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톱의 재능기부

시 #23

by 김재호

이리저리

갈 곳 잃어 방황하던 시상(詩想)들

소속과 지위를 갖지 못해

이면지라는 황무지 속 난민이 되었다.


아우성치는 난민들 위로 왼발을 올리고

악랄한 손톱깎이를 들이댄다.


딱 딱 따닥

단말마 비명 지르며 잘려나간 발톱들

단비가 되어 마른땅 곳곳으로 스며들자

막혔던 우물이 터지고

말랐던 냇물도 굽이굽이 넘쳐흐른다.


양말에 구멍이나 내던 녀석들이

자유롭게 날카롭고 발랄하게 단단하다.

농익은 향기가 칼날을 타고 코를 찌른다.


이제는 오른발.


열매가 열리니 탐스럽고

곡식이 자라니 배부르다.

난민들은 흥에 겨워 다 함께 춤을 춘다.


빼앗긴 시선이 움푹 살을 도려낸다.


피에 놀라 벌떡 일어서자

우수수 일렬로 줄 맞춰 비웃는다.


얄궂은 녀석들 탈탈 털어 쫓아내 버리고

이면지와 함께 책상에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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