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동화] 규칙이 사라진 하루 - 홉스, 밀, 공자, 센, 푸코
태블릿에 새로운 게임을 깔아준 것이 화근이었다. 아이는 그 게임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하지만 우리 집에는 가족회의를 통해 민주적으로 정해진, 규칙이 있었다. "모든 숙제를 다 끝낸다. 그 후에 딱 30분만 태블릿 가지고 논다." 아이도 그 합의 과정에 분명히 참여했고, 지장까지 꾹! 찍으며 동의했다.
그날도 아이는 숙제를 쏜살같이 끝내고, 황홀한 표정으로 30분의 꿀맛 같은 자유를 누렸다. 문제는 알람이 울렸을 때 터졌다. 나는 주방에서 저녁을 준비하다 말고 소리쳤다. "OO아, 시간 다 됐어. 그만."
"아니! 잠깐만! 이것만 깨고! 10분만, 아니 5분만!" "안 돼. 약속했잖아. 숙제 다 하면 30분. 너도 동의했잖아."
그 순간, 아이가 태블릿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얄미울 정도로 논리적인 반격을 시작했다.
"그건 '지난달'의 나잖아!"
"응...?"
"그 규칙에 동의한 건 '지난달'의 나잖아! '지난달'의 나는 이 게임이 이렇게 재미있는 줄 몰랐지! '오늘'의 나는 그 규칙에 동의 안 해! 왜 '지난달'의 내가 '오늘'의 내 자유를 결정해? 내 마음이 바뀌었는데! 내 마음대로 할 자유가 나한테는 없어?"
순간 머리가 띵했다. '지난달의 나'와 '오늘의 나'를 분리하는 저 기막힌 논리 앞에서, 30분짜리 약속의 무게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날 밤, 서린이는 '밤 10시 전 취침' 규칙 때문에 단단히 화가 난 채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왜 내 마음대로 하면 안 돼? 더 놀고 싶은데! 귀찮은 규칙 따위 다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어!"
다음 날 아침, 서린이는 이상한 느낌에 눈을 떴습니다. 시끄러운 알람 시계가 울리지 않았습니다. 엄마도 깨우러 오지 않았습니다. 서린이는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정말로 세상의 모든 규칙이 사라진 것 같았습니다!
서린이는 씻지도 않고 밥 대신 아이스크림을 꺼내 먹었습니다. 그리곤 온종일 소리를 지르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나는 자유다!"
처음엔 즐거웠지만, 곧 혼란이 찾아왔습니다. 서린이가 시끄럽게 노래를 부르자, 마침 잠을 자고 싶었던 이웃집 아저씨가 창문을 열고 더 큰 소리로 화를 냈습니다. (아저씨도 '마음대로' 화를 낼 자유가 있었으니까요.)
배가 고파진 서린이는 빵집으로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빵집 아저씨는 "오늘은 빵 만들기 싫어. 레시피(규칙)대로 하는 거 지겨워!"라며 소금만 잔뜩 들어간 이상한 빵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엉망진창이 된 빵을 들고 놀이터로 가려는데, 길이 꽉 막혀 엉망진창이었습니다. 신호등이 "나도 쉴 자유가 있어!"라며 불 켜는 일(규칙)을 그만두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길을 건널 수가 없었습니다.
서린이는 깨달았습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되자, 다른 사람들의 '마음대로' 때문에 정작 자신이 하고 싶은 것(맛있는 빵 먹기, 놀이터 가기)을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요. 귀찮게만 여겨졌던 '신호등 규칙'이 사실은 '안전하게 놀이터에 갈 자유'를 지켜주는 울타리였다는 것을요.
그날 밤, 서린이는 스스로 9시에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알람 시계가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서린이는 처음으로 알람 소리가 반갑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난달의 나'는 '오늘의 나'를 구속할 수 있을까요?
[대화의 발견] 속 아이의 질문은 정체성의 연속성에 대한 것입니다. '약속'이란 무엇일까요? 나의 자유를 억압하는 족쇄일까요, 아니면 나의 자유를 더 확장시켜 주는(신뢰) 도구일까요? '지난달의 나'가 한 약속을 '오늘의 나'는 지킬 필요가 없는 걸까요?
규칙은 자유의 적일까요, 자유의 조건일까요?
[창작 동화]에서 서린이는 규칙이 사라진 완벽한 자유를 얻었지만, 그 결과 빵을 먹을 자유, 놀이터에 갈 자유 등 더 큰 자유를 잃었습니다. 신호등이라는 '규칙'이 있어야, 서린이가 '안전하게 길을 건널 자유'가 생깁니다. 이는 규칙이 우리의 자유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자유를 지켜주는 '울타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요?
'나의 자유'와 '너의 자유'가 부딪히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서린이가 '노래 부를 자유'와 아저씨의 '잠잘 자유'가 충돌했습니다. 아이가 '게임을 더 할 자유'는 부모와의 '약속을 지킬 자유(신뢰)'와 충돌합니다. 나의 자유는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며, 그 경계는 누가 정해야 할까요?
