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사랑

by 초연희


글과 사랑 중

나는 무엇을 먼저 잃었던 걸까.


글을 잃고 사랑을 잃은 느낌이 확연해진 것일까

사랑을 잃고 글을 더 이상 쓰지 못하게 된 것일까


후자라고 강하게 믿고 있지만 어쩌면 전자일 수도 있다. 글이 나를 떠나 텅 비어 있는 몸을, 나는 사랑이 떠난 것이라고 믿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그 투명한 몸을 무엇으로든 채우고 싶어 글을 읽고 책을 펼치고 영화를 봤다. 시간은 빠르게 몸을 훑고 지나갔지만 글자는 차오르지 못했고 나는 그렇게 가벼운 껍데기를 이끌고 일상을 살았다.

어떤 사랑인 지, 어떤 마음이 차고 넘쳤다가 천천히 고갈되어 갔는지 쓸 수 없어 글에서 멀어졌다는 핑계를 대본다. 사람은 그런 존재라고 하지 않는가, 자기 혼자만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쓴다는. 누군가 언젠가 볼 수도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은 내 속의 글을 지워갔고 나는 그것을 쉽게 허락했다.

이상도 하지. 글이 지워지면서 사랑이 사라졌고, 사랑은 글을 이끌고 이 몸에서 나가 버렸다. 그러니까, 동시에 글과 사랑이 인생에서 없어졌고 나는 당황했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남는 시간을 어찌할 바 몰라 운동을 했다. 건강해지는 기분이 좋았고 운동에 몰두했다. 글과 사랑 모두 그런 나를 멀리서 바라보았다. 나 없이도 잘 지내는구나. 사실 잘 지내지 못했지만, 잘 지내지 못한다는 티를 내는 것조차 어색해 운동을 하고 뉴스를 보았다. 글과 사랑은 나에게서 계속 멀어졌지만 나는 모른 체 했다.


아주 가끔 찾아오는 글은, 나를 다시 당황케 했다. 놀란 글은 익숙하게 멀어져 갔고 나는 그런 글의 뒤를 보았다. 그 글을 써볼까 하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쓴다는 행위조차 나와는 가깝지 않았다.

사랑은, 사랑은

아주 가끔 찾아오는 사랑은,


아주 가끔 찾아오는 사랑을

잊기 위해 나는 잠에 들었다. 사랑이 없는 책을 읽고 사랑의 향기가 나는 곳을 피해 다녔다. 그렇게 지금의 나는 사랑도 로맨스도 없는, 인생을 잃어버린 사람이 되었다.




이젠 널 인정하려 해 머뭇거리기엔 늦었어 난 네가 필요해


점심을 먹던 곳에서 흘러나오던 옛 노래. 식다 주인이 나와 취향이 비슷하구나 하면서, 오랜만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참았다. 익숙한 감정과 기분이었다. 에어컨이 강했고 나는 추웠으며 찬 음식을 힘겹게 삼키며 노래를 들었다.


받아들이고 싶진 않지만 이미 너의 자리가 너무 커버린 거야


나는 인정도 했는데.... 거기까지였다. 인정했지만 그 이상은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었다. 그래서 멀리서 바라보았고 그렇게 몇 계절이 지나 다시

여름이다.

사랑이 가득했던 여름, 비 오는 그날 시작되었던 풍경. 인정의 이후 다시 태어난 계절.


어떤 로맨스가 다시 나에게 찾아올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여름이 내게 있었던 것처럼, 사랑이 내 곁에서 나를 살렸던 것처럼 나는 또 내 앞에 기다리는 사고 같은 이름을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 그때 이후에도 나로 존재할 것이다. 그러하기 위해 글을 쓸 것이다. 나를 감싸는 모든 시간과 풍경에 대해 기록할 것이다. 그것이 사랑이든 공허든 지나가는 햇살이든 비이든

남겨둘 것이다. 나를 채우고 지났던 그 모든 살아숨쉬는 존재에 대해.



지난 사랑을 그리워하며 나는 지금

다시 글을 쓴다고 나에게 맹세하고 있는 것이다.

곁에 둘 수 없었던 온도가 그러했다고, 오직 나만이 기억하는 그 감각을 위해



널 곁에 두려 해 어쩌겠니 벌써 나의 마음을 모두 가져가버린 너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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