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재호 May 27. 2022

어제 태어난 하루살이

사람들은 우리를 하루살이라고 부른다.     


  그네들 시간으로 짧은 기간을 산다 하여 붙여준 이름인지, 아니면 잠깐 보였다가 사라지는 미물이라 생각해서 붙여준 이름인지 아무튼 우리를 그렇게 부른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성충으로 지내는 시간이 짧아서 그렇지 알이나 유충으로 지내는 시간이 1~3년이나 된다.     


  성충이 되고 나면 퇴화된 주둥이 때문에 음식도 먹지 못하고, 교미를 마치면 그냥 죽어 버리게 된다.     

나는 1년 조금 넘는 시간을 알과 유충으로 보냈다. 힘든 시기였다. 엄마는 다른 여타 평범함 하루살이와 마찬가지로 교미 후 가장 먼저 보이는 물속에 나와 형제자매들을 낳고는 세상을 떠났다. 엄마가 조금만 생각이 깊었다면 잠깐 고였다가 사라지는 웅덩이에 우리를 낳지는 않았을 거다. 나는 천만다행히 장화를 신고 물장난하던 어린아이 덕에 그나마 쉬이 마르지 않는 작은 개울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어린 유충 신분으로 춥고 덥고, 바람 불고, 눈 오고 비 오는 날씨는 물론이고 지독한 기름 냄새가 풍기는 물속에서 버티며 이렇게 굳이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길고 긴 1년 2개월의 시간이 지나고 나는 드디어 성충이 되었다.     


  어제 해 뜨고 얼마 되지 않아 성충이 되었으니 이제 거의 만 하루가 지났다.     

그 하루 사이에 사람들 손에 죽고, 차에 치여 죽고, 다른 곤충에게 잡혀 먹히고, 교미 후에 죽은 수많은 동족들을 보았다.      


  나는 강 옆에 있는 풀 숲 속을 아무런 의미 없이 날고 있었다.

배가 너무 고팠지만 입이 없어 먹을 방법이 없었다. 또다시 저녁이 가까워오자 수많은 동료들이 교미할 대상을 찾거나, 교미를 하고 있거나, 교미 후에 혹은 교미 후 알을 낳고는 죽어가고 있었다.     

종족의 영속을 위한다는 장엄한 사명감에 온 몸을 불사르는 것으로는 보이지는 않았다.

그냥 본능만이 그들을 지배하는 듯했다.    

 

  순간 두근거림과 떨림이 내 몸을 휘감았다.     

허기 때문인가? 아니면 드디어 내 수명이 끝날 때인가?     

외로웠고 무서웠고 그리고 동시에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의 물결이 일었다.     


나는 왜 저들과 다른가?

나는 왜 저들이 불쌍하게 느껴지고 연민을 느끼는가?     


  잠시 가느다란 풀잎에 앉아 숨을 고르며 눈을 감았다.

얼마나 생각에 잠겨있었을까? 누군가 내 바로 옆에 바싹 내려앉는 것이 느껴졌다.     

“이 보게. 뭐 하고 있어? 죽은 건가?”

“어? 아니요. 그냥 생각을 좀 하고 있었어요.”

“생각? 하하하.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하하”     


‘뭐야. 뭐가 웃긴 거지? 쳇’     


“이 친구 이거. 하하. 반갑네. 잠깐만 뭐 좀 확인하고.”     

그는 내가 미처 말릴 틈도 없이 내 생식기를 들추어 보았다.     


'어. 뭐야. 이 하루살이가 미쳤나?      

어? 그런데 뭐지? 왜 아무것도 없지?'


“그렇군. 자네도 우리와 같은 부류군. 하하하. 그래. 자넨 언제 성충이 되었나?”

“음. 이제 이틀이 되어 갑니다.”

“좋아. 딱 좋을 나이군. 나는 일주일째야. 자. 어서 나를 따라오게나. 우린 항상 바빠야 하네.”


  숲 속 깊이 그를 따라갔다.

물줄기가 시작되는 조용하고 아늑한 곳이었다.  제법 큰 나무의 한쪽에 입구처럼 보이는 작은 구멍이 뚫려있었다.     

“우선 배가 많이 고플 테니 수술부터 해야겠네.”     

덩치가 제법 큰 다른 하루살이가 불쑥 나타나더니 나를 구멍으로 끌고 들어가 끈적이는 송진에 내 몸을 붙여 버렸다. 그리고는 아무 말도 없이 끝이 뾰족한 대롱을 내 얼굴에 박고는 계속 밀어 넣었다.

