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이라는 이름

by 초연희

대부분의 글을 밤에 썼었다. 그 근처에 살 때. 그리고 지금은 시간이 흘렀고 몸과 정신이 낡았다. 밤은 도저히 힘이 든다. 글은커녕 무엇인가에 집중하기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노트북을 열었다. 하반기엔 글을 매일 쓰자는 나름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밤은 위험하다. 잠가 두었던 감정이 용광로처럼 밀려온다. 다른 모든 감정은 조용히 태워버린다. 에어컨 냉기에 작은 기침을 하고 약간의 두통도 조금 더 짙어지는 시간. 이제는 잘, 모르겠다. 그리움이라고 쓰면서도 정말로 그리움인 것인지, 아니면 습관이 되어버린 어떤 기분인 건지.


솔직한 글이 좋다고 하지만 솔직한 글을 쓸 수 없는 내가 쓰는 글은, 어떤 글일까. 꾸미거나 거짓은 없지만 있는 그대로의 얼굴과 마음을 써서는 안 되는 지금을 무엇이라 해야 좋을까. 그러면서도 굳이 써 내려가고자 하는 이 의지는 어디서 솟아오르는 것일까.


단지 몇 번의 눈 맞춤과, 손짓과 한 두 번 오고 간 대화가 우리-우리라도 불러도 된다면- 사이에 있었다. 그것만으로 남은 생을 살아가기엔, 시간은 해변의 모래와도 같다. 무수하고 셀 수 없다. 그러나 앞선 다짐이 그리움을 견고하게 했다. 단지 몇 번의 눈 맞춤과 손짓과 짧은 대화로 남은 생을 이어갈 것이라고.

그래서였다, 내 글쓰기가 메마른 것은. 너무나도 짧은 대화와 몇 번의 눈 맞춤과 손짓뿐이어서, 써 내려갈 수 있는 것이라곤 편편하고 미미한 기억과 어쩔 줄 몰라했던 내 편에서의 감정뿐이었다. 두 편의 소설과 몇 편의 에세이와 시를 쓰기는 했었다. 잊기 위해 노력도 했고 흐르는 시간을 무심하게 바라보기도 했었다. 그리고 마침내 지금의 순간까지 오게 되었다. 노력의 결실.


이윽고,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 적이 있다. 지금의 나의 부사는 '이윽고'가 아닌 '마침내'이다. 마침내 지금에 이르렀다. 마침내 이곳에 도달했다. 마침내,

너를 잊었다.


그렇다. 거짓이다. 너를 잊지 못해 이렇게 글을 쓰고 굳이 마침내,라는 부사를 불러들여 쓰고자 하는 것이다. 정말 잊었다면 글도 쓰지 않았겠지. 마침내 같은 깊은 부사는 필요하지 않았겠지. 그냥 단순하게 '너를 잊었다'라고만 쓰면 될 테니까.


아직 나의 시간을 채우는 것은 역시나, 어쩔 수 없이 '그리움'이다. 여전히 무엇인지 잘 모를 이것을 그냥 그리움이라고 부르려 한다. 여전히 몇 번의 눈 맞춤과 뒤돌아봄과 스침과 짧은 대화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솟아나는 마음은 그리움과 가장 비슷하니까.


그러고 보면 나는 그 그리움 비슷한 기분에 들어갈 때에 가장 내 삶에 집중할 수 있었다. 내가 나의 이름으로 순수하게 나일 수 있는 시간이고 대상이자 확신, 믿음 그런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를 아니 이 그리움을 놓지 않고 있는 것일 테다. 이제는 그리움이라고 말할 수 없어,라고 내가 스스로에게 당당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그리워할 것이다. 나의 그리움이 향하는 그리움을.


이제 나에게 밤은 오로지 잠이다. 잡히지 않는 그리움보다 당장 눈앞에 닥쳐오는 잠을 택할 것이다. 잠으로 이어진 꿈 속에서 계속

등과 눈과 손을 그리워할 것이다.

그 그리움에 이름을 붙여야 한다면 '오래 자란 체념'으로 해볼까. 아직 자라고 있는, 미련이라는 영양분을 먹고 계속 크고 있는, 슬픈 눈빛과 입술을 가진

고개 숙인 체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