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글을 쓴다는 것

by 초연희

가을바람이 얼굴 앞에서 부서지고 있다. 내 안의 것들은 글이 되길 기다리고 있는데, 나는 겁이 많아서 감히 노트북을 열지 못하고 날들을 흘려보냈다. 그러다 문득 어느 오후, 내가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가, 아직 이별을 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끝나지 않은 이별. 언제 끝날 지 알 수 없는 이별. 실은 시작한 적도 없는 사랑,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형체가 없는 이별.

나는 이별을 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글을 쓸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내 안에 추억이라 불릴 만한 것들이 쏟아져 나올까 봐, 그런 것들을 쏟아내면 진짜 이별을 하게 될까 봐. 어쩌면 이별이랄 것이 작고 작고 작아 위치도 특정할 수 없는 상태여서, 나의 이별이 그렇게나 하찮고 뿌연 것이어서, 그런 이별을 직시하게 될까 봐.


그럼에도 노트북을 열었고 글을 쓰고 있다. 살기 위해서. 작고 하찮고 안개 같은 그 이별을 쏟아내지 않으면 주말을 살아내지 못할 것만 같아서. 가을이 이렇게나 파란데 이 하늘을 그냥 어쭙잖게 보내버리고 말 것만 같아서.


나는 다시 글 앞에 쓸 수 있을까. 글이 메마른 내 안의 활자들을 일으켜 세울 수 있을까.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넘쳐나던 활자들이 어디로 가버렸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정확히는, 알고 있지만 무시하고 싶다. 시간 속으로, 일상 속으로, 그리고 기억 너머로. 활자들이 떠나간 곳은 사랑의 마음이 사라져 버린 곳과 대체로 일치한다. 그래서, 그래서 어쩔 텐가. 그곳으로 간다는 것은 과거로 간다는 것이고,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불가능은, 불가능인 것이다.

불가능인 것이다,를 빤히 바라보다가 실은 틀린 것이라는 알아차렸다. 불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불가능해야만 한다. 세상의 많은 일은 실은 불가능하지 않지만 불가능하다고 믿고 우기면서 이루어진다. 우리의 평안도 너희의 사랑도. 불가능이라는 활력 속에서 우리는 늙어가고 추억을 빚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시를 읽고 소설을 읽고 뉴스 제목을 대충 챙기고 과일을 깎으며 나날을 보낸다. 고기를 뒤집을 때를 놓쳐 태우기도 하고 건조기에서 막 꺼낸 빨랫감의 온기를 느끼면서 생각하는 것이다. 글을 써야 하는데. 그러나 나는 무슨 글을 써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사랑을 잃은 마음에 대한 글, 길고 긴 이별에 대한 글, 가을바람이 얼굴 앞에서 부서졌다는 서글픔에 관한 글, 오늘만큼은 고기를 태우지 않겠다는 글. 그리고

사랑, 이라는 말을 자꾸 꺼내지 않겠다는 다짐의 글.


글을 쓰고 보니, 나는 오늘도 역시나 실패했다는 실감이 밀려온다. 이별을 마무리지을지도 모를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글이 나의 오랜 이별을 끝낼까 봐. 그러나 이런 실패여서 다행이다. 나의 이별은 여전히 건재하고, 글은 나의 이별이 오늘도 오늘만큼의 그리움을 달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줄 뿐이었다. 이것은 얼마나 서러운 위로인지.


매일 연습하는 어떤 고백이 오늘은 무슨 맛일지,

입 안에 굴리는 고백의 감촉을 기대하며 밤을 기다리겠다.

고백과 이별이 동시에 일어난다 해도 놀랍지 않다,

습관처럼 잠 속에서 뭉개질 현상이고

내일이라는 사건은 밤의 역사를 패배의 기록으로 남길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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