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인내하는 실패

by 초연희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라는 책을 읽었다. 작가의 의도에 부합하는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이상도 하지. 그 책을 읽고 몇 년이 흘렀는데, 문득 '실패를 인내하는 실패'에 관한 글이 쓰고 싶었다. 그것도 너무나.

그 책을 읽고 난 후 몇 년 동안 내게는 많은 실패가 있었다. 잠시 쉬겠다고 마음먹은 글쓰기는 도대체가 돌아올 여지가 없었다. 생활은 바빴고 글을 미루기는 쉬웠다. 친구는 이런 이유와 저런 까닭으로 멀어졌다. 각자의 사연이 있었고 그 사연에 내가 끼어들 여유와 공간은 없었다. 나는 내가 실패하고 있다는 사실만 어렴풋이 알 뿐, 이 실패들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 와중에 생활은 쉼 없이 굴러갔고 작은 실수들은 잘도 궤를 이어갔다. 그런 실수들은 우습다는 듯이 나 역시 잘도 무시하면서. 예를 들면 직진하라는 내비게이션 신호와 다르게 나는 좌회전 차로에 있었다. 차선을 바꿀 일상은 내게는 없었다. 이를 실수라고 부를 수만 있다면 나에게는 거의 매 순간이 실수였고 실수들은 눈덩이 구르듯이 굴러 실패로 모습을 갖춰갔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은 손도 대지 못했는데 반납 알람 문자가 온다. 책 읽기는 실패했지만 반납은 성공하겠지. 헉헉대며 한 시간을 운동했지만 라면을 두 개를 끓였다. 운동은 성공했지만 다이어트에는 실패했다. 너무나도 쓰고 싶은 결의 소설의 필사를 마쳤지만 습작은 감히 할 생각을 못한다. 소설은 매일 실패다. 그렇다면, 글쓰기는.

실패는 이전의 실패를 인내할 수 있을까. 실패가 인내하는 것은 이전의 실패일까, 아니면 비슷한 실패를 반복하는 나 자신일까. 나는 실패를 감당할 수 있는 스스로가 되어가는 것일까 아니면 무수한 실패를 밟고 오늘을 지나가고 있는 것일까. 실패를 무시하는 것은 쉽지 않은데 계절을 보내기는 이렇게나 쉽고.


이 모든 생각을 멈추기 위해 글을 다시 쓰려한다. 나는 나의 글이 여전히 모나고 못난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더는 멈춰 있을 수 없다. 실패를 인내하기엔 나는 너무 빨리 늙고 있다. 누군가 책 읽을 시간도 없는데 무슨 글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나의 무수한 실패들이 읽지 못한 책들처럼 쌓여 있다고, 그것들을 꿰어 책으로 만들기에 지금은 너무 최적의 날씨라고. 그리고 이 날씨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고.


글쓰기만큼은 실패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나를 보듬는 시간이라고,

실패로 보인다 해도 그마저 내가 인내할 몫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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