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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호 Jul 02. 2022

정반합

지옥에서 탈출했다는 남성

천국에서 탈출했다는 여성

그 둘은 만나자마자 첫눈에 반했고

짧은 연애 기간을 거쳐

하늘과 땅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까지 꿈꾸게 되었다.     


지옥이든 천국이든

오랫동안 한 곳에서 살았더니 

반복되는 일상과

새로운 미래를 기대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참을 수 없는 외로움을 느껴졌다는 게

그 둘의 한결같은 이유였다.     


남성이 무릎 꿇고 애원했다.

제발 천국을 맛보게 해 주세요.

지옥이 어떤 곳인지 제대로 느끼게 해 드리죠.     


여성이 웃으며 화답했다.

저에게 지옥을 보여주세요.

당신에게 천국을 선사하겠습니다.     


둘은 한 시도 떨어지지 않았고

‘마치’ 한 마음으로 움직이는

하나의 육체‘처럼 보였다.’     


둘은 상대방의 갈증을 빠르게 해결해 주었다.

둘은 자신의 궁금증을 순식간에 해소해 나갔다.

둘만의 시간이 허투루 소모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이제 그 둘은 천국과 지옥 모두를 경험했다.

그러자 서로에게 불필요한 존재가 되었다.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이 어딘가에 있음을 

어느 순간부터 서서히 느끼고 있었다는 진실을

둘 모두 부인하지 않았다.     


멀고 먼 여행을 떠나긴 전

둘은 맞잡은 손을 놓을지 말지 마지막 고민에 빠졌다.

혼자서 잘 해낼 수 있을까?

누구를 걱정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각자의 비밀 단지에 숨겨 놨다.     


불쑥. 말 그대로 불쑥.

천국과 지옥의 기운이 하나로 뭉쳐진

무시무시한 괴물이 그 둘 사이에 ‘짠’하고 나타났다.     


천사와 악마가 한 몸뚱이에 공존하는 미지의 작은 생명체.

연약해 보이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숨긴 폭탄 덩어리.

시시각각 변하는 예측 불허의 성격 파탄자.


떠나고자 했던 남자와 여자는 

그 생명체에게 붙잡혀 인질이 되었다.

머뭇거리다가 빨리 떠나지 못했다는 후회 역시 각자의 비밀 단지에 숨겨 놨다.     


다행스러운 점 하나는

그 생명체가 남자와 여자를 정확히 반반씩 닮아다는 사실뿐이었다.

스스로를 위한 유일한 위로였다.


셋은 그렇게 다름을 잉태한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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