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약속을 했다고 생각하니
매사 거짓말쟁이라는 오명에서
하루도 마음 편히 벗어날 수 없었다.
하나씩 약속이 깨질 때마다
나 스스로를
나약한 배신자로 낙인찍어버렸다.
더 이상 나와는
약속을 하지 않기로 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마구 남발했으니
돌아오는 것은
이런 현실뿐이겠지만.
따지고 보면 나는
나와 약속한 적이 없다.
왼손과 오른손이
새끼손가락을 걸고
도장을 찍고
복사를 한들
그게 진짜 약속이라면
나는 아마 이중인격자이겠지.
숨지도 못하고
도망가지도 못하고
나를 시시각각 괴롭히던
나와의 약속은
애초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이며
잘해봤자 본전도 건지기 힘든
불공정 계약이었다.
그렇게 나와 나를
주종관계
혹은
상하관계로
규정짓고 싶지 않다.
풀리지 않고
해결되지도 않은 상태로
내 마음의 족쇄처럼 남아있는
수많은 약속들을
영구적으로 폐기해야겠다.
나는 이제
나와 약속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나와 하고 있다.
이런 젠장!
이렇게 방심을 하면 여지없이
나는 또 나와 약속을 한다.
그냥 ‘다짐’이라고 부르자.
약속을 파묻고
그 위를 꾹꾹 밟아 다지는 중이니.
뭐가 다른지 잘은 모르겠지만
약속을 어길 상대방이 없어져
마음이라도 조금 편하니
그거면 됐다.
약속이 다짐을 뚫고 올라오면
그때는 뭐
어떻게 또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