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부탁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드라마에 빠진
초등학교 4학년 딸아이가
자기에게도 별명을 붙여 달란다.
우당탕탕
봄날의 햇살
권모술수
동그라미
나는 아직 방영된 모든 에피소드를 보지는 못해서
대략 이런 별명들이 나오는 것만 우선 확인했다.
아이에게 왜 별명이 필요한지 잠시 고민을 해 본다.
나와 아내가 지어준 이름이 그리 평범한 편도 아닌데
왜 새로운 무언가로 불리길 원하는 것일까?
딱히 답을 찾지 못해서 그냥 물어보기로 했다.
“별명이 있으면 특별해지는 것 같아서요.”
아이의 대답이다.
봄날의 햇살이나 동그라미는 그렇다고 쳐도
권모술수나 우당탕탕은 딱히 좋은 의미가 아닌데도
별명이 생기면
남들과 다른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으로 생각하나 보다.
예전에는 이름으로 장난치고
특이한 외모를 놀리거나
실수나 잘못을 우습게 표현하는 것이
별명이었는데.
아무튼 난관에 부딪혔다.
시시껄렁한 별명을 대충 들이밀었다가는
핀잔만 들을 것이 분명하다.
뭐가 좋을까?
머리가 아프다.
숙제를 내놓고 학원에 간 아이 때문에 낑낑거리다가
문득 떠오른 영화가 있었으니
바로 ‘늑대와 함께 춤을’이었다.
외모나 성격으로 지어주자니
부모로서 좀 작위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인디언식 이름을 별명으로 만들어주기로 했다.
어디 한 번 보자.
인터넷을 뒤져보니 조합법이 금방 눈에 띈다.
아이의 생년월일에 하나씩 맞춰봤더니
세상에나
‘어두운 돼지의 파수꾼’ 이란다.
허걱.
가뜩이나 어두운 곳을 끔찍하게 싫어하고
뚱뚱 해지기 싫다면서 절대로 과식도 하지 않는 아이인데.
별명 지어주려다 괜히 혼만 나게 생겼다.
그래서 이 별명은 탈락.
아이를 떠올리며
나름대로 어울릴만한 것들을 다시 골라서 붙여본다.
책을 좋아하니 ‘지혜로운’이 좋겠고
사나운 동물보다 순한 동물을 선호하니 ‘양’이 적당해 보인다.
이렇게 두 개를 선택하고 나니
자연스럽게 마지막은 ‘파수꾼’ 당첨.
‘지혜로운 양의 파수꾼’
그런데 양이 지혜로운지 파수꾼이 지혜로운지 헷갈릴 수 있으니
‘양의 지혜로운 파수꾼’
으로 땅! 땅! 땅!
줄임말이 유행이니 '양지파'도 그럴싸하다.
그러고 보니
양지머리 들어간 미역국이라면 사족을 못 쓰니 더할 나위 없네.
제발 아이가 이 별명을 마음에 들어 했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내 인디언식 이름은
‘노래하는 날카로운 늑대’군.
하하하.
양을 놓고 파수꾼이랑 자주 싸우겠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