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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호 Jul 25. 2022

귀신

대한민국의 귀신은 여름에만 바쁘다.

겨울은 비수기라 딱히 하는 일 없이 한가하다.     


예를 들어 물귀신도 겨울에는 입수를 꺼린다.

사람들이 물 근처에 가지 않을뿐더러

잠수복이나 몸을 녹일 장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 얇은 홑옷으로 버티는데

어느 귀신이 흔쾌히 물속에서

사람을 홀리겠는가?     


오금이 저린 이야기

음산하고 싸늘한 분위기

간담이 서늘해지는 상황

소름 돋는 비명

불쑥불쑥 드러내는 기괴한 모습     


우리가 흔히 아는 귀신의 등장 Scene이다.

그리고 이게 바로 납량 특집의 주 Theme이다.


사람들이 공포를 느끼면 체온이 아주 쪼~끔 떨어진다는 사실 때문에

때가 되면 여지없이 앞 다투어 방송된다.     

하지만 그 역시 여름 한정판이다.


‘납량(納涼)’ 특집은 있지만 ‘납온(納溫)’ 특집은 단어조차 없다.

훈훈한 귀신은 찾아보기 힘들고

딱히 와 닫지도 않는다.     


게다가 요즘은 그마저도

‘좀비’라는 대형 괴물에게 자리를 내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좀비의 가장 큰 강점은

사시사철 밤낮으로 역할 수행이 가능하다는 것이며

증식 과정이 제법 단순하다.     


기존의 귀신들도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언제까지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라는

구닥다리 배경 음악을 쓸 것이며,

누가 보더라도 뻔히 알만한 장면에서

깜짝 등장만으로 우리의 호응을 이끌어낼 생각인지 궁금하다.     


귀신 연합이 존재하는지 모르겠지만

지속 가능한 귀신이 되기 위해 더 늦게 전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

권리를 지키고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개혁을 추진하고

기존 꼰대 귀신들과의 적절한 유대관계를 유지하면서

신진 세력을 아울러야 한다.


인간 기성세대도 더 이상 옛날 귀신 이야기나 귀신 영화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가끔 향수에 젖은 일부 마니아층을 제외하면

수요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요즘 신세대 인간은 뉴스와 Youtube를 통해서

사악하고 무섭고 험하고 악랄한 인간들과 

그들이 벌이는 실제 사건들에

이미 완벽하게 길들여져 있다.     


웬만해서는 그들을 놀라게 하거나

겁에 떨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더 이상 간과해서는 안 된다.     


조기 교육의 무서움을

이제는 귀신들도 몸소 느껴야 한다.     


그리고 좀비들과의 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는

특단의 대책도 시급하다.     


앞으로도 계속 공포가 먹히길 바란다면

시대가 원하는 ‘귀신상’을 기본부터 재정립하고

체계적으로 엘리트 귀신을 육성하기 위한

고위층의 단호한 결정과 지원이 필요하다.     


이대로 가다가는

귀신들의 영광의 시대가 다시는 영영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기다림에 익숙하지 않다.

당장 오늘부터라도 변하기를 촉구하는 바이다.     


마지막 조언을 한 가지 더 남기자면

제발 모두가 인정하는 ‘악인(惡人)’은

어떤 식으로든 좀 잡아가 줬으면 한다.     


그러면 비록 ‘포퓰리즘’이라고 비난은 받겠지만

일부의 팬이라도 돌아오는 특수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애써서 좋은 말들을 열심히 해 줬으니

나한테는 나타나지 않았으면 한다.

심장이 약해졌음을 느끼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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