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료시카 병

시 #21

by 김재호

그들은 병을 앓고 있었어.


아주 오래전부터 핏줄 속 깊이

숨죽이고 있던 유전병.


가장 은밀한 곳에

앵무새가 도사리고 있는 난치병.


갖은 약과 치료, 간절한 기도에도

호전될 기미가 없었어.

오히려 병세가 깊어만 가는 거야.

둥근 몸이 불안하게 갸우뚱거리면

뱃속 앵무새가 노래를 불렀지.


먼바다에서 들려오는 여린 비명 소리에 젖어버려도

잡초처럼 일어나는 거센 불길에 옷자락이 타버려도

이끼 끼고, 검게 그을린 껍질 하나 벗어버리면

깨끗한 몸으로 새로 태어날 거라 굳게 믿었지.


가려졌던 시간이 고개를 쳐들고 뒤쫓아 와도

기억과 진실을 말끔하게 지우고

앵무새는 혼자 되뇌었어.

‘나는 마트료시카 인형이야’


우리는, 멈추지 않고 껍질을 벗기고 벗겼지.

앵무새가 노래를 멈추는 마지막 순간까지.


하지만,

놀랍고도 무서운 비밀이 밝혀졌어.


그 병은 전염성이 매우 강하다는 것

이미 병이 옮은 사람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웃고 있다는 사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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