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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호 Jul 07. 2022

영어 선생님

아이가 영어 단어 외우기 힘들다면서 징징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옛날 기억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중학교 3학년 시절.

저는 영어 수업 시간이 싫었습니다.

조금 더 솔직하고 정확하게 말하자면 영어 선생님이 싫었습니다.     


선생님은 유난히 저만 미워했습니다.

잘못한 일도 없고, 수업 태도도 좋은 편이었는데

내 이름을 부르지 않는 선생님.

혼자 일어서서 큰 목소리로 교과서를 읽을 기회를 주지도 않았고,

단어 맞추기 퀴즈에서도 제일 먼저 손을 들었던 저를 무시했습니다.     


사실 그전까지 영어가 체육만큼이나 좋았는데

저를 완전히 투명 인간 취급하는 영어 선생님 때문에

가장 싫은 과목이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유도 모른 채 그렇게 당하고 있자니

당연히 속상하고 화가 났습니다.

이름을 불러주지 않으니 그에게 꽃이 될 마음도 싹 사라졌습니다.

친구들은 오히려 선생님이 신경 안 쓰니까 좋겠다면서 

저를 부러워했지만 말이죠.     


한 번은 수업이 끝나고 교실 밖으로 나가려는 선생님을 붙잡고 

해석이 난해한 문장에 대해서 질문을 했습니다.

나름 설명을 조곤조곤 해 주시 길래

지금까지의 일들이 모두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마지막 영어 수업 시간이 끝날 때까지도

제 이름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졸업을 하루 앞둔 날.

쉬는 시간에 영어 선생님이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선생님은 그동안 미안했다면서 두터운 영어 사전을 선물로 주시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딱 한 번 제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사전 속에는 짤막한 쪽지가 한 장 들어있었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올해 초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함자가

네 이름과 똑같단다.

그래서 차마 네 이름을 부르지 못했다.

이해해 주길 바란다.

졸업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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