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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호 Jul 04. 2022

막장

따뜻한 오월의 햇살 아래로 벚꽃 잎이 바람을 타고 시선을 빼앗는 아침.

공원 한편에는 장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오랜만에 열리는 벼룩시장인지라 판매자들이 예전에 비해 부쩍 늘었다.     


가득 품었던 기대와는 다르게 한가하게 오전이 흘러가자 

마냥 꽃구경에 심취하거나 고개 숙여 휴대전화를 보는 사람들이 더 많이 눈에 띈다.     


아직 봄이라지만 오후가 되니 제법 덥다.

부채와 손 선풍기가 곳곳에서 등장하고 챙겨 온 냉수로 목을 축인다.     


그렇게 소소한 거래만 이어지다 조용하게 끝날 것 같았던 분위기가

갑작스레 등장한 요란한 소리에 힘없이 부서진다.     


싸움이 벌어졌다.

판매자 한 명이 가방 하나를 두고 4명의 사람과 언쟁을 높이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가만히 듣자 하니 구매하려는 4명끼리도 서로 티격태격한다.     


다들 주장하는 바는 하나다.

내가 갖겠다.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유는 각기 조금씩 차이가 난다.

내가 먼저 봤다.

내가 먼저 잡았다.

내가 먼저 가격을 물어봤다.

내가 먼저 지갑에서 돈을 꺼냈다.     


판매자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그저 가방이 손상을 입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가방을 보아하니 제법 관리가 잘된 명품 서류 가방이다.

벼룩시장에서 팔기에는 조금 어색한 고가의 한정판 가방.     

싸움은 멈출 기미가 안 보인다.


판매자가 그냥 안 팔겠다고 선언하자 목소리들이 더 커졌다.     

네 명 중 한 명이 웃돈을 얹어줄 테니 빨리 넘기라고 하면서 가방으로 손을 뻗자

나머지 세 명이 거칠게 저지한다.


몸싸움으로 번질 태세다.     


벌겋게 달아오른 한 중년의 여성이 목소리를 간신히 낮추며 말한다.

“저거 우리 남편이 가지고 있던 가방이 확실해요. 우리만 알고 있는 작은 흠집이 하나 있는데 저 가방에도 똑같은 게 있단 말이에요.”     


어이없어하는 얼굴로 20대 여성이 소리친다.

“뭐라고요? 저거 우리 아빠가 쓰시던 가방인데 지금 무슨 소리하는 거에요?”     


웃돈을 제안했던 30대 여성이 삿대질을 섞어 껴든다.

“이봐. 다들 헛소리 그만해. 저건 내가 사랑하는 애인이 잃어버린 가방이야.”     


덩치가 크고 우락부락하게 생긴 남성이 굵은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한다.

“저건 우리 형님이 애지중지하던 가방입니다. 제가 증명할 수 있습니다.”     


남편, 아빠, 애인, 형이 사용했다는 하나의 가방.

그리고 그렇게 주장하는 생면부지의 네 사람.     


주위를 둘러싸고 구경하던 사람들의 얼굴에 궁금증이 퍼져나간다.     


정복을 입은 경찰 두 명이 구경꾼들을 좌우로 헤치며 등장했다.

주최 측에서 심상치 않음을 감지하고 경찰을 불렀나 보다.     


일순간 조용하고 차분해진 네 명과 다르게 판매자 얼굴이 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불안함 때문인지 내리쬐는 햇빛 때문인지 땀까지 뻘뻘 흘린다.     


경찰 중 한 명이 가방을 손에 빼앗아 들고 찬찬히 살피더니 동료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다.     


“이봐요. 저거 복제품이에요. 대형 거래소를 집중 단속했더니 이제 이런 벼룩시장까지 숨어들었네. 나머지 물건들도 일단 전부 압수하겠습니다. 그리고 판매자는 저희와 같이 가주셔야겠어요.”     


경찰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한 명이 묻는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복제품이라니. 여기에는 복제품이 존재할 수가 없잖아요?”     


“최근에 알게 모르게 Metaverse 내에서 NFT가 불법 복제되고, 꽤 많이 거래되고 있어요. 정품이 나오면 리버스 코딩으로 거의 흡사하게 만들어서 파는 거죠. 현실 세계하고 똑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네 명은 허탈해하며 각자의 길을 가려다가 동시에 같은 의문점이 떠올라서 걸음을 멈춘다.     


‘그나저나 우리 네 명은 서로 어떤 사이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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