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슬픔

by 초연희



도서관에 올 때엔 비가 왔는데 지금은 오는지 모르겠다.


강박으로 혹은 습관으로 소설을 읽고 있다. 소설을 읽지 않아도 되는데, 그러면 몸이 아파올까 봐 어떤 두려움이 있어 소설을 놓지 못하고 있다. 주인공들은 대개 아픈 사람들이다. 왜 아플까 싶다가도 이러니 아프지 하면서 읽는다. 한심하고 안타깝다. 자존감을 키워, 싶으면서도 자존감을 키울 줄 알았으면 이랬을까 싶다. 점심을 먹고 저녁을 해치우듯 소설을 읽는다. 이런 게 도움이 될까 싶지만 어떻게든 도움이 되겠지 하면서 읽는다. 희망도서 신청한 책 역시 소설이다. 나름 기다리던 작가의 신작인데, 받고 나니 지루하기 짝이 없는 제목과 표지다. 사람 마음이 이렇게 간사하다. 간사한 건 나이지만, 주어를 굳이 '사람 마음'이라고 쓴다. 나는 비껴 나간다.

콘센트를 모두 점령한 죄를 짓고도 태연하게 노트북을 바라보는 여자를 계속 신경 쓰고 있다. 먼저 온 나를 옆자리로 밀어내었지만 자신의 잘못을 알지 못한다. 나 역시 나의 수많은 잘못을 제대로 알지 못하며 살아왔다. 죄란 이렇게나 경박하고 아무것도 아니다.


오늘만큼은 집에서 건강한 점심을 먹어야지, 생각한다. 요 며칠 밖에서 폭식하듯 먹었다. 맛있는 집밥. 집밥을 먹기 위해서는 지금 일어나야 하지만 노트북이나 두드리고 앉아 있다. 빌린 책이 많다. 가방에 넣고 일어서기가 두렵다. 무거움과 두려움은 별개의 감정이지만 연결되어 있다.


아픈 사람들에 관한 책을 그만 읽고 싶은데, 펼치는 소설마다 죄다 어딘가 조금씩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다. 소설이란 아픈 사람들의 서사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런 건 그만 읽고 싶다 하면서도 나는 쉬지 않고 소설을 펼친다. 고만고만한 이야기들. 그렇다면 큰 서사를 읽으면 되는데 큰 서사는 일상을 덮칠까 봐 두렵다. 그래서 작고 하찮은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나는 이 얇은 나른함을 어쩌지 못하고 있다. 얼른 읽어치우고 다른 책을 봐야지 하고는 다른 책 역시 비슷한 소설이다. 소설을 읽는 것은 행복한 일이지만 어떤 소설은 폐가처럼 불쾌하다.


읽었으면 써야 한다. 그래서 지금 쓰고 있다,라고 하기엔 나의 글은 너무나도 미미하다. 쓰고 싶은 스타일의 소설은 있지만 그 역시 나와는 별개인 것만 같다. 에피파니를 갖고 싶지만 과연 나의 소설이 그런 느낌을 가질 수 있을까 되묻는다. 대답에 자신이 없다. 이것이 나의 소설 읽기의 이유이다. 무언가, 소설 안에서 어떤 깨달음을 갖고 싶어서. 그때까지 나의 나른하고 아픈 소설 읽기는 계속될 것이다. 영원하고 싶진 않다. 소설의 형식으로만 써내야 하는 어떤 고백이 있다. 그 고백이 가닿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다른 차원이다. 먼저 고백이 소설 속에서 돌출되어야 한다. 그때부터 나는 진정으로 숨을 쉴 수 있을 테니까.

그렇다. 지금의 나는 소설 속에 숨죽이고 있다. 그리고 그건, 소설 안에서만 가능하다.


이것이 지금의 나의

사랑의 방식이다.

그 누구도 알 수 없고 그래서 슬픈

그 누구도 슬픔이라 부르지 않는 그래서 혼자 슬픈.


아직 쓰이지 않은 내 소설이 슬플 수밖에 없는 까닭.




창밖을 보니 사람들이 우산을 쓰지 않고 걷고 있다. 비가 그쳤나 보다. 읽던 소설을 다 읽고 조금 더 아픈 채로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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