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각쟁이

조선시대 버스커

by 김재호

‘오빠는 풍각쟁이야 뭐~ 오빠는 심술쟁이야 뭐~ 난 몰라 난 몰라’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가 한동안 방송에서 자주 등장하던 때가 있었다. 멜로디도 정겹고 가사도 특이해서 흥얼흥얼 머릿속에서 잘 떠나지 않고 머무르던 노래. 우연히 다시 이 노래를 듣게 되었을 때 문득 궁금해졌다. 풍각쟁이가 뭐 길래 맛있는 음식을 혼자 먹고, 좋은 곳도 혼자서 구경 다니는 심술궂은 오빠를 그렇게 불렀을까?


사전을 찾아보니 처음 나오는 뜻은 '시장이나 집들을 돌아다니며 문 앞에서 연주나 노래를 하고 먹을 것이나 돈을 구걸하는 사람을 지칭하던 말'이라고 되어있었다. 아무리 장난이라지만 그리고 화가 났다지만 오빠에게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건가 싶다. 그런데 막상 ‘구걸’이라는 단어만 조금 손을 보면 길에서 행위예술을 하거나 버스킹을 하는 요즘의 예술가들과 무엇이 다를까 싶기도 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금 더 알아보기로 했다. 그랬더니 '고려 중기부터 조선 후기까지 유랑 연예인을 총칭'해서 풍각쟁이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남아있었다. 뜻이 맞고 지향점이 비슷한 예술가들 몇 명이 모여서 풍각쟁이 패를 만들고 자유롭게 세상을 유랑하며 공연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길에서 구걸하던 예술가'‘예술을 사랑하는 방랑자’라고 다시 표현하고 보니 사뭇 멋들어진 존재로 다가온다. 낭만적이고 도전적이면서 자유로운 영혼들이 한데 모여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추고, 노래를 하며 여행을 다닌다니. 물론 겨울은 춥고 여름은 덥고 가뭄이 오거나 흉년이 든 해에는 유독 더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이 분명하다. 아무리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지낸다 하더라도 집도 절도 없이 떠도는 생활은 결코 만만치 않았으리라.


그런 그들에게 풍각쟁이로써 어떤 자부심이 있었을까? 요즘 청소년들이 선호하는 직업 중 하나가 연예인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결코 꼰대 소리 들어가면서 그들의 꿈을 비하할 생각은 없다. 그저 재능과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기에 각종 미디어에 노출되는 연예인들의 부와 인기라는 화려한 면에 반해서, 맹목적으로 그들을 동경하고 따르는 건 아닐지 걱정스러울 뿐이다. 어쩌다 보니 이야기가 여기까지 흘러와버렸다.


다시 풍각쟁이로 돌아와서 작품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워낙에 유명한 그림이라 교과서나 조선시대 화가를 소개하는 책자에서 몇 번씩은 접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바로 김홍도 화백의 ‘무동도’이다. 이 그림을 보면 갖가지 악기를 연주하는 악사들이 장삼을 입고 춤에 심취한 무동을 둘러싸고 있다. 바로 김홍도 화백이 풍각쟁이의 공연을 미술 작품으로 남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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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과 음악에 심취해 웃음 띈 무동의 얼굴에서 흥이 저절로 느껴진다. 그나저나 김홍도 화백은 이 그림에 왜 관객은 그리지 않았는지 개인적으로 궁금하다.

어쩌면 그림 속 관객에게 시선을 빼앗기지 말고 풍각쟁이 패의 흥겨운 판을 오롯이 즐기라는 의도였을까? 아니면 비록 관객 하나 없고 힘든 여정이지만 자신의 꿈을 이뤄가는 과정을 보며 무언가를 깨닫기를 바랐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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