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특별한 놀이터
흔히 모래알처럼 서걱거리는 일상의 퍽퍽함 속에 매몰되거나 삶의 무게에 사로잡혀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는 누군가나 어디에서든 마음의 온천 같은 곳, 자신만의 힐링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말을 한다.
초등학교 동창회 모임이 나에게 그런 힐링의 공간 이 되어 삶의 무거움을 헤쳐나가는 안식처의 역할 을 했다. 유년기는 아무런 걱정 없이 마음껏 뛰어놀 았던 낙원 같은 공간이다. 설사 그렇지 않았다 해도 시간은 모든 지나간 것들을 아름답게 만드는 치유의 힘이 있다. 그래서인지 유년기를 공유한 초등학교 친구들 간의 사이는 이해관계를 초월한 특별한 정다움이라는 게 있다.
2013년에 목회자인 어느 동창 친구에게서 어느 날 걸려온 전화를 통해 초등학교 동창회에 참석하게 되었고 주기별로 모이는 모임 속에서 삶을 공유 하고 신나게 즐겁게 어울리며 노는 활동을 통해 이른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직장 생활에서의 답답한 일상을 잊어버릴 수 있었다.
술 마시고 밤새 이야기하고 떠들고 스키장이나 그 외에도 풍경 좋은 곳을 놀러 가고 체육대회에도 참석하면 서 마음을 짓누르는 무거움에서 많이 자유로워졌다. 당시 노래방을 운영하는 동창들이 둘 있어서, 모임의 귀착점은 으레 노래방이 되기 마련이었 는데 밤이 깊도록 노래를 부르거나 대화 하는 분위기 속에서 진심으로 해방감을 만끽했다.
그러다 보니 나에게 놀라운 기적이 찾아왔다.
이상근 증후군과 기타 정체불명의 통증으로 인해 나날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어 전전긍긍하던 나의 건강상태가 급격히 회복된 것이다.
당시의 나의 가장 큰 고민은 마음먹고 찾아간 큰 병원에서 몸에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듣는 것이었다. 뭔가 잘못된 것이 발견되어야 몸의 치료를 통해 통증과 불편감이 개선되리라 믿었던 나의 입장에 서는 병명 없음이나 정상판정이 오히려 나를 더욱 답답하게 했다. 여기저기 많은 병원들을 다니면서 낫지 못한 몸의 통증이 초등모임에서의 즐거움을 통해 없어지다 보니 이 병이 스트레스에서 오는 신체화 증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의 고통 에서 벗어나게 해 준 초등동창회가 몹시 귀하고 고마웠다.
분기마다 열리는 모임에 참석해서 같이 즐겁게 어울리는 것 이에도 주기적으로 밴드에 글을 올리 면서 나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위로받는 시간 을 통해 내면이 정리되고 힘을 얻기도 했다.
밴드를 접한 2015년부터 거의 매일 밴드에 글을 올렸다. 좋은 시도 올리고 나를 위로하면서 생각한 글을 많이 올렸고 직장생활의 고민 등과 삶의 소소 한 부분들에 대하여 글을 올리고 피드백을 받기도 했다. 세상에 대해 올바르게 대응하지 못하고 두려 움 속에 웅크리고 살아온 이야기들을 오픈하면서 초등밴드 안에서는 직장인으로서의 페르소나를 내던질 수 있었고 나를 정서적으로 지지해 주는 많은 친구들 앞에 진심으로 휴식할 수가 있었다.
유년시절에 있던 추억들과 여러가지 모양새의 글을 밴드에 올리면서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가지고자 했다. 당시는 정신없이 방어적으로만 살아온 직장 생활이 힘에 부쳐 1년간의 질병휴직을 하고 난 이후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한 때였고, 휴직 기간 동안에 막연하게나마 작가로서의 삶을 살기를 결심했던 때이기도 하다.
이후에 이렇게 수년간 올린 밴드의 글을 모두 엮어 책을 만들어 동창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다. 글을 올릴 수 있다는 공간이 있고 누군가가 계속 글을 읽어준다는 것, 그 상호작용을 통해 내가 살아있다 는 것을 느끼는 감정은 매우 소중한 경험이면서 나를 지탱하게 만드는 힘이자 위로였다. 초등밴드 는 나에게 최적화된 가장 특별한 놀이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