끔찍한 고통으로 나는 기절해 버렸다.     


  하루를 꼬박 기절한 채로 있어야 했지만, 내 나이 3일째에 드디어 먹을 수 있는 입을 얻었다.     

첫 음식을 삼키는 것은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새로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용기가 든든해진 뱃속에서 쑥쑥 자라났다.


  몸속에 느껴보지 못했던 에너지가 넘쳐흘렀다.

먹이를 찾아야 한다는 번거로움은 있었으나 그 또한 즐거움이었고, 한 편으로는 항시 위험이 뒤 따르는 일이었다.     


  나무속에는 약 100여 마리의 하루살이가 같이 살고 있었다.

나처럼 4일밖에 되지 않은 몇 마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일주일을 넘게 장수하고 있는 특별한 하루살이들이었다.     


  하루 동안 수많은 것들을 그들에게서 배웠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마지막 순간까지의 보편적인 일생.

그리고 여기 모인 우리들은 그들과 다른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     


  여전히 하루는 짧게 느껴졌다.

우리들 모두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꼈기에 항상 분주했다.    

젊고 어린 개체는 빨리 배워야 했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나이 먹은 개체는 빨리 전달하고 가르쳐야 했다.     


  한 달을 살았던 최고 연장자가 갑자기 숨이 곧 멎을 것처럼 힘들어했다.     

“우리의 사명은 우리의 존재의 이유를 밝히는 것입니다.

처음으로 깨달음을 얻는 그분으로부터 시작된 우리의 여정이 계속 유지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비록 하루살이라고 불리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저는 이제 곧  명을 다 할 것입니다. 350번째 깨달은 자로서 다음 후계자를 정하겠습니다.”     


  그녀는 나를 선택했다.

생식기가 없는 나에게 종족의 번식이 아닌 더 큰 사명이 있다고 그들은 믿었다.

후계자가 된 시점부터 나는 먹을 것을 직접 구할 필요가 없었기에, 오로지 선구자들로부터 전해받은 이야기를 기억하고 새로운 생각을 덧붙이고 이어가는 일에 집중했다. 


  우리에게 세상은 너무나 넓고, 우리에게 주어진 생은 너무나 짧으며, 게다가 우리는 너무나 미약한 존재이다.     


  선대가 물려준 기억들과 사고는 혼자 감당하기 힘들었으나, 그래도 해야만 했다.


  나를 처음 데려온 하루살이를 포함해서 입을 만들어준 하루살이는 물론이고 이곳에서 처음 만났던 하루살이의 90퍼센트 이상이 죽음을 맞이했고, 새로운 개체들이 선택되어 들어왔다.     


  나는 일주일의 역사는 물론이고, 약 2년간의 축적된 기억의 단편들을 기억하고 이어 붙이고 새로 만들어 냈다.     


우리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으며 왜 존재하는가?

나무 밖에서 여전히 하루라는 짧은 일생을 온전히 바쳐 개체를 이어가고 있는 저들은 어떤 의미인가?

길게는 3년간의 기다림 끝에 맞이하게 되는 성충으로의 하루는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나는 왜 이런 고뇌를 해야 하는가? 


  나무 안에 살고 있는 선구자들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역할을 나누고 본인은 사라지더라도 본인의 역할은 끊어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게끔 했다.     


  어느덧 나는 최고 연장자가 되어간다.

내 몸과 정신이 최고조에 다다른 것이 느껴진다.

지금이 내 인생의 정점으로 생각되자 문득 죽음이 두려워졌다.     


  수많은 동료들의 죽음과 함께 수시로 전달되어 오는 세상의 지식들은 우리 동족들을 이해하고 구원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     


  우리들 중 나는 가장 강할지 모르지만 나 스스로는 자신이 너무나 나약하게만 느껴진다.


  시간이 빠르다.

내 후계자를 찾기 위한 정찰조는 요즘 슬슬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선대에 가장 장수한 하루살이는 36일을 살았다고 한다.     

어제저녁에는 강가에 나가서 동족들이 교미 후 알을 낳고 사라져 가는 모습들을 묵묵히 지켜봤다.     

나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왜 나만 그런 어려운 질문을 갖고 살고 있는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352번째가 될 후계자가 나무 안으로 들어왔다.

그에게서 내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의 모습이 보인다.

매거진의 이전글 첫사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