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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호 Oct 25. 2022

101호

두 남자

101호는 23년 전부터 101호였다. 낡은 4층짜리 빌라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다. 지하주차장도 없다. 같은 라인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101호를 지나쳐야 한다.

 

이사를 가고 이사를 왔다. 그곳에서 12년을 살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다른 곳으로 갔다. 할아버지는 하늘나라로 할머니는 요양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101호는 23년 동안 101호였으나, 갑자기 이름이 바뀌었다.


‘살인자의 집’


누가 언제 왜 붙였는지 모르지만, 101호의 현관에 명패가 붙었다. 강력한 양면테이프로 붙인 것으로 보이는데 새로 이사 온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모르는지 아니면 알면서도 별 관심을 두지 않는지 그냥 그대로 방치되어있다.


101호에서 두 명의 사내가 나온다. 한 명은 덩치가 백두장사급 씨름 선수 같은데 작은 눈이 초승달 마냥 항상 웃고 있다. 다른 한 명은 평균 키에 매서운 눈매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경비 아저씨가 그 둘에게 명패에 대해 말해 주었다. 검은색 바탕에 붉은색으로 적은 ‘살인자’라는 글씨가 도드라져 보인다. 그 둘은 집에 돌아가는 길에 그 명패를 뜯어내겠다고 했다.


그렇게 며칠 동안 보이지 않던 명패가 다시 101호 현관문에 붙었다. 똑같은 모양과 똑같은 내용. 완벽하게 제거하지 못한 양면테이프의 흔적을 명패가 감쪽같이 덮었다.


두 남자가 뜯어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명패는 계속 그 자리에 붙어있다.


아이들은 이제 101호를 살인자의 집이라고 부른다. 동네 사람들의 관심사가 그 두 사람에 향한다.


202호 문 앞에 있던 택배가 하나 사라졌다.

길 고양이 한 마리가 화단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다.

동네 마스코트로 통하던 개가 다리를 다쳤다.

사납게 생긴 낯선 사람이 동네에서 목격되었다.


소문이 소문을 낳는다. 부모보다 자식이 훨씬 크다. 어찌나 빨리 자라는지 태어나자마자 곧바로 더 큰 자식을 낳는다.


살인자‘들’의 집이 아니라 살인자의 집이라고 붙은 이유에 대해서 합리적인 사고를 펼치기도 한다.


둘 중에 하나는 살인자?


누가 왜 그런 장난을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이제는 더 이상 장난이 아니다.


‘사람 좋아 보이는 거인’이냐, 아니면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평범남’이냐를 두고 설왕설래가 끊이질 않는다.     

가서 직접 물어보라고 사람들이 등을 떠밀어 보지만, 동 대표는 그럴 마음이 전혀 없다.


그 둘을 반겼던 사람들이 이제 그들을 피해 다닌다. 경비 아저씨도 특별한 일이 아니면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한다.


와장창창.

한 밤중에 큰 소리가 들린다. 컴컴하던 빌라에 하나 둘 불빛이 들어온다.


와장창창.

두 번째 소리에 거의 대부분의 집에서 무슨 일인가 싶어 창문을 연다.

유일하게 101호 그러니까 살인자의 집만 여전히 어둡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소문을 한다. 그런데 다들 자기 집은 아니란다. 유일하게 물어보지 못한 101호를 제외하고.


누군가가 그날 밤에 검은 그림자가 커다란 가방을 끌고 나가는 것을 봤다고 했다. 문제는 그것을 봤다는 누군가가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이다.


101호의 두 남자가 집 밖으로 나왔다. 203호에서 작은 화재가 발생한 탓이다. 일단 빌라 밖으로 급히 나온 사람들은 무리를 지어 모여 있다. 101호 남자들과는 거리를 둔 채.


둘 중 하나가 욕을 했다. 그러자 다른 하나가 더 심한 욕을 했다. 커다란 덩치가 평범한 덩치를 집어던졌다. 평범한 덩치가 간신히 몸을 일으키며 소리를 질렀다.


이 살인자 새끼가!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화재 진압은 금방 끝났다. 서둘러서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뒷모습에 공포가 어려 있다. 두 사내는 아무런 말도 없이 가장 먼저 101호로 사라졌다.


동네는 아침저녁 할 것 없이 흉흉한 분위기가 감돈다. 숨소리도 조심하며 101호를 지나간다. 어떤 여자는 101호를 지나가다가 문이 벌컥 열리자 오줌을 지렸다. 아이들은 101호 앞에서는 뛰다시피 도망간다.


301호에서 도난 사건이 발생했다.

길 고양이 세 마리가 화단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다.

동네 마스코트로 통하던 개가 사라졌다.

사납게 생긴 낯선 사람들이 동네에서 자주 목격되었다.


참지 못한 사람들이 모여 회의를 했다.

101호를 감시했다. 딱히 수상한 점이 없어서 수상했다.


옆 단지에 경찰차들이 모여들었다.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고 한다.

조용하던 동네가 더 조용해진다.


101호에 붙어있던 명패가 사라졌다. 


대신 그곳에 조금 달라진 명패가 붙었다.


‘살인자들의 집’



그리고 '101호' 거실 서랍장 안에는 명패가 '하나' 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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