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를 맞붙여 우산을 함께 나누어 쓴 적 없다. 그러나 차에서 내린 그가 다급하게 뛰어들어오는 걸 본 적은 있다. 손을 머리 위에 올린 그는 고개를 숙이고 뛰어 나를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의 그 모습을 기억한다. 하얀 트럭과 비와 습도와 주차장에 파인 웅덩이, 웅덩이에 고이는 비도 기억한다.
내가 그를 사랑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난 며칠 후였다.
여름은 사랑뿐이었다.
여름이 끝나가면서 여름비를 듣기 시작했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 쏟아지던 여름비처럼 갑작스레 다가온 사랑이 있겠죠. 여름이 끝나가는데 그는 긴팔을 입지 않았다. 감기 걸린다고 긴팔을 챙겨 입으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앞머리가 길어서 이발 안 하시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를 보러 가는 길, 보고 오는 길에 내내 여름비만 들었다. 풀내음을 머금은 나의 감정이 쏟아내듯이 젖어오네요.
그 후 나는 여름만 산다. 여름에 본 그의 어깨와 웃음과 손과 담배 연기만 생각한다. 그는 여름 안에서만 산다. 여름이 끝나고 아홉 번째 여름. 여름비를 듣고. 비가 갠 뒤에 무지개처럼 잠시 머무르지 마요.
여름이 끝나고 여름에 이별을 했다. 혼자 한 사랑이었으니 물론 이별도 혼자였다. 여름이 끝나고 두 번째 여름에 울었다. 이별은 아팠으니 울 수밖에. 아름답게 빛나던 계절이 지나고 지금처럼 영원히 나를 적셔줄래. 이번 여름은 울지 않았다.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시간은 모든 것을 둔하게 한다던 말을 이기고 싶어 오래 울었다. 매번 그랬듯 시간은 이번에도 이겼다.
한줄기 빗물처럼 너무 아름다웠던 투명한 우리들의 이야기. 틀렸다. 우리, 가 아니고 나만. '너무 아름다웠던 투명한 우리일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운 것은 나만. 그는 이 노래를 모를 것이다. 그는 옛날 노래만 듣는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와 이 노래를 듣는 상상을 했지만 그는 지금 가을을 살고 있느라 이 노래를 들을 수 없을 것이다. 밤하늘의 달마저 가리워지는 교차점에서 기다려요 기적은 이루어질까요. 기적은 없고 그 여름은 옛날이 되었다.
아지랑이 피어나듯이 설레었다고. 그런 여름을 준 그에게 감사한다. 감사는 감사로 끝나고 나는 계속해서 여름 속을 살며 여름비를 듣는다. 겨울비를 재촉하는 가을비를 맞으며 여름비를 들었다. 여름이었고 그건 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