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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호 Aug 01. 2022

공부와 시험


B)

전 공부를 잘했습니다.

공부하는 것을 참 좋아했습니다.

공부를 잘해서 좋아했던 것이 아니라

좋아하다 보니 잘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공부에 발목을 잡힌 Case입니다.

공부를 잘했지만

성적은 좋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공부를 하는 동안은 정말 행복합니다.     


A)

전 성적이 좋았습니다.

노력 대비 성적이 무척 잘 나오는 편이었습니다.

시험에 나올만한 내용을 족집게처럼 알아냈으니

효율이 매우 좋았죠.

그래서 좋은 대학에 갔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을 얻었습니다.

시험이 제 인생을 탄탄대로에 올려놨습니다.

시험이 없었다면 제 인생은 아마 끔찍했을 겁니다.     


B)

공부에 두각을 나타내면

친구들이 가까이 다가옵니다.

노력 대비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한 저로서는

좀 귀찮을 수도 있었지만

녀석들은 매번 내 설명을 듣고자 달려듭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공부를 잘했거든요.     


A)

성적이 뛰어나면

선생님들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특히나 명문고나 명문대 진학이 당연시되면

말 그대로 Untouchable이 됩니다.

가끔은 Invisible도 되어서

교내에서 무법자로 지낼 수 있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성적이 좋았거든요.     


B)

요즘 저는 좇고 있습니다.

여전히 공부를 좇고 있습니다.

아무리 파고 파도 모자람을 느껴

오히려 누가 좀 말려줬으면 좋겠습니다.

쉼 없이 오직 연구에만 매달리고 있습니다.     


A)

요즘 저는 쫓기고 있습니다.

여전히 시험에 쫓기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험이 생기면 여지없이 고사장으로 향하고

성적표로 저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B)

주변 사람들이 제 공부 덕에 부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공부에 목이 마를 뿐입니다.

세상에는 모르는 것투성이고

알고 싶은 것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무지한 사람으로 남는 게 두렵습니다.     


A)

주변 사람들은 모두 출제자 혹은 수험자들입니다.

저는 여전히 문제를 풀고 성적을 기다리는 일이 짜릿합니다.

하지만 시험을 보면 볼수록

좋은 성적을 받을 때마다

아직도 올라야 할 산이 많다는 압박감에 시달립니다.               




어쩌다 보니 B)와 A)는 부부가 되었습니다.     


B)는 A)라는 생명체에 대한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분석하고 연구합니다.

하지만 들인 정성에 비해서 연구 실적이 좋지 않아서 

안달이 나고 조급해하고 있습니다.     


A)는 B)라는 시험지에 적힌 문제를 풀어서 완벽하게 정복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예상 문제와 기출문제를 풀면서 준비하고

확실한 답을 맞혔는데도 자꾸만 오답이라 하니 미칠 지경입니다.     




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났는데

애초에 공부와는 높은 담을 쌓고 그저 놀기만 합니다.

시험은커녕 뭐라도 하나 질문하면 자지러지게 울기만 합니다. 


이제 A)와 B)는 예전부터 서로에 대해서 

공부하거나 시험지로 여기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대신 아이에게 다가가 공부를 시작하고

문제를 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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