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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호 Jul 16. 2022

가치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제품.

출시된 지 10년이 되었고

그동안 수십만 개가 판매되었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바로 그 ‘하나’였다.               




처음에는 그 제품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믿지 않았다.

머리에 뿔이 달린 유니콘이나

산속에 숨어 산다는 예티같이

그저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로 치부했다.     


하지만 진짜로 그 제품이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면

나는 그것을 꼭 내 수집품 중 하나로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실낱같은 기대를 품고

그 전설의 제품을 찾아 

온 세상을 뒤지고 다녔다.     


거짓 제보나 소문이 많았기에

헛된 발품으로 금전적, 시간적 손해도

제법 많이 입었다.     


분명 진품이라고 해서 막상 가보면

그냥 초창기에 나온 오래된 제품이거나

중국에서 만든 모조품인 경우가 태반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소유를 위한

숭고한 과정이고 필연적인 절차이다.

쉬이 얻은 것에는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나를 비롯한 유명한 수집가들 대부분은

특유의 끈기와 인내심으로 버틴 사람들이다. 

비교가 불가할 정도로 

집착이 강하고 타협을 모른다.     


포기하는 그 순간

마음이 잠시 편해지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상은 죽는 날까지 

후회와 미련으로 점철된 삶을

견디며 살아가야 한다.     


그 사람을 만난 건 완전히 우연이었다.

같은 제품을 찾고 있다는 공통점이

우리를 맺어주고 경쟁하게 만들었다.     


취득한 정보를 간혹 서로 공유하기도 했지만

중요한 부분은 쏙 빼놓기 일쑤였다.               




그가 나보다 한 발 먼저

그 제품을 찾아냈단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연락이었다.     


그의 흥분이 나에게 전이되어

온몸을 거칠게 흔들어 댔다.     


바로 한 달음에 달려가 확인을 하기로 했다.     


그 제품이 가진 ‘가치’를 돈으로 따지긴 힘들지만

최소 100억 원 이상은 될 거라는 게

통상적인 평가였다.     


그런데 그가 전설 속 그 제품을 손에 넣었다니.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기쁨보다

한 발 늦어다는 생각에 속이 쓰렸다.     


역사적인 순간이다.

드디어 전설 속 보물과도 같은 제품을

마주하고 있다.     


창사 이래로 100년간

단 하나의 불량품도 팔지 않았던 회사의 실수.

명실상부한 유일한 흠.

앞으로 다시는 나오지 않을 결점.

켜지지 않는 휴대전화가 내 손에 있다.     


모조품이라고

이건 누군가가 조작한 것이라고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눈에 불을 켜고 노려봐도

이건 명백한 정품이었고

인위적인 작업의 흔적이 없었다.     


CT촬영으로 내부를 확인한 결과

주요 부품 하나의 납땜이

부실하게 붙어있다.     


누군가

150억 원을 불렀다.

또 누군가가

200억 원을 불렀다.     


같이 온 수집가들이 흥정을 시작한다.     


켜지지도 않는 오래된 ‘불량품’의 가격이

끝을 모르고 치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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