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하고 부드러운 그러나 자아로 가득 차 있는 목소리가 방금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람이 앉았던 곳이니 아직 온기가 남아있을 그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조금 전 필사했던 시의 한 구절이다. 절대로 결말이나 역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절대로 결말이나 역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결말이 된 것만 같은, 이미 역사가 되어버린 한 사람이 저곳에 앉는다면.
그는 이미 실체로 존재하지 않으므로 온기 같은 건 없을 것이다. 물론 그는 실체로 존재하지만 어떤 감각의 기억도 내게 남아있지 않은 연유로 그는 온기가 없는 사람이다.
사람.
그와 나에게는 '사람' 이외에는 더 이상의 공통점은 남아있지 않은 것만 같다. 우리에게는 우리라고 할 그 무엇이 없고 그러하기에 추억이나 기억은 더욱이 없으며, 한 때 우리라고 부를 뻔했던 마음만이 공중에서 부유하고 있다.
한때 그가 있는 곳 근처의 벚나무를 부러워한 적이 있다. 그에게 눈길을 이끌 수 있고 향기를 건넬 수 있고 무엇보다 가끔 지나가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그 나무를. 그가 드나드는 문을 바라보며 내가 사랑하는 것이 혹시 문이 아닐까 자문하곤 혼자 웃었던 날들도 있었다. 나무와 문을 대신 사랑하며 넘치는 마음을 수습하려 노력했던 시간들도 이미 결말이나 역사가 되어버린 것만 같은데
존재하지 않는 사람은 어찌 결말이나 역사가 될 수 없겠는가.
이제는 오직 우주와 내 마음만 알고 있을 것만 같은 그때와 그 풍경들에 대해
오로지 이곳에서만 펼쳐놓을 수 있다. 아주 조금, 약간 그리고 일부.
사랑이나 로맨스가 붙지 않는 나이여도 여름은 온다. 비는 내리고 물웅덩이는 고인다. 계절은 똑같은 척을 하지만 다른 얼굴을 달고 침입한다. 생활과 마음과 추억에. 몇 번의 계절을 지나왔는지 세기를 멈추었다. 시간에 고인 정념도 있고 시간에 맡긴 감정도 있으며 오직 대상만 없을 뿐이다. 이걸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옆에 놓인 책의 제목처럼 사랑에는 사랑이 없는 걸까. 그렇다면 내가 사랑이라고 여겼던 그것에 담긴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만지고 싶어 했던 그것은.
카페의 차가운 공기에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쓰려고 했던 이야기를 시작하지 못하던 때에는 카페가 따뜻했다. 이야기는 휘발되었고 나는 차가운 공기를 미워하며 또 다른 그러나 여전히 같은 이야기를 쓴다. 영화나 드라마에 관한 글은 쓰지 못하겠다. 곳곳에 박힌 고백의 문장과 표정에 한숨을 쉬며 정지를 누른다. 조금 울지 말지 고민하다가 꺼버린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도
결말이나 역사가 되지 못하는 호흡이 있다. 사랑이나 로맨스도 되지 못한 그 시간을
나약한 그리움이라 불러 본다.
나약해서 오래 사는 것들이 이야기들이 널리 퍼진다. 멀리 나아가
벚나무 곁에 머무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