다. 반면 '존재 양식'은 자신의 능동적인 활동과 관계 맺음(마이더스가 친구의 손을 잡는 행위) 자체에서 기쁨을 느끼는 삶이지요.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과 돈과 행복의 관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돈과 행복의 관계를 실증적으로 연구했습니다. 그는 일정 수준의 소득에 도달할 때까지는 소득이 높아질수록 '정서적 웰빙(행복감)'이 증가하지만, 그 수준을 넘어서면 돈이 더 많아져도 행복감이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는 돈이 고통을 줄여주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행복을 적극적으로 만들어주는 데는 한계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생활과 윤리> 수업에서 '자본주의의 윤리적 문제'를 다룬 뒤, 나는 아이들에게 모둠 토론 과제를 던졌다.
"만약 너희에게 완벽한 익명으로 100억이 생긴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 3가지와, 100억이 있어도 절대로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 3가지를 적어봅시다!"
교실은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나는 교실을 돌며 아이들의 날것 그대로의 대화를 엿들었다.
"야, 100억인데 10억짜리 집이 뭐냐. 페이커 사는 '아크로 서울 포레스트' 사야지."
"난 당장 자퇴하고 세계 일주.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근데... 100억 있어도... 걔가 날 좋아하게 만들 순 없겠지?"
"엄마 잔소리는 못 멈추게 할 듯. 돈 준다고 조용히 하실 분이 아니야."
"성적은 어떡하냐? 100억으로 서울대 입학은 못 하잖아."
"야, 노벨상 수상자 10명 붙여서 과외하면 되지! 돈이 있는데 왜 못해!"
아이들의 토론은 100억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절대적 힘에 대한 열망'과, 돈으로도 어쩔 수 없는 '관계와 실존의 문제' 사이를 위태롭게 오갔다.
발표 시간이 되자, 한 모둠의 발표가 인상 깊었다.
"저희 조는... 돈으로 '편리한 시간'은 살 수 있지만(알바 고용), '지나간 시간'은 살 수 없고, '비싼 물건'은 살 수 있지만 '진짜 존경'은 살 수 없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그날 저녁, 나는 수업 정리 노트에 끄적였다.
'아이들은 돈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알았고, 돈의 한계도 누구보다 명확히 알았다. 100억을 향한 열망과 100억으로도 채울 수 없는 결핍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교실은 이미 가장 현실적인 시장(市場)이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돈은 나쁜 것'이라는 훈계가 아니다. 돈의 '쓸모'와 돈의 '한계'를 동시에 직시하고, 그 위태로운 경계선 위에서 '나의 가치'를 지켜낼 힘을 길러주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