진정한 자유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흔히 '내 마음대로 하는 것'(간섭받지 않을 자유)을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화의 발견]의 아이가 '오늘의 나'의 자유만을 주장한다면, 그는 내일 부모의 신뢰를 잃어 아이패드 자체를 잃게 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진정한 자유란, 순간의 욕구를 참아내고 '스스로 정한 약속을 지킬 수 있는 힘'(자제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요?
이 이야기는 '자유', '규칙', '약속'이라는 가장 오래된 철학적 딜레마와 연결됩니다.
토머스 홉스 (Thomas Hobbes)와 리바이어던
홉스는 규칙이 없는 '자연 상태'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라고 보았습니다. [창작 동화] 속 '내 마음대로' 마을이 바로 그 혼돈의 상태입니다. 모두가 자신의 자유(이익)만을 추구하다 보니, 오히려 모두가 불안하고 위험해진다는 것이죠. 그래서 사람들은 이 혼돈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들의 자유 일부를 규칙(계약)에게 넘기고 보호받기를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존 스튜어트 밀 (John Stuart Mill)과 해악의 원칙
밀은 『자유론』에서 "나의 자유는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만 허용된다"는 '해악의 원칙'을 제시했습니다. 동화 속 서린이가 노래 부를 자유는 이웃의 잠잘 자유를 침해(해악)했습니다. [대화의 발견] 속 아이가 약속을 어기고 게임을 더 할 자유는, '약속이 지켜질 것'이라 믿었던 부모의 신뢰에 '해악'을 끼치는 행위일수도 있겠죠?
공자(孔子)와 신(信)과 예(禮)
동양의 철학자 공자는 '믿음(信)'을 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보았습니다. [대화의 발견] 속 아이의 주장은 이 '신뢰'의 기반을 무너뜨립니다. 또한 공자는 개인의 욕망을 조절하여 공동체를 유지하는 사회 규범, 즉 '예(禮)'를 강조했습니다. '30분 규칙'은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예'이며, 진정한 자유는 이 '예' 안에서 욕망을 스스로 조절할 때(克己復禮) 이루어진다고 보았습니다.
아마르티아 센 (Amartya Sen)과 역량으로서의 자유
인도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아마르티아 센은, 자유를 단순히 '간섭받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삶을 실질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능력(Capability)"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아이가 '30분'의 약속(규칙)을 지키는 것은, 당장의 자유를 포기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부모와의 신뢰를 쌓고', '스스로의 조절 능력을 키우는' 역량을 기르는 일입니다. 이 역량이야말로 아이가 나중에 더 크고 중요한 것들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진정한 자유'의 기반입니다.
미셸 푸코 (Michel Foucault)와 권력으로서의 규칙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는 '규칙'이나 '약속'이 중립적이지 않다고 보았습니다. 그것은 '권력'이 개인을 통제하고 훈련하는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대화의 발견] 속 '가족회의'는 민주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부모'라는 권력이 아이를 '바람직한 학생'으로 만들기 위해 게임 시간을 통제하는 기술입니다. 아이의 "지난달의 나는 내가 아니야!"라는 저항은, 이 보이지 않는 권력에 대한 본능적인 반항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생활과 윤리> 시간, '사회 계약설' 주제는 언제나 아이들에게 지루한 암기 파트일 뿐이었다. 나는 교과서를 덮고, 아이들에게 새로운 시뮬레이션 과제를 던졌다.
"자, 지금부터 상상해 보자. 우리 반, 통째로 무인도에 떨어졌다. 구조선은 1년 뒤에 온다. 나를 포함해 우리 반 인원 모두가 살아남아야 한다. 모둠별로, 무인도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생존 규칙' 딱 3가지를 정해볼까?"
교실은 순식간에 시장 바닥이 되었다.
"쌤! 1번 규칙, 쌤이 밥 해오기!"
"야, 미쳤냐. 1번 규칙, 힘센 놈이 짱이다. 내가 대장!"
"아니지! 1번 규칙, 모든 걸 공평하게 N분의 1로 나눈다!"
여기저기서 큰 소리가 오갔다. 나는 '힘센 놈이 짱'이라고 외친 모둠에 다가가 말했다.
"좋아. 그럼 네가 이 모둠 짱이야. 그런데 네가 자는 동안 다른 모둠 짱이 너희 식량 다 훔쳐 가도 괜찮아? 그 사람도 '힘센 놈'이니까. 그게 네 자유를 지켜줘?"
아이들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규칙 없음'이 가장 힘센 사람에게만 유리하며, 정작 약한 '나'의 자유(굶지 않을 자유, 맞지 않을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규칙'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10분 뒤, 발표가 시작되었다. '힘센 놈이 짱'이라고 외쳤던 모둠의 첫 번째 규칙은 이것이었다.
"1번. 절대로... 폭력 쓰지 않기."
"2번. 식량은 공동으로 모아서 똑같이 분배하기."
녀석들의 진지한 발표가 끝나자 나는 씩 웃었다. 칠판에 적힌 '사회 계약설'을 툭툭 치며 말했다.
"축하한다, 너희들. 방금 홉스랑 루소를 완벽하게 이해했네. 그것도 너희들 스스로."
"왜 내 마음대로 하면 안 돼요?"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이, 바로 그 척박한 무인도에서 아이들 스스로의 입으로 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