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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호 Aug 16. 2023

너, 나한테 왜 그랬니?


"또 추천할 사람 없어?"


선생님은 조금 당황하신 것 같았다. 후보자가 단 한 명뿐인 반장 선거라니.


그것도 그럴 것이 결과가 너무나 뻔하다. 초등학교 5학년인 내가 보기에도.


'압도적'이라는 단어를 이런 상황에서 쓰는 것이 맞는지 모르지만, 유일한 후보자인 철수는 그냥 타고난 반장감이다. 큰 키와 귀공자 같은 얼굴 그리고 공부, 운동, 노래까지 팔방미인은 저 녀석에게 딱 어울리는 별명이 틀림없다.


"그럼 후보자가 한 명뿐이니 반장은 철수 당선으로 결정......."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기도 전에 손 하나가 웃자란 잡초처럼 불쑥 올라왔다. 


"영희야 왜?"


영희는 나와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4학년 겨울 방학 때부터 사귀기로 한 여자친구이다. 영희의 부탁으로 친구들에게는 아직 밝히지 않았다.


"선생님. 저는 재호를 추천합니다."


아이들은 이상한 소리를 내며 술렁거렸고, 선생님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칠판으로 가서 철수의 이름 옆에 내 이름을 추가하셨다.


나를 향해 묘한 미소를 짓는 영희와 다르게 나는 거의 울상이 되었다. '역부족'이라는 단어를 이런 상황에서 쓰는 것은 확실하다. 도대체 무슨 의도일까? 반장의 여자친구가 되길 원하는 것일까? 그나저나 진짜 내가 당선될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 거니?


철수가 멋들어지게 선거 유세를 발표했지만, 나는 내용을 하나도 듣지 못했다. 내 발등에 떨어진 불이 온몸을 태우는 듯했지만, 몸은 오히려 부들부들 떨렸다. 처음 느껴보는 긴장감에 오줌이 찔끔찔끔 나왔다.


"자, 이번에는 재호가 차례."


그다음부터는 기억이 잠시 끊겼다. 그냥 영희 얼굴만 기억난다. 그리고 영희 주변으로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친구들의 흐릿한 얼굴도.


마침내 투표가 끝나고 개표가 시작되었다. 예상에서 벗어난 만화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철수의 이름이 스물네 번 그리고 내 이름이 딱 한 번 불렸을 때, 나는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저 다른 친구들과 함께 박수를 쳤을 뿐.


철수는 준비된 당선 소감을 당당하게 말했고, 이어서 부반장까지 선출되었다. 영희는 부반장 후보로 나를 추천하지 않았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영희는 내 옆에 나란히 걸어가며 깔깔 거리며 웃었다.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고 그 소리가 끔찍하게 듣기 싫었지만 나는 도망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영희의 웃음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결국 나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물었다.


(출처 : 김재호 With DALL E)


"넌 왜 내 이름 안 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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