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능에 관하여

by 초연희




일전에 '관능'에 관하여 글을 쓸 뻔한 적이 있었다. 어쩌다 없던 일이 되긴 했는데, 꽤 곤혹스러운 일이었다고 기억한다.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생물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기관의 기능', '오관 및 감각 기관의 작용'이었다. 음, 내가 생각하는 관능은 이게 아닌데. 다른 의미, 육체적 쾌감, 특히 성적인 감각을 자극하는 작용. 유의어는 감각, 성감, 육감. 아... 이것도 딱히... 내가 생각하는 관능은 첫 번째 의미와 두 번째 의미 그 사이의 어디였다. '기관의 기능'과 '육체적 쾌감'이라니, 너무나도 극단이었다. 그 중간이면서도 뭔가.. 관능, 그저 관능, 그런 분위기.

좀 더 검색해 보니 대부분은 성적인 것과 관계가 있었다. 눈에 띈 건 '관능적인 과일, 복숭아'. 그나마 내가 생각하는 관능에 가장 가까운 이미지였다. 그래, 과일 중엔 복숭아긴 하지. 그런데, 복숭아의 어느 점이 관능? 뭔지 모를 하여튼 그것, 관능은 그것이었다. 그 후 관능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여전히 '그것'을 벗어나지 못한 채.


그 사람도 관능적이었다. 무언지 모를 그것이 있었고, 무엇보다 그 사람을 오래 봤으니까. 긴 시간을 들여 그 사람을 생각하고 보니 그 사람도 관능적인 무언가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마도 그건, 나만이 그에게서 느끼는 관능일 것이다.

지금의 내게 관능은 어떤 '이미지'다. 복숭아와 그 사람이 갖고 있는 그 어떤 이미지.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는 바로 그 이미지. 성적인 이미지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리고 나는

무언가를 잘 알 수 없을 때 갖게 되는 것이 관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잘 알게 되면 혹은 잘 알고 나면 관능은 사라진다. 복숭아도 그렇다. 껍질을 까보기 전까진 어디가 물렀는지, 맛이 어떨지 알지 못한다. 물론 대략 상상할 수 있고 가늠해 볼 수 있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상과 가늠이다. 상상과 가늠은 정확하지 않다. 상상과 가늠이 필요한 그 지점, 그것이 바로 관능이었다.

그 사람도 그랬다.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거의 없다. 대충 어디쯤 살고 무슨 일을 하는 지에 대해서만 안다. 그 사람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점심은 무얼 먹었는지, 몇 시쯤 자는 지, 매운 음식을 잘 먹는지, 축구와 야구 중 무얼 더 좋아하는 지는 모두 상상의 영역이다. 많은 상상을 필요로 한다. 그는 사실상 관능 말고는 없는 것이다.


어떤 대상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 관능의 조건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애정이 있어야 관능이 느껴진다. 애정이 관능보다 넓다. 개인적으로 비오는 날을 좋아하지만 비오는 날에 관능을 함께 떠올리진 않는다. 그러나 비오는 날의 어떤 장면들 속에는 관능이 있기도 하다. 여기서 또 '이미지'가 필요한 것이다.


이미지, 분위기, 잘 알지 못하는 것, 애정 섞인 대상, 그리고 하나 더, 냄새. 향기나 내음이 아닌 '냄새'다. 어떤 냄새는 어떤 이미지와 분위기를 떠오르게 한다. 살 냄새라고 쓰기엔 너무 적나라하고 저급인 기분이 들지만 사실 살 냄새 말고는 관능에 어울리는 냄새가 없다. 그에게서 살 냄새를 맡을 기회가 없었다. 몇 번인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봤다. 편의점 커피를 먹는 모습도 봤다. 편의점 커피 냄새가 섞인 담배 냄새. 이것만으로는 관능적이지 않다. 그러나 그의 이미지가 덧붙여지면 편의점 커피 냄새가 섞인 담배 냄새는 관능적이 된다. 그야말로 '이미지'다.


쓰다 보니, 관능의 첫번째 의미가 자연스레 두번째 의미에 섞여 든다. 모든 기관의 기능이 어떤 대상에 작용하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이미지의 대상이 풍기는 냄새에 대해 나의 기관들이 예민해지는 것. 그리고 그것은 대중적인 단어로


사랑이다.




어떤 대상이 관능적이라는 말은 그것에 어느 정도의 사랑을 느낀다는 뜻이다. 특히 감각적으로. 보고 듣고 만지고 맛보고 그리하여 떨리는. 대부분 사랑이 어떤 감각 기관으로든 맞대며 촉발되는 것으로 귀결되는 이유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볼품없고 초라했던 그를 관능적으로

그러니까 사랑했다고

하찮고 처량하게 고백하고 있다.

어느 우주에 담겨 있다가 허름한 시공간 속에서 사라지거나 혹은 겨우 그에게 닿을 지도 모를 이 고백이 관능적이지 못한 까닭은 단 하나이다.

그가 나에게 경험이 되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가을의 표상인 걸 모르는 낙엽처럼

내게 정념의 대상임을 몰랐던 그가 내 관능 속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나는 그를 오래 미워한다

긴 얼굴을 한 계절이 굽어진 거리를 절뚝거리며 걸어가는 것을 지켜보듯

나는 내 관능의 주인공이었던 그를 미워한다

그가 끌고 오는 담배 섞인 커피 냄새에 그제야 고개를 들어

당신의 관능이 내 낡은 나이에 구원이었다고 고백할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